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7회... 강릉최씨(江陵崔氏) 중시조 최입지(崔立之) 묘

기사입력 2023.08.2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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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7회... 강릉최씨(江陵崔氏) 중시조 최입지(崔立之) 묘


최입지(崔立之)는 고려 후기의 문신.본관은 강릉. 자는 양필(良弼). 호는 성묵당(誠默堂). 시조 최흔봉(崔欣奉)의 12대손.으로 조부는 최군보(崔君甫), 父 최릉(崔陵)이다. 강릉최씨 평장공파(平章公派)의 시조이다. 


원래 최입지(崔立之)는 최흔봉(崔欣奉)공을 시조로 하는 완산(完山)인이었으나 시조의 묘가 실전되었고, 시조로부터 12세손인 충숙공(忠淑公) 최입지가 강릉군에 봉해지면서, 그 후손들은 강릉을 관향으로 쓰게 되어 그를 중시조로 모시게 되었다.


말년에 혼란한 정국을 뒤로 하고 강릉 모산(母山)에 은거하여 후손이 여러 대에 걸쳐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하여 최입지가 살던 곳인 현재의 강릉시 장현동 모산의 지명을 평장동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개국 후 수태사태상(守太師太常)으로 증직. 세종 때에는 영의정(領議政)에 가증(加贈)되었다. 시호는 충숙(忠淑)이다.


최입지의 유허지는 강원도 강릉시 장현동 모산.에 최입지구지기적비(崔立之舊址紀蹟碑)가 있다, (참고문헌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강릉최씨 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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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적 고찰

태백산맥의 오대산(2563m)에서 발조한 용은 동남향으로 기복굴곡(起伏屈曲)을 하고 다시 정동쪽으로 위이굴곡으로 행도하다 서진(西進)하여 소목고개를 지난 후 정좌하였는데 좌향(坐向)은 묘좌유향(卯坐酉向)을 하였다.


형국은 백호 작국으로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다. 혈형(穴形)은 유혈(乳穴)로 혈장(穴場)은 장유(長乳)다. 용호(龍虎)은 부모가 자식을 감싸 안듯 유정하다.. 안산(案山)은 부부가 밥상을 두고 사이좋게 앉듯이 아담하면서 다정다감한데 조산(朝山)은 약간 사비(斜飛)인 것이 아쉽다. 앞에 고속도로 개설로 인해 옛 모습인지 불분명하기도 하다. 조당(朝堂)은 작지만 알차다.


파구(破口)는 정미파(丁未破)다. 양공(楊公. 834~900.唐 국사)의)의 88향법에 의하면 이는 향상(向上)으로 관대방(冠帶方)을 충파하니어린 유년기의 총명한 자식이 상하고 또 규중의 부녀와 딸들이 상하면서  재산이 패하여 오래되면 패절하니 유의해야 할 향법중의 하나다. 고려 후대의 인물이라 그때는 파구의 개념이 보편화되지 않아서 크게 개의치 않았으리라 본다.


참고로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장안골 뒷산 고성산(古城山)에는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의 명혈로 알려져 왔으며, 금산리라는 지명도 거문고에서 따와 금산(琴山)이라 했다가, 나중에 강릉 김씨들이 많이 산다 하여 금산(金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윤명선 기자 ti2@rok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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