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4회... 이기(李墍.) 묘

기사입력 2023.07.31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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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4회... 이기(李墍.) 묘


이기[李墍.1522년(중종 17) ~ 1600년(선조 33)]는 대사헌, 지돈녕부사, 예조판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한산(韓山.지금의 충청남도 서천))이다. 자는 가의(可依). 호는 송와(松窩). 장윤(長潤)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질(秩)이다. 아버지는 지란(之蘭)이며, 어머니는 원선(元璿)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시서에 능했다. 1555년(명종 10)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7년 수찬(修撰)을 역임한 뒤 전한(典翰)이 되어 편수관으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화군 보(順和君0x9A45)를 보필하면서 강원도에 내려가 의병을 모집하였다. 지중추부사·대사헌·지돈녕부사·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죽은 뒤 1603년에 2품 이상 재신을 청백리로 뽑는데 녹선되었고, 그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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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대사헌으로 있을 때 종로 네거리를 지나는데 말이 너무 말라 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는 개의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훗날 말이 피곤해 땅에 주저앉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대사헌의 말’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그는 이처럼 청빈하여 한사(寒士)나 다름없이 직책을 맡아보았다. 시호는 장정(莊貞)이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풍수적 고찰

월림산(200m)에서 발조하여 庚酉龍로 기복굴곡으로 서진하여 중조봉을 이룬 후 丙午로 방향을 틀어 乾亥龍으로 입수를 하였다 국세는 백호가 안아주지 못하고 약간 비주하는 모양새이기는 하나 대체적으로 편안하며 안정적이다.

 

당판 크고 옹골차다.묘역을 잡다한 돌들로 산민하게 쌓아 놓았는데 생각보다 높지는 않아 다행이고 짐승들의 침입을 막는 비보(裨補)로 보는 것이 타당할듯하다. 주산은 금성체로 후부(後富)한데 묘 좌측으로 근자에 들어선 고압선이 지나고 있어 찾아오는 후손들에 피해가 갈까 두렵다.


좌향(坐向)은 건좌손향(乾坐巽向)에 파구(破口)는 병오파(丙午破)로 문고소수(文庫消水)이다 문고소수(文庫消水)는 양공(楊公)의 진신수법으로 書에서 녹존유진패금어( 祿存有盡佩金魚)라는 말이 이것이다. 즉 부귀(富貴)하여 복수쌍전(福壽雙全)하지만 역간이라도 차질이 있으면 패절(敗絶)하니 가벼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으며 용진혈적(龍眞穴的)해야 무방하다.고 한다.




 

[윤명선 기자 ti2@rok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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