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주암선생 문화탐방 67회 ... 조선의 마지막 영의정이자 최초의 총리대신 김홍집(金弘集) 묘

기사입력 2024.04.22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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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67회 ... 조선의 마지막 영의정이자 최초의 총리대신 김홍집(金弘集) 묘


김홍집(金弘集, 1842년(헌종 8)~ 1896년 2월 11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사상가, 정치인이다.자(字)는 경능(敬能), 호는 도원(道園)·이정학재(以政學齋), 시호는 충헌(忠獻), 본관은 경주이다.이버지는 참판 김영작(金永爵)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김홍집의 어릴 때 이름은 굉집(宏集)이었다고 전한다.


김영작은 숙종의 장인인 김주신의 5대손으로, 이조ㆍ호조ㆍ예조ㆍ병조 참판을 역임하였고 한성부 좌윤과 사헌부 대사헌, 홍문관 제학을 지냈다.어머니는 성혼(成渾)의 후손이다. 1867년(고종 4) 26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고, 1868년승정원 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에 임명되면서 벼슬길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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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출사했을 때 부친인 김영작은 "나라의 녹을 먹는 자는 항상 나랏일에 정성을 기울여 그 책임을 저버려서는 안된다.”고 훈계하여 훗날 재상의 위치까지 여러 차례 올랐음에도 탐관오리의 오명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김홍집의 30대 시절은 외세의 문호개방 압력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1871년 미국과 충돌하는 신미양요를 겪었고, 급기야 1875년 일본 군함 운양호의 강화도 침입 사건이 빌미가 되어 1876년(고종 13) 일본과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조약을 맺게 되었다.강화도 조약의 속임수를 깨달은 조선 정부는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새 인물로 김홍집을 발탁하였다.


1880년 수신사 일행으로 일본을 방문한 뒤, 신문물을 견학하고 돌아와 개화, 개항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한편으로 위정척사파 계열 인사들도 중용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으나 급진 개화파로 몰렸고,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진압 후 우의정, 좌의정 등으로 전권대신(全權大臣)이 되어 한성조약(漢城條約)을 체결하였다.


1896년 관제 개정 이후 동학 농민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끌어들인 일본측의 지원으로 총리대신이 되었으며, 총리대신 재직 중 신분제 폐지, 단발령 등을 강행하는 한편, 일본의 도움으로 개혁, 개방을 단행한 뒤에는 친일파로 몰려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 직후 고종의 밀명에 따라 정식 재판 없이 경무청 순사에 의해 격살된 뒤 군중들로부터 시신이 짓이겨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김홍집의 사위는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인 성재 이시영이다. 이시영은 선조 때 영의정 오성부원군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이다.(참고문헌: 위키백과.)


● 풍수적 고찰

조선 말기 백척간두의 난세에서 피아를 넘나들며 구국을 의해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을미개혁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결국 욕이라는 욕은 다 먹고 주군의 외면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조선의 마지막 영의정이자 최초의 총리대신이면서 최고의 정치외교가 김홍집(金弘集)의 유택(幽宅)은 어떤가?


심리산(143m)에서 출맥한 용은 간인(艮寅).계축(癸丑)의 동북방으로 기복굴곡(起伏屈谷)을 하여 손사룡(巽巳龍)으로 횡룡(橫龍)하여 입수하였다.입수맥(入首脈)이 양룡(陽龍)으로 오니 취기가 분명치 않는

곳인데 사성을 이중으로 하다보니 깊은 와혈형(窩穴形)이다. 지기(地氣)가 크지 않는 곳인데 봉분에 비해 상석과 신도비가 비대해 안정감이 떨어져 아쉬움이 있다.


주위에 윗대 조상님들이 많이 계시는 곳이라서 망자는 물론 후손들과 학인들이 보는 입장에서 모양새는 좋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취기가 미약해 아쉬움이 있는 곳이다. 묘의 좌향(坐向)은 건좌손향(乾坐巽向)에 을진파(乙辰破)다. 우수(右水)가 좌(左)로 흘러 을진방(乙辰方)으로 나가니 수국(水局)으로 차고소수자생향(借庫消水自生向)이다.

 

이는 양공(楊公.834~900.唐 國師) 구빈(求貧)의 진신수법.의 하나로 본국(本局)의 양위(養位)를 충파한다고 논하지 않으며 부귀(富貴)하고.장수하며 인정(人丁)이 대왕한다. 차남이 먼저 발복하지만 용(龍)과 사(沙)가 좋으면 장방(長房)이 먼저 발달하기도 한다.

 

 

[윤명선 기자 ti2@rok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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