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의사 기념관

기사입력 2018.03.0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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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의사 기념관

(경북 문경시 마성면 샘골길44)


 

[한국풍수신문] 박열의사는 1919년 3월 1일,경성고등보통학교(경성고보)에

재학 중이였던 학우들과 탑골공원에서 열린 독립 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3·1운동의 전반적인 과정을 살피면서 「조선독립신문」

5,000장을 민가에 배포하는 등의 선전 활동을 통해 국민들에게  독립선언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

 

박열을 비롯한 경성고보의 몇몇 학생들은 자주독립의 의지와 반일 저항 의식을 가지고 일제를

완전히 추방하고 주권 회복과 독립 국가 건설을 제창하는 「격고문」을 '대한 청년 외교단'.

대한 독립 결사대, '대동단'등의 이름으로 경성 시내에 배포했다.

3·1 운동을 주도하고 선도한 학생 대표들은 일본 경찰에 잡혀서 형무소에 구금됐고

악독한 고문에 시달렸다.

 

박열의사는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해 고향으로 내려와 친구들과 함께

격문을 붙이며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윤명선 기자 ti2@rok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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