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의 문화탐방 18회...실직군왕릉(悉直郡王陵)

기사입력 2023.04.03 08:26
댓글 0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사본 -AS6CA2.png

주암선생의 문화탐방 18회...실직군왕릉(悉直郡王陵)

 

■ 실직군왕릉(悉直郡王陵) 삼척김씨 시조 묘


실직군왕릉(悉直郡王陵)은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손자이며 삼척김씨 시조인 김위옹의 능이다.


실직군왕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제 八子인 일선군(一善君)의 아들 김위옹(金渭翁)으로서 고려 왕건이 경순왕의 복속을 받아들이자 인정을 베푸는 정책적 차원에서 실직군왕으로 책봉하였다.


삼척시 당저동에 재사왕묘(齋舍王廟)가 있어 매년 음력 3월 15일 제사를 올리고 있다.


이 무덤의 유래에 대해서는 『삼척군지』에 의하면, 조선 헌종 4년(1838) 가을에 김학조(金學祚), 김흥일(金興一) 등이 당시 삼척부사 이규헌(李圭憲)에게 시조의 유적과 지석(誌石)을 찾아보겠다고 간청하여 발굴하였더니 출토품으로 토기 여러 점이 나왔다고 한다.


얼마 뒤 이를 개축하여 봉하였으며, 수찬 박주운(朴周雲)이 비문을 써서 실었다고 한다. 그 뒤 100년만인 1937년에 김원갑(金源甲), 김형익(金炯益) 등이 종중(宗中)에 수축할 것을 건의하여 석의(石儀)를 갖추어 능으로 봉하였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마을의 어떤 사람이 그 능 옆에 암장하려고 몰래 구덩이를 파던 날 밤에 구덩이에서 샘물이 솟아오르고 백호(白虎)가 와서 걸터앉아 은은한 바람을 일으키고 뇌성벽력이 진동하자 두려워 도망쳤다고 한다.(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본 -AS946E.png

 

PS

주산인 갈야산(178.4m)에서 지현굴곡을 하고 다시 남향으로 동진하여 남향 행도하여 건해(乾亥)로 입수하였다.


좌향(坐向)은 해좌사향(亥坐巳向)으로 남향이고. 파구는 진파(辰破)다 이는 당(唐)의 국사인  양균송((楊筠松.-834~900)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차고소수자생향(借庫消水自生向).으로 우수(右水)가 左로 흘러 을진방(乙辰方)으로 나간다.


이는 부귀.장수하며  人丁이 대왕한다. 차남이 먼저 발복하지만 용(龍)과 사(沙.)가 좋으면 장방(長方ㅡ장남)이 먼저 발달하기도 한다.


국세는 출중하면서도 안정적인 大局.이다. 삼척시를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성북동 갈야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데 좌우 용호사는 주인을 향해 납작 엎드리면서 2중 3중으로 호종하고 기운이 설기를 못하게 교쇄하면서도 조당안에 재물도 새나가지 못하게 긴밀하게 교쇄하고있다.


또한 대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오십 천의 물이 크게 주인을 향해 환포하고서 나가는 모양새가 천하일품이다. 당판 튼실하고 혈장은 크며 지기(地氣)도 좋은데 재혈은 화룡점정(畫龍點睛)이다.

시조 묘로 손색이 없을뿐더러 8대 명당에 넣어도 좋은 곳이다. 대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오십 천의 물이 크게 주인을 향해 환포하고서 나가는 모양새가 천하일품인데 옥에 티라고 할까? 아님 누구의 눈 밖에 났을까?


설에 의하면 너무 큰 자리라 모대통령이 신변의 위협을 받을까 봐 대강물의 물길을 바꾸기 위해 안산을 짤라버리고 환포하던 물길을 돌려버렸으니 이를 어이 할까? 또 안산의 좌향을 자좌오향(子坐午向)에서 건좌손향(乾坐巽向)으로 바꾸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윤명선 기자 ti2@rokfnews.com]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한국풍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댓글0
이름
비밀번호
 
신문사소개 | 광고안내 | 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보호위원회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top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