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연재] 주암선생 문화탐방 58회... 아산 전윤장 묘(牙山 全允臧 墓)

기사입력 2024.02.19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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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58회... 아산 전윤장 묘(牙山 全允臧 墓)


전윤장( 全允臧)은 고려 충혜왕에서 공민왕대에 활약한 고려의 문신으로 본관은 천안.이다.1342년(충혜왕 복위 3) 조적(曺頔)이 반역을 꾀하였을 때 상호군으로서 왕을 시종한 공으로 2등공신이 되었다.


분묘의 형태는 고려후기 세족계층 분묘의 일반적인 형태인 방분으로 4면에 장대석으로 된 2단의 호석(護石)으로 둘렀다. 방분의 규모는 318(전면)×379(측)×140(높이)cm이며 호석의 크기는 부정형이다.


우측 문인석 규모는 153(높이)×40(가슴폭)×30(두께)cm, 좌측 문인석 규모는 117(높이)×35(가슴폭)×26(두께)cm이다. 문인석은 얼굴을 바로 들어 당당한 자세이고, 근엄한 인상을 주며, 눈썹은 표현되지 않았다.

 

목을 표현하지 않고 머리가 어깨 가슴 등과 연결되어 있고 양 소매 사이의 의습선은 ‘八’형보다는 ‘11’형에 가깝다. 눈은 가장 자리를 깊게 파내어 장승의 분위기를 풍기며 몸통도 대체로 윤곽이 없는 형태이며 관모는 복두공복형이다.


분묘의 전면에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져 있으며 상석은 판석의 형태로 두께가 얇게 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분묘에 상석과 향로석이 놓인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전승되는 과정에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충남지역에 고려시대 분묘형식인 호석을 두른 방분은 매우 드물어 역사적 가치가 높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참고문헌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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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적 고찰

전윤장( 全允臧)은 고려 후기 문신으로 천안 전씨 시조인 전섭(全攝)의 39세손으로 증조부는 밀직사 全昇. 조부는 복주목사 全信.父는 공부상서 希安이다. 태화산(460.5m)에서 발조한 용(龍)은 壬子.ㅡ癸丑龍으로 기복굴곡(起伏屈曲)을 하여 소원봉을 성봉한 후 甲卯龍으로 직입수(直入首)하였다.

 

주산은 높지는 않지만 아담하면서도 빼어난 문필봉이다. 국세는 평안하고 안온하다. 주산에서 급하게 내려온 용은 옹골찬 당판을 이룬 후 좌정하였다. 청룡사는 낮게 부복(俯伏)하듯 순하게 중중으로 읍하면서 주인을 호위하는 조밀한 국세인데 무지한 후손이 첨하(籤下)의 내당을 넓혀서 주차장과 확 트인 느낌을 주고자 용미(龍尾)를 자르는 우(愚)를 범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좌향(坐向)은 묘좌유향(卯坐酉向)으로 정서향이다. 내당(內堂) 파구는 경유파(庚酉破).외당 파구는 신술(辛戌)로 양공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차고소수자왕향에 합당하다. 취기처에서의 좌향(坐向)은 묘좌유향(卯坐酉向)에 파구는 신술파(辛戌破)로 차고소수자왕향이다.


파구는 좌수도우(左水到右)하여 신술(辛戌)로 파구(破口)되니 이는 양공(楊公. 834~900.唐나라 국사)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차고소수자왕향(借庫消水自旺向)이다. 이는 임관룡(臨官龍).우선룡에 좌수도우.경유향에 신술파.로詩의 유유쇠방가거래[惟有衰方可去來(쇠방으로 물이 나가도 되고 들어와도 좋다)]에 합당하여 발부발귀(發富發貴).하고 오래살고 인정(人丁ㅡ인물과 장정)이 왕(旺)한다.




[윤명선 기자 ti2@rok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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