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풍수신문, 주암 선생의 문화탐방 9회... 명주군왕릉 강릉김씨 시조 김주원의 묘

기사입력 2023.01.3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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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주암 선생의 문화탐방 9회... 명주군왕릉 강릉김씨 시조 김주원의 묘

 

■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강릉김씨 시조 김주원(金周元)묘

 

[한국풍수신문] 명주군왕(溟州郡王)인 김주원(金周元)은 신라태종 무열왕의 5대손으로 ,선덕왕이 후사 없이 세상을 뜨자 당시 시중 겸 병부령인 김주원(金周元)은 상대등(上大等)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쟁탈전에 패하여 785년 어머니의 고향인 강릉으로 낙향하였다.


한편 김경신은 김주원을 무마하고자 786년(원성왕 2)명주군왕으로 봉하고, 명주 관하의 3개 군과 1개 읍을 식읍(食邑)으로 하사했다.(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PS

명주군왕(溟州郡王)인 김주원(金周元) 묘는 조선 선조(1552~1608) 때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인 김첨경(金添慶.1525~1583)은 강릉부사 재임 시,김주원(金周元) 의 현몽(現夢)으로 선대(先代)부터 실전(失傳)된 시조 묘소를 찾기로 결심하여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 끝에 지금의 자리를 찾았는데 발견할 때 능묘(陵墓)앞과 사면은 돌로 만든 층계가 있었고, 그것의 네 모퉁이에는 1척 남짓한 돌 동자상(童子像)이 있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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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무덤 속에서 유해를 담은 백사(白沙) 항아리가 나왔는데,그 뚜껑에는 북두칠성의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8c후반 ~9c초의 무덤이 700년이상 실전되었다가 각고의 노력끝에 찾아낸 묘이기에 본래의 모습이라고 단정하기에는애매하다.


명주군왕(溟州郡王)묘의 좌향은 갑죄경향(甲坐庚向)에 파구는 신파(申破)다. 양공의 88향법으로 보면 향상(向上)으로 임관방(臨官方)을 충파하는.살인대황(殺人大黃泉)으로 대흉이다..살인대황(殺人大黃泉)은 다 큰 아들이 상(喪)을 당하고 패절(敗絶)하고 절름발이. 피부병. 혈압. 노질. 토혈.ᆢ등의 증세가 있으며 먼저 차남 집이 상(傷)하고 나머지 집에도 파급된다.고 하니 극히  조심해야 할 수법이다.


하지만 700년이상 실전되었다가 복원한 묘이기에 지형지세가 변했을수도 있고 조성시 점혈과 재혈이 다를수가 있어서 취기처와 좌향.파구등에 관해 논한다는 것은 좀 그렇다


현재의 취기처에서 본 좌향은 을좌신향(乙坐辛向)에 신유분금(辛酉分金). 파구는 신파(辛破)로 하면 용진혈적.천간자 파구.백보전란.으로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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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선 기자 ti2@rok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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