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의 문화탐방12회... 정종 태실비(正宗 胎室碑)와 공자 명당론

기사입력 2023.02.20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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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의 문화탐방12회... 정종 태실비(正宗 胎室碑)와 공자 명당론


■ 정종 태실비(正宗 胎室碑)와 공자 명당론


[한국풍수신문] 태실은 왕이나 왕족들의 태반을 묻는 석실무덤을 말한다.산수(山水)가 어우러지면서 사세가 잘 갖춰지고 지기가 취적(聚積)된 곳에 태반을 묻을시 건강은 물론 장수한다는 풍수설에 기인해 산수가 빼어난 곳을 찾아 묻고 이름도 태봉산으로 명명(命名)하죠.


정조대왕의 태실이 있는 산은 강원도 영월읍 동쪽에 닭의 발을 닮았다는 계족산(鷄足山-890m)인데 개발로 인해 본래 자리가 아닌 과룡지처에 쓸쓸히 있다.일찍이 공자 선생은 명당(明堂)의  풍수관에 대해 말하기를ᆢ.

 

1.산사태가 안날 자리. 2.수맥지가 아닌 자리. 3.동물이 훼손 안 할 자리. 4.개발되지 않을 자리. 5.후손이 팔아 먹지 못할 자리.가 명당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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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정조 태실은 정조가 탄생한 이듬해인 1753년(영조 29)영월읍 정양리 계족산(鷄足山)에서 흘러내린 봉우리에 조성되었고, 1800년 가봉하고 태실비를 세웠다.


1929년 조선총독부에서 태실의 관리가 어렵다는 구실로 전국의 태실을 경기도 고양 서삼릉으로 옮기니 정조대왕 태실에서도 태 항아리를 꺼내 갔다. 6.25전쟁 이후 석회 비료 광산의 개발로 파괴·매몰되었던 것을 1967년 수습하여 영월읍내 금강공원의 KBS방송국 안으로 옮겨 놓았다가, 본래 자리에 석회석 광산과 송정탑이 들어서는 바람에 현재 위치에 다시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태실석함 등 태실조성에 사용된 석재와 태실비가 있고, 본래 태실이 있던 정양리에도 일부 석재들이 남아 있다. 태실비는 전면에 "정종대왕태실(正宗大王胎室)”, 후면에는 "가경육년십월이십칠일건(嘉慶六年十月二十七日建)”이라고 새겨져 있다.


[윤명선 기자 ti2@rok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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