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주암선생 문화탐방 44회... 선덕여왕릉(善德女王陵)

기사입력 2023.10.31 00:09
댓글 0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사본 -ASBE1A.png

(한국풍수신문 )

 

주암선생 문화탐방 44회... 선덕여왕릉(善德女王陵)


[한국풍수신문] 선덕여왕(善德女王.~647.1.8)의 본명은 김덕만.이다. 신라 27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632년∼647년.이며 본관 경주이며 .아버지는 진평왕.어머니는 마야부인 김씨 배우자는  음갈문왕.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자신의 무덤을 도리천에 써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신하들이 유언을 듣고 도대체 도리천이 어디냐고 물으니 낭산이라고 대답하여 그대로 낭산에 장사지냈는데, 후에 문무왕이 선덕여왕릉 밑에 사천왕사를 세워 선덕여왕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한다.


불교의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에는 거대한 수미산이 있다. 수미산은 정상이 정사각형 모양이고 산체(山體)는 정육면체, 또는 뒤집어놓은 피라미드처럼 생겼다고 한다. 수미산 중턱에 사천왕이 거주하는 사왕천(四王天)이 있고, 정상에는 제석천과 다른 신들이 사는 도리천(忉利天)이 있다.


사천왕사가 낭산의 밑에 있으니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 꼭대기는 당연히 수미산의 정상, 즉 도리천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불상을 모신 단을 '수미단'이라 부르는데, 부처를 수미산의 정상에 모신다는 상징적인 뜻이다.


선덕여왕릉은 비석과 같은 명문이 기록으로 확실히 무덤의 주인이 알려진 무열왕릉이나 흥덕왕릉과는 달리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해서 비교적 확실히 무덤의 주인이 알려진 무덤이다.


참고로 지금의 선덕여왕릉은 과거 수해를 입어 무너졌었으며 근세, 근대에 들어서 무너진 부분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즉, 지금의 선덕여왕릉의 돌 기단은 당시의 것이 아니다. 1968년 12월에 도굴 시도가 있었지만 미수로 끝난 일이 있었다. 신라 27대 왕 선덕여왕 능 사적 제182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위키백과)

 

사본 -ASEBB2.png

 

● 풍수적 고찰

선덕여왕릉(善德女王陵)은 한등산(268.7m)에서 출맥하여 병오(丙午)ㅡ신술(辛戌)룡으로 행도하여 낭산(狼山.99.5m)을 성봉하고 낭산의 9부 능선에 임자(壬子)룡으로 입수하여 좌정하였다.


낭산의 높이가 99.5m가 되는데 역사 기록에 의하면 수해의 피해를 입었다.하니 얼마나 큰 홍수였는지 대강 짐작이 간다. 총명함과 지혜의 여왕으로 각인된 선덕여왕은 사후의 집인 자신의 신후지지를 정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명성에 어긋남이 없이 좋은 자리다.


당판도 좋고.지기도 좋고.토색도 자윤하고 재혈도 손색이 없다. 좌향(坐向)은 임좌병향(壬坐丙向). 파구(破口)는 정미(丁未)파 이는 구빈(求貧)양균송(楊筠松.834~900.唐의 國師)의 진신수법의 하나로 차고소수자왕향(借庫消水自旺向)이다.

 

차고소수자왕향(借庫消水自旺向)은 임관룡(壬官龍).우선룡(右旋龍)에 좌수도우(左水到右). 병오향(丙午向)에 정미파(丁未破)로 詩의 유유쇠방가거래[惟有衰方可去來(쇠방으로 물이 나가도 되고 들어와도 좋다)]에 합당하여 발부발귀(發富發貴)하고. 인정대왕(人丁大旺)을 하며 장수(長壽)하는 좋은 향법이다. 간방수가 들어오면 삼길육수의 水가 되어 비상한 인재와 문장이 나고 급제한다.



[윤명선 기자 ti2@rokfnews.com]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한국풍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댓글0
이름
비밀번호
 
신문사소개 | 광고안내 | 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보호위원회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top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