한국풍수신문, 장원기 교수, 송대 장자미와 채원정이 완성한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연재 1회…

기사입력 2022.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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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광디지텔대학교관광학과 겸임교수,관광학 박사 )

 

 

 

장원기교수의 옥수진경(玉髓眞經해설(解說)

 

송대 장자미와 채원정이 완성한

3,200페이지 풍수지리(風水地理경전

옥수진경(玉髓眞經해역(解譯)을 마치면서...   

 

[한국풍수신문, 장원기 교수.. 옥수진경 풍수 연재 1회]

 

풍수지리 옥수진경(玉髓眞經)은 한 대(漢代청오경(靑烏經)과 적정경(赤霆經), 진대(晉代금낭경(錦囊經), 당대(唐代일행선사(一行禪師)를 거쳐 송대(宋代채원정의 발휘(發揮)로 완성(1,190)된 후 300여년이 지난 명대(明代세상에 처음으로 소개된다이처럼 늦게 발간(1,550)된 이유는 당 말(唐末황소의 난(875~884)때 양균송이 경림서고에서 훔쳐간 풍수서적으로 당시의 풍수는 새로운 국면을 맡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 전자도서관에 묻혀 있던 3,200페이지의 옥수진경 목판본을 우연히 만나 번역과 해설을 더하여 출판한지 5년이 지났다그 당시 번역을 하면서 옥수진경의 기본이론과 형상혈수(形象穴髓)편은 상..하 로 3권 발간하였지만(2018나머지 한권은 발간하지 않았다.

 

서둘러 발간하지 않은 이유는 번역을 하면서 채원정의 신선(神仙)같은 해설과 심오(深奧)하고 신비한(神秘)한 내용이 자칫 기본 실력이 없는 일반 풍수인이 비법(秘法)으로 잘못 사용할 것을 우려해서였다이제 마지막으로 그 내용을 해설하여 발표하니 1,000여 년 전 장자미의 글을 유윤중이 해설하고 채원정이 발휘하던 모습을 상기시키며 풍수학계의 새로운 도약을 바래 본다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동안 옥수진경을 번역하고 강의하면서 꼭 하고 싶은 말을 기록하고 싶다.

 

1. 풍수지리(風水地理이론(理論)의 형성 배경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풍수지리(風水地理)에서 경전(經典)을 한 대(漢代자술된 청오경(靑烏經)을 근본으로 한다그리고 동진(東晉)시대 곽박(郭璞)이 지은 금낭경(錦囊經)을 장경(藏經)으로 하여 풍수지리의 이론적 배경을 설명한다그러나 한 대(漢代장자방(張子房)이 지은 적정경(赤霆經역시 청오경과 같은 시대인 한 대(漢代)에 만들어졌으니 적정경(赤霆經)도 풍수의 경전(經典)으로 재고(再考)해야 할 것이다.

 

청오경을 풍수의 경()으로 추론하는 것은 청오경(靑烏經)의 구절이 곽박(郭璞)이 지은 금낭경(錦囊經)과 백학(白鶴)이 지었다고 하는 호수경(狐首經)에 인용된 경왈(經曰)의 문장을 들고 있다예를 들어 금낭경 기감편(氣感編)의 經曰 地有四勢 氣從八方은 청오경의三岡全氣八方會勢前遮後擁諸祥畢至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무청룡백호의 세 기운이 온전하고 팔방에서 세가 모여들어앞에서는 막아주고 뒤에서 끌어 안아주면 모든 상서로운 것들이 모두 모여 든다고 하였다청오경에서는 삼강전기(三岡全氣팔방회세(八方會勢)라 하였으나금낭경에서는 이를 (地有四勢氣從八方 )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적정경(赤霆經)이 전해오는 것을 보면 송대(宋代장자미가 지은 옥수경(玉髓經 )을 유윤중이 해설하고 채원정(蔡元定발휘를 더하여 완성된 옥수진경(玉髓眞經)의 부()에 전해진다옥수진경(玉髓眞經()에는 한나라 국사 장자방의 저술(大漢帝師留侯張子房撰)이라 기록 되었고장자미 역시 장자방의 32세 손 동현 자미 전(大宋國師三十二世孫東玄子微傳)이라 기록 하고 있다.

 

이러한 적정경(赤霆經)에 대하여 "후인이 장자방의 이름에 가탁한 글이라고 생각한다는 글이 있는데 이는 옥수진경(玉髓眞經악록문답(嶽麓問答)에서도 언급한 내용이 있다. '감히 묻겠는데 적정경(赤霆經)은 자방(子房)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까이것은 확실한 진위 여부를 분별하기 어렵다그러나 상(上 ), (두 권은 자방의 글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하권본(下卷本)에 삼식(三式)이 있는데 지금은 단지 그 하나만 있다문리(文理)가 속되어 후인이 그것을 그대로 가탁하였거나혹 원래 이 권에 있던 진본을 잃고서 후인이 논술하였을 것이다상권에서 논하는 지리는 뒤에 나오는 호수경(狐首經), 곽박의 서(郭書등이 모두 여기에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처럼 송대(宋代)에도 풍수 경전의 진위 여부는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옥수진경에 나와 있는 유윤중의 서문을 살펴보면 "금릉(金陵)에 유랑 갔을 때 모산(茅山)에 올라 경치를 보았는데 우연히 도사(道士곽수일(郭守一)을 만났다그는 자칭 곽경순(郭景純)의 후예라고 하였으며 지리를 이야기하는 것을 스스로 허락하여 그 강론을 들었다.” 그리고 복주부간에서 옥수진경의 목판본이 최초로 발행되는 1550년 하계고(何繼高)는 서문에서 풍수지리 이론은 진대(晉代곽경순(郭景純)에 이르러 드디어 분명해져 조()라고 한다이에 땅을 가지고 길흉을 판단하는 종()이라 한다.고 하였다고 한다.

 

 

[윤명선 기자 ti2@rok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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