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의 문화탐방 7회...포은 정몽주 선생의묘

기사입력 2023.01.0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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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의 문화탐방 7회...포은 정몽주 선생의묘


포은 정몽주(鄭夢周) 선생 묘


[한국풍수신문] 정몽주(鄭夢周. 1337(충숙왕 복위 6)~1392(공양왕 4)는 고려 충숙왕 때 뛰어난 외교가이자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평가받은 고려 말기의 충신으로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몽란(夢蘭)·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인종 때 지주사(知奏事)를 지낸 습명(襲明)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성균관 복응재생(服膺齋生) 운관(云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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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0년 문과에 장원급제.1367년 성균관이 중영되면서 성균박사에 임명돼 <주자집주>를 유창하게 강론, 당시 유종으로 추앙받던 이색으로부터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평가받았다. 일을 처리할 때는 항상 사리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한다.고려왕조를 부정하고 새로운 왕조를 개척하는 데에 반대해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문객 조영규 등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


PS

충신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유택이 과연 신[神ㅡ시신을 고향 영천으로 운구하던 중 만장(輓章)날아가 따라가 보니 털어진 곳이 천하명당의 길지라 영천으로 가던 걸 포기하고 만장이 떨이진 길지에 용사했다.]이 점지할 정도로 길지인가?.


문수산(221 1m)에서 발조하여 辛戌인 행도하다 서향인庚酉龍.으로 기복굴곡을 하여 다시 辛戌龍으로 횡룡입수하여 유혈로 취기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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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주의 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청룡과 백호사(龍虎沙)는 삼중으로 중중히 호종하니 국세가 장엄하면서도 편안하다. 유혈의 당판이라 좌우 선익사가 뚜렷하여야 하는데 인작으로 인해 구별이 쉽지가 않는 곳이다.


내.외사가 중중일때는 내사가 더 우선이라 내사를 중시하면 취기처는 조금 더 윗쪽으로 가야ᆢㆍ청룡보다는 백호가 중중으로 유정하게 호종하니 장손보다는지손. 딸.또는 외손이 더 발음(發蔭)을 받고 발음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좌향(坐向)은  辰坐戌向 庚戌分金 乾亥 破口.다 이는 양공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火局의 정묘향(正墓向)이다.정묘향(正墓向)은 관대룡.우선룡에 좌선수(좌수도우ㅡ水가 絶방으로 나감)로 書에 이르길 신입건궁백만장(辛入乾宮百萬壯ㅡ辛向을 하고 乾方으로 물이 나가면 큰 부자가 됨)이란. 바로 이 향이다. 이는 발부발귀(發富發貴). 人丁이 大旺하며 복수쌍전(福壽雙全)이다

 

 

[윤명선 기자 ti2@rok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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