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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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 풍수이야기 9회 ... 아방궁의 진실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 풍수이야기 9회 ... 아방궁의 진실 [한국풍수신문] 아방궁(阿房宫)은 진시황제가 세운 궁전이다. 함양과 위수 근처 즉, 섬서성 서안시 서측 13km 지점의 아방촌(阿房村)에 자리한다. 진시황의 사후에도 공사가 계속되었지만, 진이 멸망한 탓에 미완성으로 끝났다. 진시황제가 재위하면서 효공이 세운 함양궁은 협소하다고 하여 황하 지류 남측의 상림원(上林苑)에 새로운 궁전 축조를 계획했다. 아방(阿房)의 땅에 궁전을 건설하려고 했지만, 진시황 생전에 완성하지 못했다. 사마천의 『史記』에 의하면, 궁전 규모는 동서로 5백보(3000척), 남북으로 50장(500척)이다.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동서로 600m~800m, 남북으로 113m~150m에 이른다. 그 궁전 위에는 10,000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에는 15미터 가량의 기를 세울 수 있었다. 전 밖에는 목책(木柵)을 세우고 복도를 만들어 남산에 이를 수 있고, 복도를 만들어 아방에서 위수를 건너 함양궁에 연결되었다. 『史記』에 따르면 아방궁은 楚나라 項羽에 의해 불태워졌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항우에 의해 불탄 것은 함양궁이고 아방궁은 불타지 않았다는 설이 2003년에 제기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아방궁은 이 궁궐의 정식 이름도 아니었다. 사마천의 『史記』에 따르면 아방(阿房)의 ’아‘는 가깝다는 뜻이고, ‘방’은 곁방(傍) 자와 같은 뜻으로, 기존 함양궁 근방 일대를 부르는 지명이었는데, 공사 중에 임시로 이 지명 아방을 붙여 아방궁이라고 불렀고, 결국 미완성 상태에서 끝나 정식 이름은 지어지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궁전으로서 역할도 못하고 사라졌지만, 그 위세가 어찌나 대단하였던지 아방궁이란 명칭은 한자 문화권에서 가장 화려하고 거대한 건축물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남아 있다. 본래 진나라의 수도에는 이미 여러 차례 증축한 거대한 함양궁이 존재했는데,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할 때만 하더라도 계속 함양궁에 머물렀다. 이후 거대한 능묘와 만리장성처럼 새로운 궁궐을 지었다고 전해지는 것이 아방궁이다. 그러나 아방궁은 중국 역사상 황제의 거대하고 사치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대명궁과 자금성, 원명원, 기타 황실 불교 사원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작은 편에 속한다. 진시황이 건립한 만리장성이나 능묘가 실존하는 만큼, 이 건물도 실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정작 아방궁지에서는 관련 유물이나 증명할 만한 고고학적 자료는 출토되지 않아 실존을 의심하는 학자도 많은 편이다. 진시황의 호화 궁궐이었다는 전설 속의 아방궁은 짓다가 중단한 설계상의 건축물이고, 초나라의 항우(項羽)가 불 질렀다는 고사는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사회과학원 고고학 연구소와 시안(西安)시 문물보호국 고고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아방궁 발굴단은 지난 2002년부터 5년간 아방궁 터를 전면 탐측·발굴한 결과 아방궁의 수수께끼를 풀어냈다. 발굴단의 리위팡(李毓芳) 연구원은 시안시 함양(咸陽) 아방궁터 추정지 부근 62㎢를 샅샅이 정밀조사했으나 건물을 짓기 위한 토대만 남아 있을 뿐 건축물이 완성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발굴 결과에 따르면 아방궁터에는 동서 1천270m, 남북 426m의 흙이 단단히 다져진 토대가 있었고, 이 토대는 동서와 북쪽에 담으로 둘러싸였으나 남쪽에는 담이 없었으며 불탄 흔적도 없었다. 담은 흙벽이 쌓아졌고 벽 위를 장식했던 기와도 있었지만 기와는 진나라 때의 것이 아니고 나중의 동한(東漢)과 북조(北朝)시대의 것이었다. 결국 아방궁은 설계상에만 존재하고 건물을 세우기 위해 토대만을 닦은 후 진나라가 멸망하자 중단된 미완성 공사인 셈이다. 리위팡 연구원은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秦始皇本記)에 항우가 함양에 진입한 이후 사람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가는 등 학정을 했던 사실은 기록돼 있지만 아방궁을 불 질렀다는 기록은 없다고 강조했다. 『사기』에 적힌 항우의 군대가 진나라를 멸망시킨 뒤 "진나라 궁전에 불을 질러 석달 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으며 수많은 보화와 부녀자가 재로 변했다"는 기록은 아방궁을 가리킨 게 아니라 아방궁 이전의 진나라 궁궐인 함양궁을 가리킨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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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의 풍수이야기 8회...이천서씨 시조 서신일의 묘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의 풍수이야기 8회...이천서씨 시조 서신일의 묘 [한국풍수신문] 서신일의 묘는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19번지에 있다. 효양산 정상 부근에 있어 천혈이다. 높은 곳에 있지만 앞쪽에 물이 나와 논이 있었던 곳인데 현재는 연못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나무꾼과 사슴 전설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보국과 입수룡이 잘 갖춰진 곳이다. 어찌 높은 산에서 이런자리를 찾았는지 우리 선배들의 높은 안목에 감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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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의 풍수이야기 7회...안동김씨 세도정치의 한 축을 형성한 김병학과 김병국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의 풍수이야기 7회...안동김씨 세도정치의 한 축을 형성한 김병학과 김병국 [한국풍수신문]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김조순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김조순을 비롯한 세도정치 세력의 계보를 추적해 보면 모두 한 사람으로 연결되고 있다. 바로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이다. 김창집은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의 아들로 여섯명의 형제(김창집, 김창협, 김창흡, 김창업, 김창즙, 김창립)가 모두가 뛰어나 6창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김창집의 후손들이 뛰어났는데, 고손자가 바로 김조순이다. 김조순을 중심으로 사촌, 6촌 형제들이 세도정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 특이하게도 김창집의 후손이 아닌 김창협의 후손에서 현달한 가문이 보이는데, 바로 김수근(이조판서)과 그의 아들 김병학(영의정), 김병국(영의정) 형제이다. 그중에 김병학은 다시 김준근의 양자로 가고 있어 별개처럼 보인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김상헌(좌의정)-김광찬-김수항(영의정)-김창협(대제학)-김숭겸-김원행-김이직-김인순-김수근(이조판서)-김병학(영의정)과 김병국(영의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조순과 김수근, 김병학, 김병국등은 촌수가 멀어도 너무 먼 사이로 벌어져 있는데, 어떻게 세도정치의 한복판에 자리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김창집의 손자인 김원행이 김숭겸의 양자로 입적하게 되고, 김창집의 고손자이자 김조순과는 6촌인 김인순이 다시 김이직의 양자로 오게 된 이유가 크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김원행과 김인순이 모두 김창집의 직계 후손으로, 안동김씨 세도정치 세력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충분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김수근이 이조판서를 역임할 수 있었고, 그의 두 아들이 영의정에 올라 세도정치의 마지막을 불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이후에 영의정에 올랐으니, 세도정치의 영향만으로 영의정에 오른 것은 아니다. 흥선대원군이 어려운 시기에 그를 알아보고 물심양면으로 도운 이력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한다. 그런 차원에서 김병학과 김병국의 묘를 찾아보고 답사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1979년에 발굴되어 사라진지 오래였다. 안산의 반월공단 개발로 인해 그들의 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당시 발굴상황을 정리한 『경기도 반월지역 안동김씨 분묘발굴조사보고서-김병국, 김수근 일가묘』가 출간되어 그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에는 묘소 전체를 촬영한 사진은 없고, 부분적인 모습만이 있어 아쉬울 따름이다. 묘소를 발굴했던 온양민속박물관에 김병학과 김병국 그리고 김수근 묘의 석물을 가져다 가묘로 조성해 놓아 아쉬움을 달래 주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무덤에서 수많은 옷가지가 그대로 출토된 것으로 보아 시신의 부패가 이루어지지 않은 미라의 상태로 있었던 것이 아닌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들의 시신은 후손들에 의해 화장되어 뿌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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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 풍수이야기 6회...안동김씨 광주목사 김이기의 묘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 풍수이야기 6회...안동김씨 광주목사 김이기의 묘 [한국풍수신문] 김이기의 묘는 양평군 개군면 향리 41-2번지에 있다. 김이기의 아들은 공조참의 김용순과 이조참판 김명순이다. 그런데 김용순은 자식이 없어 김조순의 아들 김유근(판중추부사)을 양자로 잇는다. 안타깝게 김유근도 자식이 없어 좌의정 김홍근의 아들 김병주(이조판서)로 대를 잇고있다. 반면에 김명순은 김이경에게 양자로 갔는데, 아들 셋을 두고있다. 김홍근은 좌의정을 김응근은 공조판서를 김흥근은 영의정을 지낸다. 김홍근은 병연(승지)과 병주(이조판서)를 두는데, 병주는 김유근의 아들로 양자를 간다. 김응근의 아들은 영의정을 지낸 김병시이고 김흥근의 아들은 김병덕으로 좌의정을 지낸다. 김이기의 묘는 횡룡입수해서 혈을 맺어 편안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김용순이 후손을 이어가는데 어려움을 겪지만 김명순은 후손들이 현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우리 풍수인들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후사가 이어지지 않았으니 나쁘다. 높은 벼슬에 올랐으니 좋은 자리다 하는 단편적인 사고만으로는 현대인들을 설득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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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의 풍수이야기 5회...세종대왕의 영릉 자리에는 원래 이계전의 묘가 있었다.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의 풍수이야기 5회...세종대왕의 영릉 자리에는 원래 이계전의 묘가 있었다. [한국풍수신문] 세종대왕의 영릉은 명당으로 유명한 것 만큼이나 여러 말들이 전하고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말이 광주이씨 우의정 이인손의 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영릉자리에는 원래 이계전의 묘가 있었다. 이는 『예종실록』 2권, 예종 즉위년 12월 27일자에 "천릉할 땅을 여흥 성산의 이계전의 분묘로 정하고 술자리를 베풀다”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곳에 이인손의 묘가 있었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되는 배경에는, 지창룡의 『한국지리총람』 명당찾아 삼천리(1977, 295-302쪽)에 기록된 내용에 의해 왜곡된 것이다. 지창룡은 원래 이곳에 이인손의 무덤이 있었는데, 이 터를 잡아준 지관이 다리를 놓지 말고 재실도 짓지 말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손들이 지관의 말을 듣지 않고 다리와 재실을 지었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영릉터를 찾으러 왔던 지관들이 비를 피하러 재실에 와서 이인손의 묘가 명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영릉터로 정하게 되었다는 그럴싸 얘기를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는 맞지 않는 말이다. 왕릉 터를 정하고자 할 때는 여러 후보지를 정하고 상지관과 대신들이 함께 답사를 하여, 최종 후보를 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기 때문이다. 지창룡 선생의 말처럼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선 재실에서 보고, 즉흥적으로 정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창룡 선생은 전혀 터무니 없는 말을 한 것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이인손의 무덤은 세종대왕의 영릉 터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예종실록』 2권, 예종 즉위년 12월 28일자의 기록에 따르면, "이인손(李仁孫)의 분묘(墳墓)는 이계전(李季甸)의 분묘 옆에 있다”고 조금은 애매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예종실록』 3권, 예종 1년 1월 1일자에는 "이인손(李仁孫)의 무덤은 영릉의 청룡(靑龍) 북쪽에 있다”고 보다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그리고 『예종실록』 2권, 예종 즉위년 12월 28일자에는 "천장(遷葬)할 때를 당하여 임금이 승정원(承政院)으로 하여금 치서(馳書)하여, 그 아들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 이극배(李克培)를 부르고, 행 호군(行護軍) 송문림(宋文琳)으로써 그를 대신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즉, 이극배가 평안도 관찰사로 있었는데 영릉을 천장하게 되면, 이인손의 묘도 아울러 이장해야 하는 상황이라 이극배를 대신해서 송문림이 그 자리를 대행토록 조치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조선왕조실록』에 분명하게 기록된 내용을 애써 외면하고, 근거가 부족한 특정인의 말에 의존한 주장은 지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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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박정해 교수의 풍수이야기 4회...안동김씨 세도정치와 음택풍수(김조순의 묘) 박정해 교수의 풍수이야기 4회...안동김씨 세도정치와 음택풍수 [한국풍수신문]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김조순(1765-1832)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 김조순도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그의 집안은 이미 오래전부터 명문가로 자리하고 있었다. 김상헌(좌의정)-김광찬(동지중추부사)-김수항(영의정)-김창집(영의정)-김제겸(사복시첨정)-김달행(처사)-김이중(서흥부사)-김조순(영안부원군)-김좌근(영의정)-김병기(이조판서)로 이어지는 그의 가계도가 이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 조카와 삼촌 그리고 더 넓은 범위의 친족들이 세도정치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창집의 묘) 대표적인 인물로 김문근(철종의 장인)과 김조근(헌종의 장인), 김병학(영의정), 김병국(영의정), 김영근(판돈녕부사), 김유근(판돈녕부사)등이 있다. 거대한 권력을 휘두르던 그들의 묘소에 나타나는 특징들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먼저 문인석이 없다는 것이다. 세도정치의 뿌리를 내린 김조순을 비롯하여 그들의 조상산소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미관말직을 지낸 양반가에서 흔하게 보는 문인석이 없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철종의 장인 김문근의 묘) 두 번째 와혈에 무덤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김상헌을 비롯하여 김창집, 김제겸, 김달행, 김조순, 김좌근, 김병기, 김문근등의 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셋째는 묘비석을 정면 혹은 측면에 세우고 있다. 묘비석의 형태도 같은데 거의 모든 안동김씨 묘역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본인의 벼슬과 합장한 부인들의 이력을 밝히고 있다. (김달행의 묘) 넷째는 남양주와 여주, 이천 등지에 조성되어 있는데, 거의 부드럽게 탈살한 야산자락을 선택하고 있다. 험하거나 강한 지세에는 조성하지 않았다. 이를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해 볼 수 있는데, 그 집안의 가풍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초기 세도정치를 뿌리내린 김조순의 경우 굉장히 치밀하지만 겸손하고 치부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이중의 묘) 얼마든지 맡을 수 있었던 정승을 맡지 않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요직을 맡고 있다. 그리고 비변사의 2인자의 자리를 죽는 순간까지 가지고 있으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의 특징적인 모습이 와혈에 무덤을 조성하는 경향과 부합하고 있다. (판돈녕부사 김연근의 묘) 또 다른 특징으로 부드럽고 순한 야산자락에 자리한 그들의 묘역도 역시나 부드러운 성품으로 나타나 적을 만들지 않고자 하는 성향과도 부합하는 모습이다. 권력의 중심에 있다 보면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과 적대적인 상황을 맞이할 수 있는데,이를 부드러움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성향과 부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격함에서 오는 많은 문제점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화려한 분묘조성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이를 정립하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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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박정해 교수의 풍수이야기 3회...윤선도의 세연정한국풍수신문,박정해 교수의 풍수이야기 3회...윤선도의 세연정 윤선도의 세연정 세연정은 윤선도가 맘껏 인생을 즐긴 곳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정자를 건설하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즐긴 곳이기 때문이다. 윤선도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말년에는 낙향하여 해남종택과 보길도를 왕래하며 살았는데, 더 할 수없는 풍류를 즐긴 것이다. 조상들이 물려준 만석지기 재산과 본인이 올랐던 참의 벼슬이 큰 힘이 되어준 것이다. 여기에 더해 그의 풍수실력도 한몫하게 되는데, 절묘한 터잡기에 공간구성을 이루어 내고 있다. 하지만 남부지방의 가뭄은 세연정 연못의 물도 바닥을 드러내게 하고 있다. 빨리 비가와서 주민들의 가뭄도 해갈하고 세연정 연못도 다시 아름다움을 되찾기 바란다. 이곳은 비봉귀소형 혹은 갈마음수형등으로 혈명을 정할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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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의 풍수이야기 2회... "평산신씨 시조 신승겸 장군의 묘"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의 풍수이야기 2회... "평산신씨 시조 신승겸 장군의 묘" [한국풍수신문] 신숭겸 장군의 묘는 여러 전설이 있고 조선 8대 명당이라 불리기도 한다. 아름다운 소나무가 어우러져 더 할 수 없는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런데 눈 오는날 찾아든 묘소는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모습보다도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풍수공부를 하면서 이곳을 여러번 찾았왔고 여러 시각에서 분석해 보면서 풍수이론과 실전에는 차이가 있고 이를 해석하는 방법도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풍수이론을 곧이곧대로 적용하지 않으면서 8대명당이라는 분류는 어떤 기준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는지 또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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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의 풍수이야기1회..."산관인정 수관재물(山管人丁 水管財物)의 출처와 풍수론"(한양대학교 동양문화학과 주임교수 박정해) 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의 풍수이야기 "산관인정 수관재물(山管人丁 水管財物)의 출처와 풍수론" [한국풍수신문] 풍수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오래된 역사만큼 학문적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편견에 시달리며 미신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과 대학원에 학과가 개설되어 석·박사 학위자가 배출되는 현재에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미신이라 매도된 배경에는 풍수고전이나 합리적인 논거에 바탕을 둔 논리전개가 아닌, 자신만의 논리에 매몰되어 억지스러운 주장이 난무하는 현실이 한몫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과거의 논리에 매몰되어 억지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미신으로 매도되는데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 몇몇의 풍수인들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은 풍수발전에 하등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정적인 인식만을 키우게 될 뿐이다. 때문에 누구나 납득 가능한 합리적인 논리로 무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현재 풍수계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활용성이 많은 다양한 이점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한 필자의 책임도 크다. 대학원에 학과를 만들고 학생들을 배출하면서 사업모델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가능성을 놓고 다각도로 고민중이다. 높은 부가가치로 승화시키고자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옆에 성큼 다가온 AI 시대에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생존하느냐 도태하고 말 것이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필자와 같은 선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노력을 하는 한 생존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변신에 따른 고통은 필수적이겠지만, 부단한 노력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더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풍수인들이 '화장문화'火葬文化 때문이라고 하는데, 일부는 맞는 말이지만 전적으로 옳은 얘기라 할 수 없다. 오히려 훨씬 더 크게 발전하고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데, 여전히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안타까운 맘이 크다. 즉, 현대인들이 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풍수를 사업화해야 한다. 우리는 풍수를 공부하는 동안에 선현들이 하던 말을 아무런 의심없이 사용하였다. "출처나 내면에 숨어있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시도없이 맹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말이 "山管人丁 水管財祿”이라는 말이다. 물은 재물을 관장하고 산은 인물을 관장한다는 말인데, 이 말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알려는 시도는 없었다. 필자도 근래에 출처를 찾고자 다양한 풍수 고전을 뒤진 끝에『天玉經』 外篇(上)에 나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양균송의 저서로 알려진『天玉經』 에는 "山管人丁 水管財祿”이라 기록하고 있다. 표현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뿐 뜻은 같다. 이미 1,000여년 전에 양균송은 물이 재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언급이 이중환의『擇里志』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중환은 물자의 유통이 유리한 곳에 돈이 모이고 사람이 살기 좋다는 뜻을 표명했는데, 대량의 물자 유통은 강이나 바다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곧 풍수에서 말하는 수관재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현재에도 물자의 유통은 재화 창출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당시 재화 창출의 또 다른 수단이 농사였는데, 쌀을 생산하는데 있어 물은 가장 중요하다. 물이 있어야 쌀농사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자의 유통과 쌀의 생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물이 곧 돈이라는 의미는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AI 시대의 생존전략은 곧 논리라 할 수 있다. 단순한 술수는 컴퓨터를 통한 빅데이터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논리는 컴퓨터가 인간을 뛰어넘기 어렵다. 인간만이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논리만이 풍수를 비롯한 동양학이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과거와 같이 논리가 아닌 ‘술수’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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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보문산‘숲속의 열린음악회’성료, 24~26일까지… 관람객 8,000여명 '아름다운 선율이 전한 최고의 힐링'제5회 보문산‘숲속의 열린음악회’성료 24~26일까지… 관람객 8,000여명 '아름다운 선율이 전한 최고의 힐링' [한국풍수신문] 대전시가 주최한 숲속의 열린음악회가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보문산 숲속공연장에서 시민의 뜨거운 호응과 관심 속에 성황리에 종료됐다. 올해 다섯 번째 열린 이번 음악회는 원도심 지역을 활성화하고 문화소외지역 시민에게 문화향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추진한 행사로 3일 동안 8,000여명의 관람객이 찾아와 여름 끝자락 밤의 정취와 낭만을 즐겼다. 지난 24일 첫째 날은 대전시립교향악단(지휘 마티아스 바메르트)과 바이올리니스트 올리비에 케라스, 소프라노 김순영, 테너 서필, 뮤지컬배우 민영기의 협연으로 행복한 야외 클래식 무대를 열었다. 25일 둘째 날은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연주단(지휘 공우영)의 연주로 가수 최백호와 소리꾼 김용우, 국악원 연주단 생황단원 김보리 등이 출연하여 매력적인 국악기의 음색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6일 마지막 날 공연은 코리안필하모니팝스오케스트라(지휘 김동문)이 가수 김범룡과 신형원, 이화숙 그리고 테너 임철호, 색소포니스트 김만규와 함께 째즈와 영화음악, 가요, 팝 등 대중적인 음악이 어우러진 특별한 공연을 선보여 보문산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여름밤을 선사했다. 특히, 매 회 공연 시작 전 지역청년인재를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장르의 지역 청년예술가가 퍼포먼스를 실시해 한층 더 볼거리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보문산 숲속의 열린음악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남녀노소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으며,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과 함께 숲속 자연이 어우러져 여름철 대표 음악회로 손꼽히고 있다. 매 회 공연을 찾았다는 한 시민은"온 가족이 함께 숲속에서 공연을 감상하는 것이 인생에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다”며 "무료 공연임에도 유명한 출연자들을 현장에서 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고, 이런 공연이 자주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전시 정해교 문화체육관광국장은 "대전시민의 추억과 향수가 깃든 장소인 보문산에서 앞으로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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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기 남양주 향토순례단 발대식제21기 남양주 향토순례단 발대식 [한국풍수신문] 남양주시(시장 조광한)가 후원하고 남양주 문화원(원장 이보긍)이 주최‧주관하는 "남양주 향토순례단”이 8월 10일 오전9시 남양주시청 다산홀에서 참가학생, 대학생 플래너즈 및 부모님 등 200여명과 함께 21번째 발걸음을 내딛었다. ‘남양주 향토순례단’은 미래의 꿈나무인 청소년들에게 남양주의 다양한 전통과 역사, 문화 및 자연경관을 알려주고 체험하게 하여, 올바른 역사관 정립과 애향심을 고취하고 또한 단체생활을 통해 협동심과 인내심을 배양하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관내 5~6학년 초등학생 90명이 참가하여 2박3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다.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우리 남양주는 조선의 첫 번째 왕과 마지막 왕 고종,순종의 왕릉이 있는 곳이다. 또한 남양주시와 구리시를 잇는 왕숙천은 태조 이성계가 묶었다 하여 왕숙천, 8일 밤을 묶었다하여 진접읍 팔야리로 불리고 있다. 이렇듯 선조들의 얼이 곳곳에 숨어 있는 곳을 2박3일 동안 즐겁고 유쾌하게 지내며 남양주에 대해 궁금해 하며, 알아가며, 남양주의 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한편, 남양주 향토순례단은 ‘남양주시대학생플래너즈(단장 정주용)’회원들의 무료봉사로 참여자 인솔, 진행, 돌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일정은 1일차는 다산유적지, 생태공원체험 및 체육‧예술 활동, 2일차에는 관내 박물관 및 홍‧유릉 관람 및 남양주시의회 모의 의정활동, 3일차에는 조별활동과 ‘도전! 골든벨’ 및 소감문 작성과 해단식으로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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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국민 희망 낭가파르바트 원정대’히말라야 14좌 완등 성공한국도로공사,‘국민 희망 낭가파르바트 원정대’ 히말라야 14좌 완등 성공 원정대 10명, 41일간의 대장정 끝에 낭가파르바트 등정 성공 도공 산악팀 김미곤 대장 국내 6번째 히말라야 14좌 완등 성공 [한국풍수신문] 국도로공사(사장 이강래)는 7월 9일 12시 21분(현지시간 08시 21분) 김미곤 대장 등 10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2018년 국민 희망 낭가파르바트 원정대』가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 등정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낭가파르바트(파키스탄 소재, 8,125m)는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해발고도 8,000m 이상 봉우리인 14좌 중 하나로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산이다. 한국도로공사 산악팀 2명과 외부 산악인 8명 등 총 10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국민 희망 낭가파르바트 원정대’는 올해 5월 30일부터 7월 9일까지 총 41일간의 대장정 끝에 이번 원정을 성공시켰다. 특히, 한국도로공사 산악팀 김미곤 대장은 이번 등정 성공으로 엄홍길, 故박영석, 한왕용, 김재수, 김창호 씨에 이어 국내 6번째로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완등하는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세계 40번째)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국가의 대동맥인 고속도로 건설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온 한국도로공사가 오직 ‘도전’과 ‘개척’ 정신 하나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였다”며 “이를 계기로 많은 국민들이 희망과 도전의 메시지를 받고 새로운 힘을 얻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내년 창립 50주년을 맞는 도공이 앞으로도 스마트한 고속도로 건설로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국위를 선양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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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립대, 코스프레로 머드축제 달군다충남도립대, 코스프레로 머드축제 달군다 ‘코스튬 대회 참가자 모집’ 18일 대천해수욕장서 개최, 선착순 350인(팀) 접수, 문화체육부장관상 등 시상 푸짐 [한국풍수신문] 세계인의 축제로 부상한 보령머드축제가 올해는 충남도립대의 코스튬플레이 페스티벌로 더욱 달아오른다. 충남도립대학교는 보령머드축제 기간 중 오는 18일 대천해수욕장 일대에서 ‘제19회 세계머드뷰티경연대회 코스튬플레이 페스티벌’을 개최함에 따라 대회 참가자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번 코스튬플레이 페스티벌은 패션·뷰티 분야의 트랜드 변화에 따라 그동안 충남도립대학교가 추진해 온 세계머드뷰티경연대회에 코스프레를 접목한 행사로, 머드축제와 대학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참가자 접수 기간은 7월 2일부터 11일까지 10일간이며, 참가 자격은 학생(고교, 대학생) 및 일반인(내·외국인 포함) 대상으로 선착순 350명(팀)에 제한한다. 시상은 ▲문화체육부장관상 ▲충남도지사상 ▲충남도의회의장상 ▲충남도립대학교 총장상 ▲보령시장상 등이 주어진다. 접수방법은 머드축제홈페이지(http://www.mudfestival.or.kr)에서 신청서를 다운로드 작성 후 팩스(032-872-5018)나 메일(rockerbw@naver.com)로 신청하면 된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전화(032-872-5017)로 문의하면 된다. 허재영 총장은 “코스튬플레이가 머드축제 중 하나의 콘텐츠로 활성화 돼 도립대와 머드축제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머드축제를 찾은 많은 방문객과 행사 참가자들도 이번 대회를 통해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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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제주들불축제제21회 제주들불축제 [한국풍수신문] 제주들불축제는 가축 방목을 위해 해묵은 풀은 없애고, 해충을 구제하려 마을별로 늦 겨울에서 경칩에 이르기까지 불을 놓았던 제주의 옛 목축 문화인 들불놓기 방애와 더불어 정월대보름 액막이와 소원빌기 의례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현한 축제로 30만㎡의 새별오름에 불을 놓는 장엄한 들불 광경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드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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