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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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의 풍수이야기16회 ... 철종의 예릉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의 풍수이야기16회 ... 철종의 예릉 [한국풍수신문] 서삼릉의 중심을 차지한 예릉...철종과 철인왕후 김씨가 뭍혀있다. 편안한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느끼기 어려운 곳이다. 그의 삶도 뚜렷함이란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그의 묘소에서도 역시나 그런 느낌이니 살았던 모습을 그의 묘소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전제는 성립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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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29회...목(木)의 끝에 걸려있는 화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29회 3) 가화목(架火木): 목(木)의 끝에 걸려있는 화 1. 만약 화(火)가 목의 끝(木杪)에 있으면 화(火)가 불타 없어진다. 2, 만약 봉우리 중간에 화(火)가 걸려 있으면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3, 그러므로 만약 화(火)가 주(主)가 되면 즉 화(火)는 목(木)을 얻어 왕(旺)하다. 4, 그러나 목(木)이 주가 되면 목(木)은 화(火)에 의해 불타 상처가 되니 반드시 물러나 지나가서 터를 맺어야 길(吉)하다. 그러므로 화성산 아래에 목성산이 있고 다시 목성산을 전하면 공후(公侯)가 집안에 가득하다. 목화통명(木火通明)으로 녹의 기운이 있다. 4) 천화목(穿火木) ➀천화목(穿火木): 화를 뚫고 나온 목 화(火)에서 목(木)이 뚫고나오니(穿) 화(火)의 세(火勢)가 매우 커서 빛이 난다. 먼저 화(火)가 목(木)을 얻어 왕(旺)하고, 목(木)이 다시 화(火)를 얻고 다시 물러나 화(火)가 죄니 녹기(祿氣)가 발달하고 반드시 대귀(大貴)한 사람이 나온다. ② 천화목(穿火木):강한 화를 뚫고 나온 목 하나의 목이 강한 화의 가운데 있으니 불타 없어진다. 그러므로 터를 만들지 못한다. 반드시 앞으로 물러나 떨어져야(退卸)하고 혹 다른 높이 솟은(高聳) 목(木)이 전(傳)하여야 바야흐로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터와 같으면 마침내 온화(殟 火)의 흉화(禍)를 면하지 못한다. ➂ 천화목(穿火木):고산의 목(木)이 평출(平出)하고 평평한 밭에 화각(火脚)을 두른 목성 고산(高山)의 목(木)이 평강(平岡)에 낙(落)하여 삼목(三木)이 평출(平出)하고 평평한 밭에 화각(火脚)이 있으니 녹(祿)이 수려함을 발하기에 족하다. 목성 감싸 왕(旺)하고 화(火)가 약(弱)하면 오히려 불이 꺼져서 살지 못한다. 그러나 목성(木星)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 터를 잡으면 후세에 조정의 작위를 받는다. 목화통명(木火通明)으로 녹의 기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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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28회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28회 2) 행지목(行地木) ➀ 행지목(行地木): 낮은 곳으로 내려와 땅에 넘어져 있는 목성 낮은 곳으로 내려와 땅에 넘어진 목(倒地木)으로 산(山)에 각수(脚手)가 있는 것이 행지목(行地木)이다. 또한 낮게 땅에 누워있는 면지목(眠地木)으로 길게 늘어져 미미(微微)하게 굽(曲)어 있다. 그러므로 땅에 넘어져 각수(脚手)가 없는 것이 도지목이고 각수(脚手)가 있는 것이 행지목(行地木)이다. 땅에 넘어져 있는 도지(倒地)의 목(木)이 만약 분명하면 스스로 귀(貴)하고 수려(秀)하다. 그러나 반드시 수려(秀)하고 단정하며 반드시 밭(田)이 호위(護)하여야 한다. 만약 용을 따르는 전호(纏護)가 없으면 홀로 고독함(單獨)을 주관하여 사찰이나 사당을 지을 수 있는 향화(香火)의 터가 된다. ② 행지목(行地木): 땅으로 길게 지나가는 목성 목성이 마치 갈대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이처럼 땅으로 지나가는 목성은 행목(行木)은 가지가 짧고 작아 양 곁에 가지가 감싸야 기를 취할 수 있다. 즉 가운데로 나오는 가지에 기운이 모이니 취할 수 있다. ➂ 행지목(行地木): 땅으로 지나가 변환이 있는 목성 낮은 평야지로 지나가는 목성이 밭을 지나 다시 누워있는 목성을 만든 것이다. 목성이 땅에 닿아 기운이 다하면 꽃이 피어 수기(秀)가 나오니 문성(文星)이 드러나고 참된 조응(應)을 만나면 과거에 등제(等第)하여 신선에 오른다. 즉 목이 땅으로 지나가 밭을 만나 목(木)이 왕(旺)하면 꽃이 핀다. 이러한 이치를 열매는 꽃이 다하고 난 뒤에 있기 때문에 진절지설(盡絶之說)이라 한다. 또한 꽃이 피고 밭에 떨어지는 것은 기(氣)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목(木)의 여기가 발달(發達)하면 꽃을 이룬다. 세상의 나무 심는 것에 비유하면, 꽃이 피면 화려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꽃이 떨어지고 나야 비로소 나무(木)에 열매가 맺는다. 이것이 화심혈(花心穴)의 이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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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15회... 선조의 목릉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15회... 선조의 목릉 [한국풍수신문]선조 33년(1600) 의인왕후 박씨가 승하하자 왕비릉인 유릉(裕陵)의 터로 정해진 곳이다. 1608년 선조가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선조의 능인 목릉은 원래 건원릉의 서편에 조영되었는데, 물기가 차고 터가 좋지 않다는 심명세(沈命世)의 상소에 따라 인조 8년(1630) 현재의 위치로 이장되고 유릉과 목릉의 능호를 합칭하여 목릉(穆陵)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인조 10년(1632)에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가 세상을 떠나자 계비의 능을 왕릉의 동편 언덕에 조영하고 처음에는 이를 따로이 혜릉(惠陵)이라 이름붙였다. 그러나 세 능역 간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고 하여 이를 모두 합하여 목릉ah이라 했다. 조선왕릉 중 세 개의 각각 다른 언덕이 조성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은 목릉이 유일하다. 2011년 12월, 문화재청에서는 목릉의 정자각을 보물 1743호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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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27회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27회 1. 목성(木星): 문관(文官)의 기운 목성(木星)이 하늘에 통하면 허리가 둥글게 솟아 다시 가늘게 여려진다. 목성은 화성과 비슷하여 시사(時師)는 화성(火星)으로 보고 잘못 작혈 한다. 특히 높이 솟은 문필봉은 원래 화성이나 그 기운을 택하여 문필봉으로 한다. 이러한 목성의 구별법은 다음과 같다. 1. 목성(木星)은 하나의 봉우리만 첨(尖)하고 첨(尖)한 봉우리 끝이 둥글고 바닥에도 둥근 각(脚)이 있다. 2. 목성(木星)은 높고 수려하며 머리가(頂) 첨(尖)하지 않다. 첨(尖)하면 즉 화(火)가 된다. 3. 화(火)는 인자(人字) 같고 양각(兩脚)이 넓고 머리(頂)는 침(針)과 칼(刀) 같다. 4. 목(木)은 마치 높이 세워진 붓(卓筆)같고 양각(兩脚)이 넓지 않고 머리(頂)는 뾰족하지 않다. 5. 목성의 신체(身體)는 둥근 것이 작고 높고, 금성의 신체(身體)는 둥글고 넓다. 목성(木星)은 전체적으로 문관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조종산에서 혈로 목성으로만 내려오면 변화가 없어 그 효험이 약하다. 목성은 금성과 만나 나무를 쇠로 다듬어야 기물을 만들 수 있고, 화성과 만나면 불빛을 발하니 문장가의 기운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성은 수성과 토성을 만나면 자양분이 되어 잘 자라고, 금성과 화성을 만나면 비로소 빛을 발하니 문관의 기운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목성은 수성이 너무 강하면 나무가 물에 떠내려가 이향(離鄕)을 주관하고, 토성이 너무 많으면 나무가 썩어버리니 그 분별을 정확히 해야 한다. 이것이 목성의 용수(龍髓)를 보는 방법이 된다. 1) 통천목(通天木): 하늘 높이 솟아있는 목성산 통천목(通天木)은 오성산(五星山) 가운데 제일 귀(貴)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목성산을 존성(尊星)으로 하고, 또 세성(歲星)으로 하고, 또 제성(帝星)으로 하고, 또 문성(文星)으로 하여 제일로 존귀(尊貴)하다. 그리고 낮게 앉아있는 좌목(座木)을 다음으로 한다. 하나의 목성이 하늘을 꿰뚫고 힘을 다하니 문성(文星)이 잉태하여 수려하고 극품(極品)이 되고 귀(貴)와 권세(權)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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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철 인터뷰, "파주 문화원장 우관제"(우관제 파주문화원장) 지철 인터뷰, "파주 문화원장 우관제" 안녕하십나까? 한국풍수신문의 지철 윤명선 입니다. 우관제 파주 문화원장님 , 바쁘신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국풍수신문] 파주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하여 서해로 흐르고 자유로와 통일로 의주로 지나가는 개성직할시와 서울 특별시 중간에 위치한 성현을 많이 배출한 곡창지대의 위치하며 지방문화원의 계승과 발전에 힘 모으시는 우관제 파주문화원장을 만났다. 다음은 우관제 파주문화원장과의 일문일답... ◎파주문화원은 어떤곳인가요? 파주문화원은 법률 제706호 1965년 7월1일 지방문화원 조성법과 동법 시행령 및 대통령령 제2335호 1965년 12월24일의 시행공포에 따라 지방문화원의 계승발전과 향토문화 창달을 위해 금촌복지관에서 1967년 12월19일 창립총회를 갖고 창립됬습니다. ◎강좌는 배움터, 예술터, 소리터 분과는 시민들의 호응은 어떤지요? 파주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하여 서해로 흐르고 자유로 통일로 의주로 지나가는 개성직할시와 서울 특별시 중간에 위치한 성현을 많이 배출한 곡창지대의 통일의 길목에 위치하며 삼현의 율곡 이이 우계 성혼 구봉 송익필 선생과 청백리 표상인 방촌 황희선생, 묵제 윤관 장군, 구암 허준 묘역과 삼능, 장능, 소령원, 수길원과 3개 향교가 있으며 3개 서원을 비롯하여 선현들이 잠들어 계신 문향의고장 기호학파 본향이도 합니다. (좌측,우관제 파주문화원장 우측,한국풍수신문대표 지철 윤명선) 문화학교 강좌는 40개 과목으로 다양합니다. 배움터, 문예창작, 수채화, 인문학강좌, 한시한문, 나만으 책만들기 ...예술터, 통기타, 가야금,한국무용, 민화, 사진반, 규방공예, 서예 ...소리터, 경기민요, 가야금...건강, 몸펴기생활운동, ...기타, 생활풍수, 인문화사주명리, 다우징 수맥파 바리스타 등 다수 (좌측 주암선생 , 중앙 우관제 파주문화원장, 우측 한국풍수신문 대표 지철 윤명선) ◎다른 시,도, 군과 다르게 주민들과 소통을 잘 하시는 이유는 뭘까요? 노인들의 배료와 여성회원확충, 임원들의 적극참여 의식, 문향의고장, 유림들에 대한 배려 시관계자와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과의 소통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파주문화원을 이용하시는 시민들께 한 말씀 주신다면? 파주문화원은 파주시민의 문화가족 입니다. 문화탐방 기회가 많으니 적극활용 하시고 선진지 견학 참여로 파주 인문학 강좌, 적극 활용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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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박저해교수 풍수이야기14회...효심 간직한 유화당한국풍수신문, 박저해교수 풍수이야기14회...효심 간직한 유화당 [한국풍수신문] 유회당(有懷堂)은 (權以鎭:1668∼1734)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건물로 보문산 남쪽 기슭 아늑한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 싶다는 뜻을 지닌 유회(有懷)는 중국 명나라 때 학자인 전목제의 명발불매 유회이인(明發不寐 有懷二人)이라는 시에서 따온 말입니다. 실제로 유회당 뒤편에 권이진의 부모 산소가 있다. 권이진은 본인의 묘소와 유회당 그리고 종택에서 모두 무곡금성체의 주산을 선택하고 있다. 어차피 선택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 그 사람의 취향이 반영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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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철 인터뷰, 퇴계 이황 선생의 14대손 "이영자 교수의 주역 이야기"(이영자 교수) 지철 인터뷰, 퇴계 이황 선생의 14대손 "이영자 교수의 주역 이야기" 안녕하십나까? 한국풍수신문의 지철 윤명선 입니다. 이영자 교수님, 바쁘신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국풍수신문] 이영자 교수는 가끔 부친을 떠올릴 때면 엄한 교육이 생각난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퇴계선생의 훌륭한 점을 많이 얘기하는데 후손으로서 무엇이 그리 훌륭한지 많이 궁금했고, 이기동 교수님으로부터 『주역』을 배우고, 최일범 교수님께는 이광지의 『주역절중』 다산 정약용의 『주역사전』 등 자연의 이치에 흥미가 생겼고 평생을 주역연구에 힘써 오신 임계 선생님의 부친인 백산 이은옥 선생님께 직접 배울 기회를 얻게 되면서 시작 되었다고 한다. 다음은 이영자 교수와의 일문일답... ◎ 퇴계 이황 선생의 직계후손 이신데 어릴 땐 어떤 교육을 받으셨나요? 가끔 부친을 떠올릴 때면 엄한 교육이 생각나곤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식들을 매우 엄격하게 교육하셨습니다. 매일 아버지의 교육적인 언사를 들으면서 자랐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전통적인 생활 태도와 예절은 물론이고 학업성취까지 직접 지도하셨습니다. 생활 속에서 행하는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예절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으면 고칠 때까지 바로 잡으려고 하셨습니다. 부모님 슬하에 있을 때는 저녁 식사 때면 잘잘못을 물으셨고 칭찬과 질책을 하시곤 했어요. 덕분에 남들이 보면 바르게 자란 티가 나 보이지만 참으로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답니다. 아버지께서는 작은댁 사촌 동생들에게도 예의범절을 엄하게 다스리셔서 사촌 동생들은 아버지 앞에서는 바른생활의 어린이로 바뀌곤 했어요. 이 모든 것은 자식들이 올곧게 성장해서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신 아버지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버지의 뜻을 이뤄드린 자식 하나 없지만, 아버지는 큰일을 하는 자식을 만들기 위해 자식 교육에 채찍을 선택하셨던 것이지요. 저희가 아버지의 뜻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당신께서 말씀만으로 교육하시는 게 아니라 직접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본보기를 보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책을 옆에 두시고 시간 날 때마다 읽으시고 붓글씨를 쓰셨는데, 특히 퇴계 선생의 문집을 해석하시려고 얼마나 옥편을 뒤지셨는지, 옥편이 너덜거릴 정도였습니다. 또한 사대 봉사하는 집안의 장손으로서 가문의 명예를 중히 여기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가풍이 습성에 배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실천하고자 하신 삶은 퇴계선생께서 말씀하신 ‘경(敬)’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어른을 공경하고,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예의 근본이, 올곧은 인간의 모습이라고 여기셨고, 자식들도 퇴계선생의 뜻을 실천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라셨던 것이었습니다. 칼 융(C.G Jung)이 자아는 적당한 충돌을 통해서 성장한다고 했듯이, 엄격한 아버지의 교육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아버지께서는 평생을 신념처럼 종가일과 도산서원 일에 열중하셨습니다. 집안일은 어머니께 맡기시고 언제나 문중의 일을 우선으로 여기셨습니다. 아버지의 엄한 교육과 뒤에서 무한한 자애로 포용해주신 어머니 덕분에 저희 형제들은 잘 장성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우애롭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 주역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2001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에 공부를 시작하였을 때 사람들이 퇴계선생의 훌륭함을 얘기하는데 후손으로서 제대로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기동 선생님의 권유로 퇴계철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이기동 선생님으로부터 『주역』을 배우고, 최일범 선생님께는 이광지의 『주역절중』 다산 정약용의 『주역사전』 등을 배웠는데 자연의 이치를 알아가는 점에 대해 흥미가 생겼습니다. 마침 대학원에서 같이 수학하던 임계 이규희 선생님이 주역공부에 뛰어나셔서 사설로 배우면서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이후 평생을 주역연구에 힘써 오신 임계 선생님의 부친인 백산 이은옥 선생님께 직접 배울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주역』에 관심 있는 몇 분과 함께 새벽바람을 맞으며 격주로 선생님이 계신 문경을 오르내리며, 가르침을 받으면서 자연의 깊은 이치가 담긴 『주역』이 곧 생활주역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주의 철학자인 퇴계 이기철학 역시 『주역』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느끼고 퇴계의 리기(理氣)를 『주역』의 건곤(乾坤)에 유비시켜 「『주역』의 관점으로 본 퇴계 이기론과 성정론」이란 제목으로 소논문을 썼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퇴계철학에서 소이연과 소당연의 역학적 연원에 관한 연구」라는 소논문도 썼습니다. 퇴계철학의 핵심인 경(敬)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뿌리가 되는 이기론을 알아야 했습니다. 이기론의 뿌리가 『주역』이었기에 『주역』을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퇴계 경사상 연구」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미진한 공부를 하기 위해 인사동에 개인 연구실을 마련했는데, 마침 부족한 제게 『주역』을 좀 가르쳐 달라는 분이 계셔서 제 공부도 할 겸 같이 『주역』을 읽은 것을 계기로, 결국 2014년 인사동에 학당 <소소재(韶素齋)>를 열고 『주역』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한양대 대학원에서도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 성리학과 주역을 어떻게 해석하시나요? 『주역』은 점서이면서 자연 변화의 이치를 담은 도덕실천서입니다. 중국 북송 이전 당말에 퇴폐한 불교를 대적하기 위해 유자(儒者)들이 세운 이론 기반이 바로 주역서(周易書)입니다. 북송 때 다섯 분(주돈이[太極圖說], 정명도•정이천[理], 장재[氣], 소옹[數])이 모두 『주역』을 연구하였습니다. 특히 주돈이의 「태극도설」에서는 천명(天命)이 만물에 본성[理]을 부여하는 것을 다섯 단계로 설명하였고, 정이천은 인간의 본성은 바로 하늘로부터 온 것으로 ‘본성이 바로 리[性卽理]’라고 하였습니다. 성리학은 하늘의 이치에 따른 도덕적인 삶에 대한 철학을 밝힌 것으로 인생의 의의와 가치를 높였습니다. 남송 때 주자가 다섯 분의 사상을 집대성해서 주자학, 송학, 리학, 정주학, 성리학이라 하였는데 모두 같은 의미의 다른 이름들입니다. 조선시대 중기 성리학을 꽃피운 분은 퇴계선생이십니다. 퇴계선생은 20살 경에 『주역』을 접하셨는데 후일 건괘(乾卦)• 곤괘(坤卦)를 근간으로 ‘리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철학을 구축하여 주자학을 한층 더 발전시켰습니다. 선생은 68세 때 17세인 선조임금께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올리셨는데 이것은 하도•낙서(河圖•洛書:주역)가 나옴으로 성인이 도를 구했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퇴계 선생께서는 인간의 본성은 곧 리[性卽理]로 영원히 존재하여 생사가 없다고 합니다. 저는 ‘리’의 현대적인 해석이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인간의 몸[氣=器]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지만 내 안에서 나 되게 하는 하늘로부터 받은 리는 자연의 보편적 원리로서 때로는 우주 자연의 일반적 운행[功用], 때로는 신비한 운행[妙用]으로 인간과 상호 관계 속에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퇴계선생은 "신의 구별이 세 가지가 있으니 하늘에 있는 신, 사람에게 있는 신, 제사의 신이 있다. 이 세 가지가 다르기는 하나 그 신이 되는 것은 같다.”고 하셨는데, ‘정신’은 ‘리’로서 자연과 나와 조상이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리학’의 뿌리는 『주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좌측, 한국풍수신문 대표 지철 윤명선 우측,이영자 교수 ) ◎ 주역을 현시대에 맞게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요? 『주역』은 우주의 변화 원리를 담은 책입니다. 또 『주역』은 인간이 수시 변화하는 현실의 어려운 상황과 마주할 때, 상황에 맞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담은 생활 철학서입니다. 그래서 『주역』은 삶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바르게 실천할 수 있도록 마치 부모님이 다가와[如臨父母] "얘야 이 길로 가거라.” 하며 자식에게 친절히 가야 할 방향을 안내해주듯 올바른 길라잡이 역할을 하지요. 자연의 이치를 고스란히 글로 담은 책이니 정확히 해석하고 풀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단지 욕심에 가려 『주역』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거나 해석을 바르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따르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지요. 『주역』이 4700년의 역사를 지나면서 소멸되지 않고 여전히 연구하고 사용되는 것은, 그 내용을 은유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움이 있지만, 반면에 어떤 상황에도 유비시킬 수 있기에 지금도 유효한 것입니다. 그럼 『주역』에 대해 점서이면서 도덕실천서 관점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먼저, 점서적 관점에서 수택절괘(水澤節卦:䷻)에 있는 여섯 개의 효 중에서 초구효와 구이효 두 효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는 서로 상반된 결과로 나타나기에 잘 해석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수택절괘의 절(節)은 절도와 절차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못 위에 있는 물이기 때문에 조금만 많아도 넘치고, 조금만 부족해도 물이 안으로 들어가는 상(象)입니다. 그렇기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절차와 절도를 잘 지켜야 하는 괘입니다. 이 괘의 초구효(初九爻)는 ‘방문을 나가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不出戶庭 无咎]’고 했습니다. 이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에 움직이지 말아야 할 때를 잘 알고 본인 의지를 가지고 나가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반면에 구이효(九二爻)는 ‘문밖을 나가지 않으니 흉하다.[不出門庭 凶]’고 하였습니다. 이는 문밖을 나갈 때가 되었는데 나가지 않아서 때를 잃어버려 흉하다는 말입니다. 결국 초구효는 일을 할 때 소극적으로 해야 함을 말하고, 구이효는 때를 놓쳐서 나아가도 소용이 없게 된 흉한 상황으로, 나아갈 때를 잃어버린 형국이 됨을 의미합니다. 앞의 초구효와 아주 다른 결과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주역』은 인간의 수많은 삶의 순간에 하늘의 뜻을 우리에게 세밀하게 가이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주로 <상전(象傳)>에 보이는 도덕적 관점을 들어보겠습니다. <중천건괘(重天乾卦)>䷀에서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도 하늘의 이치를 본받아서 잠시도 쉬지 말고 노력하라[象曰 天行健 君子以 自疆不息]”는 말씀과, <중지곤괘(重地坤卦)>䷁에서 "온갖 만물을 모두 포용하고 있는 땅의 형세와 같이 군자도 이것을 본받아 덕을 두텁게 하여 포용력 있게 행동하라는 것[象曰 地勢坤 君子以 厚德載物]”의 공자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공자님과 퇴계는 『주역』에 보이는 것과 같이 하늘(자연)으로 부터 받은 본성에 따라 순리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점에서는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이렇게 64괘 384효 모두는 일상생활 속에 바로 접목을 시켜 상황에 맞게 처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주역을 공부하는 후학도들에게 한 말씀 주신다면? 『주역』이란 책은 의심나는 것을 물어 답을 얻을 수 있다는 면에서 점서이며, 공자께서 십익(十翼)을 달아 특히 상전(象傳)을 통해 하늘에 부합되는 삶을 살도록 말씀하신 것을 볼 때 도덕실천서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의의와 가치가 결코 물질에 있지 않고 도덕정신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중용』에서 "하늘이 명한 것을 일러 본성이라 한다.[天命之謂性]” "본성은 곧 이치입니다.[性卽理]” 본성이 리이니 리를 안다는 것은 내 안에 천(天)이 있음을 아는 것이지요. 리[이치]는 ‘나를 나 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실재’로서 내 안에 내재해 있습니다. 그러한 이치를 담은 책이 『주역』이니 성리학의 뿌리는 『주역』이지요. 조선중기 성리학을 꽃 피운 퇴계를 알면 『주역』을 알고 『주역』 을 알면 퇴계철학을 알게 됩니다. 『주역』이 우주 자연의 이치를 담은 철학서이고 퇴계 또한 자연주의 철학자이기 때문입니다. 『주역』은 원경(原經)에 해당하는 문왕의 괘사(卦辭), 주공의 효사(爻辭), 공자님의 십익(十翼)을 중심으로 옛 성인이신 이 세 분의 말씀이 통관(通貫)되는 점을 이해하면 도덕실천서에 부합되게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 때문에 먼저 원경을 익숙하게 읽어서 잣대가 생기면 그 잣대를 가지고 다른 정이천의 『역전』이나 주자의 『주역본의』를 보시면 됩니다. 물론 원경을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을 조심스레 정이천, 주자를 참고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근본적으로 성인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렇게 도덕적으로 올바른 정신세계를 구축한 가운데 이용(利用)⦁후생(厚生)을 다음으로 하여 오늘의 균형을 이룩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밝아질 것입니다. 도덕성보다 물질을 더 추구하는 사고의 소유자는 『주역』은 결코 뜬구름 잡는 얘기로 전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선한 본성을 실천하기 위해 자연의 이치가 담긴 『주역』을 의리역으로 공부하고 실천해 나간다면, 궁극에 가서는 밝아져서 문제해결 능력뿐만 아니라 초월의 의미와도 맞닿게 될 것이며,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 또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등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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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지철 인터뷰, "주암 선생의 문화탐방"(파주 문화원 주암선생) 지철 인터뷰, "주암 선생의 문화탐방" 안녕하십나까? 한국풍수신문의 지철 윤명선 입니다. 주암 선생님, 바쁘신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국풍수신문] 주암 선생의 문화탐방의 시작은 어린시절 시골에서는 농사철이 끝나면 조상님들께 시향(時享)을 모시는데 조상님들을 길지(吉地)에 모시고자 묘지는 각지역에 흩어져 있어 어른들께 명당 혈 그집안 자손들 출세와 성공하는 이야기를 듣고 길지(吉地)가 중요함을 알고 풍수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은 주암 선생과의 일문일답... ◎ 주암 선생님 파주 문화원 풍수 강의는 언제 시작하셨나요? 파주 문화원은 2013년 처음 시작 해서 11년째 강의 하고 있습니다. ◎ 파주 문화원 소개 해주시죠? 파주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하여 서해로 흐르고 자유로.통일로,.등 통일의 길목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청백리의 표상인 방촌 황희 선생과 명장인 윤관장군. 율곡 이이.우계 성혼.구봉 송익필.의 삼현(三賢).명의 허준 삼릉.정릉.소령원.수길원.자운서원.용주서원.ᆢ등 유서 깊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고장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파주 문화원에서는 계승 발전시키고자 43개 학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픙수반은 남녀노소 다 같이 선현들의 생가.묘소.업적 등의 발자취를 밟아보고 느끼고 있습니다. ◎ 풍수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 시골에서는 농사철이 끝나면 조상님들에게 시향(時享)을 모시는데 조상님들을 길지에 모시고자 묘소가 각지에 흩어져 있죠. 산골이라 도보로 가는데 그때마다 집안 어른들은 가면서 오면서 여기는 무슨 명당.저기는 무슨 혈이라 그 할아버지 자손들은 유달리 출세하고 성공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조상님을 좋은 길지(吉地)에 모시면 집안이 화목하고 흥한다는 걸 알았기에 풍수인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좌측, 한국풍수신문 대표 지철 윤명선 우측, 주암선생) ◎ 간산 다니시며 마음에 드는 장소는 어디일까요? 한국은 삼천리 금수강산 이라 곳곳이 다 좋은 명당이지만 그래도 몇개만 꼽으라면 음택으로는 청주한씨 한란 묘. 청풍김씨 김대유 묘.여흥민씨 묘.덕수이씨 이양 묘. 양택으로는 안동 하회마을. 강릉 선교장.을 들 수 있습니다. ◎ 후학도들에게 한 말씀 주신다면? 자연지리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오감(五感)으로 느끼려 할 때 제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답은 자연에 있으니 산자산(山自山) 서자서(書自書)가 아닌 자연지리를 보다 많이 접하기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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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의 풍수이야기13회... 세종대왕의 영릉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과 해석한국풍수신문,박정해교수의 풍수이야기13회... 세종대왕의 영릉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과 해석 [한국풍수신문] 여주에 자리한 세종대왕의 영릉은 조선왕조의 왕릉중에서 가장 명당이라고 인정받고 있는데, 원래는 헌·인릉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세조실록』등에 따르면 길지가 아니라는 여러 논란이 있었고, 세조 13년 세조는 신숙주와 구치관으로 하여금 영릉의 개장을 검토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때 안효례와 최호원으로 하여금 영릉의 길흉을 살피고 보고할 것을 지시하지만, 이들이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자 파직하고 의금부에 하옥하는 일이 생긴다. 예종 때에 이르러 세종의 영릉은 여주로 천장하게 되는데, 여느 명당과 마찬가지로 세종대왕의 능도 여러 의견들이 회자되고 있다. 가장 쟁점이 되는 내용이 천장하기 위해 팠을 때 시신이 썩지 않고 있었다는 것과, 이인손의 무덤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시되고 있다. 관련 기록이 많지 않아 여러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있으나, 구체적인 근거는 미약하고 흥미위주의 설화들이 떠돌고 있는 정도이다. 따라서 조선을 대표하는 정사기록인『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살펴본다. 영릉과 관련하여『조선왕조실록』에는 아주 명확하지만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어 여러 추측이 가능하다. 간략하게 기록한 배경에는 당시 왕의 시신과 관련한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하는 것은 불경하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나쁜 모습이었다면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세종의 영릉을 팠을 때 상황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해『예종실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릉(英陵)을 파서 여니, 현궁(玄宮)은 물기가 없고, 재궁(梓宮)과 복어(服御)가 새 것과 같았다. 『예종실록』에는 현궁에 물기가 없었다는 점은 분명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어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재궁과 복어가 새것과 같았다’는 부분이다. 복어란 입고 있던 수의를 말하는 것인데, 전혀 썩지 않고 새것처럼 있었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옷만 새것처럼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면, 시신도 전혀 부패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말한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시신의 부패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의의 오염이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1450년에 승하한 세종은 1469년 천장할 때까지 만19년 동안 전혀 부패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종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있었다는 말은『예종실록』을 통해 어느 정도 입증되고 있다. 반면에 다른 의견도 제시될 수 있는데, 복어가 새것 같았다는 것은 물의 침투가 없었고, 시신이 생각보다 훨씬 깨끗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가능성이 적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다음으로 영릉이 있던 곳에 이인손의 무덤이 있었다는 주장은 얼마나 신빙성을 갖고 있을까? 이 부분도 천장할 당시의 기록인『예종실록』을 통해 살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예종실록』에 따르면, 이인손의 묘는 이계전의 무덤 옆에 있었다고 하는데, 영릉의 터로 이계전의 묘 자리를 선택하였다는 점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천릉할 땅을 여흥 성산의 이계전의 분묘로 정하고 술자리를 베풀다. 그 외에도『예종실록』에는 영릉을 천장하면서 이계전의 묘를 미리 파서 물이 나오는지 여부를 살폈다는 기록도 아울러 제시하고 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과정으로 혈처를 미리 살펴보고 혈토의 출토여부와 길흉여부를 살펴보는 의미있는 과정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영릉이 있던 자리에 이인손의 묘가 있었다는 말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영릉을 천장한 곳에 이인손의 무덤이 있었고, 이곳에서 나온 秘記에 따라 연을 날려 새로운 묘 터를 잡았다는 설화는 어디에 등장한 것일까? 현재까지 확인 가능한 내용은 지창룡 선생이 쓴『한국지리총람』에서 이와 같은 내용으로 정리한 것이『조선왕조실록』과는 다른 내용이 회자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적 사실은 사실대로 정리하면서 다른 재밌는 설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설화는 풍수의 스토리텔링을 풍성하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히면서, 설화가 갖는 장점도 적극 활용할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지나친 왜곡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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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신우(l 又)백낙서...천신기 전수도장 【군기도 지암원】(군기도 지암원 이사장 신우(l又)백낙서) 기고문,신우(l 又)백낙서...천신기 전수도장 【군기도 지암원】 천신기 전수도장 【군기도 지암원】 "상기 제품은 본 측정연구팀에서 시행한 수맥 인체장해 방지시험 결과 인체에 유해한 수맥 에너지를 중화 방지하는 능력이 우수하여 품질양호 검증을 보증합니다” "상기 제품은 본 측정연구팀에서 시행한 경락순환구동력 측정시험결과 회전전자파의 경락순환구동력 지수 및 경락순환회복량 지수가 우수하여 품질양호 검증을 보증합니다” 이상은 「아주대학교 기계공학부, 대학원 의용공학과 및 (재)산학협력단 회전 전자파 (氣)측정연구팀장」이 2004년 12월 31일 천신기를 주입하여 제작한 <지암집기판>의 효능에 대한 과학적 실험 결과 발행한 6개의 「품질검증 보증서」 중 일부다. 지암집기판은 이미 1년 전 현실에서 그 효능을 인정받은 ‘실적’이 있는데, 2003년 조류독감이 창궐하여 많은 양계장에서는 수천수만 마리의 닭을 살처분하는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집기판을 설치한 경기도 연천군의 [마니커] 양계장만은 조류독감을 예방하고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체에 해로운 수맥파와 지전류를 차단하고 기(氣)를 모아 양택 음택을 명당화하고 불치병 난치병을 치유하는 4차원의 초능력 천신기. 천신기는 애초 어떻게 취득되었으며 어떻게 전수되고 있는가? 최초의 천신기 초능력자 지암(知岩) 이원홍(李源洪) 전수받고 다시 전수할 수 있는 천신기의 최초 초능력자는 고(故) 지암(知岩) 이원홍(李源洪,1927~2011) 선생이다. 국전 사진작가이기도 한 지암선생은 은퇴목사 시절인 1998년 12월 22일 인천광역시 남구 용현동에서 태양을 등진 교회 사진을 찍는 순간 십자가로부터 강력한 섬광과 함께 후일 그가 "천신기(天神氣)”라고 명명한 초능력을 내려받았다. 지암선생께서는 1977년 장로 시절 이미 신유의 은사를 받고 대학병원 중환자실의 환자 다수를 퇴원시키는 등 만병을 치유하고 만인에게 삶의 희망을 주신 바 있다. 그는 뒤늦게 신학대학을 들어가 목사가 되셨고, 70세가 되던 1997년 은퇴하셨었다. 천신기를 내려받은 지암선생은, 치유 능력에 더하여 점차 천·지·인의 숨겨진 비밀과 질서를 깨닫고 현현하는 진리를 보며 초월적 경지에 도달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동서고금의 종교 경전, 철학 고전은 물론 난해한 상대성 원리, 양자물리학 등 최신 과학지식을 초인적으로 섭렵하여 천신기의 작동원리를 과학적으로도 규명할 수 있었다. 천신기는 빛보다 빠른 토션(Torsion)파이며, 정보를 가진 에너지 파동으로 양자적 정보·에너지장에서 사물에 에너지 파장을 전달하여 사물의 진위를 판별하거나 환부의 파장을 변조하여 불치병 난치병을 치유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내려받은 초능력이 타인에게 전수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지암선생은 "인류의 건강과 세계의 평화”라는 목표하에 2003년 5월 20일 『군기도 지암원(君氣道 知岩院) 기 아카데미』라는 도량을 세우고 이 4차원의 초능력을 후학들에게 전수하게 된 것이다. 군기도의 임금 군(君)자는 천신기가 기의 왕중왕이라는 것을 말함이다. 지암원의 도훈은 도법자연(道法自然) 지암원에서는 도법자연이라는 도훈(道訓) 하에, 각삼계, 관삼세, 능삼통의 3대 강령에 따라 천신기 전수교육과 수련이 진행된다. 도법자연이란 노자(老子) 『도덕경』의 "사람은 땅을 본받으며(人法地), 땅은 하늘을 본받고(地法天), 하늘은 도를 본받으며(天法道), 도는 스스로 그러함(道法自然)을 본받는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천·지·인 3계(界)의 이치를 깨닫고(覺三界), 과거 현재 미래를 관하며(觀三世), 기통 의통 영통의 능삼통(能三通)을 그 기본 지침으로 삼아 수련이 진행된다. 「지암의 기적」 전수 천신기 전수 교육은 주 1회 3시간, 총 20주 5개월의 기간에 걸쳐 이론 강의와 함께 초능력의 단계적 전수로 이루어져 있다. 초능력의 전수는 "지암의 기적”여러 가지를 전수하는 것인데 중요한 3단계는 다음과 같다. 1. 필서화의 기적: 천신기를 받은 전수자의 손을 잡고 글씨를 쓰면 그 순간 손에 기가 들어가 붓, 연필, 볼펜, 그림물감 등으로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기가 나온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린 시절의 필서화에서도 소급해서 기가 나오고 죽는 날까지 그 초능력이 발현 유지되고 타인에게도 전수가 된다. 2. 천신기의 기적: 지암원에서 기본학습과 명상 시에 전수자가 주입하는 기를 2개월 정도 받은 사람에게는 천신기를 전수한다. 전수받은 사람은 일반적 초능력을 구사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병을 진단 치유하고 인생문제를 판단 해결하고 전기전자제품 핸드폰 물 음식물 의약품의 적부와 양성전환 능력을 갖게 되며 타인에게도 전수할 수 있다. 천신기는 한사람에게나 여러 사람에게도 동시에 4차원적 전수가 가능하다. 3. 개천문(開天門)의 기적: 지암원에서 5개월간 기의 이론, 기의 원리, 기 운용이 만능상태가 되면 개천문 의식을 거행한다. 수련생들은 전수자로부터 받는 모든 전수 훈련 명상이 끝나고 지암원과 헤어지게 되므로 계속 기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이후로는 독자적 초능력의 왕중왕이 되도록 하늘문을 열어주는 것으로 지암원 최종 최고의 의식이다. 선서의식을 마치고 무념무상 공공공심으로 좌정하게 한 후 합장을 하고 있는 교육생에게 주재자가 하늘의 기를 백회에 끌어넣으면 양쪽 손의 노궁으로 방사되는 천신기의 힘에 의하여 합장하고 있던 손이 벌어지게 된다. 개중에는 안 벌어지도록 힘을 주었다가 폭발하며 만세를 부르며 엉엉 우는 사람도 있고 기가 강하게 통하여 양팔을 두세 번 돌리는가 하면 강한 천기를 견디지 못해 쓰러지는 사람도 있다. 각양각색의 양태로 개천문 의식을 통과하면 초능력의 왕중왕인 선사(仙師) 자격을 부여받고 인류의 건강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공헌하는 봉사자가 된다. 지암원의 이론교육과 수련 이론 교육은 정(精)·기(氣)·신(神)과 관련된 것들이며, 이에는 양·한의학의 기본 상식과 더불어 양자물리학도 포함된다. 지암원에서 난해한 현대물리학을 가르치는 것은, 그것에 대한 체계적 학문적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양자역학을 빌어 신비한 천신기가 요술이나 기적이 아니며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다. 물론 양자역학을 모르더라도 천신기 능력자가 되어 이를 구사하는 데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동차 운전을 하기 위해 꼭 기계공학을 전공해야만 하고 컴퓨터로 문서를 송부하거나 데이터를 검색하기 위해 반드시 전자공학박사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양자역학은 또한 천·지·인의 궁극적인 진리를 깨닫는 데도 도움이 된다. ‘양자 중첩’, ‘불확정설 원리’ ‘관찰자 효과’ 같은 개념을 통해 만유(萬有)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라는 홀로그램 우주의 화엄적 특성(‘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을 이해하고, 공(空), 참나(神)의 특성인 진공묘유(眞空妙有), 전지전능(全知全能)을 쉽게 이해하게 한다. 머리로 이해된 대우주의 진리는 천신기를 구사하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점차 가슴으로 증득된다. 천신기를 잘 구사하고 L로드를 정확히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수도수칙(修道守則)의 하나인 공공공심(空空空心)을 준수해야 한다. 마음을 비운 몰아(沒我)의 상태에서만 천신기로 우주의 기운을 끌어다가 진위를 판별하고 유해 전자파를 차단하며 불치병 난치병을 치유할 수 있지, 사리사욕을 챙기거나 선입관이 개입되면 L로드는 자기감응(自己感應)으로 오작동하고 천신기도 소기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마음이 가난한 자만이 ‘천국이 저희 것’이다. 천신기를 구사하며 살아가면서 지암원 선사들은 ‘하늘 무서운 것’을 실감하고 나아가 "비움”이나 "사랑”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깨닫고 몸으로 실천하게 된다. 「인류의 건강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쓰임 받는 지암원 지암원 선사들의 치유와 명당화 활동은 원칙적으로 무료봉사다. 지암원 교수들 모두는 재능기부자이며, 지암원 내외의 모든 불치병 난치병 환우들을 대상으로 주 2회(화,금) 운영하는 상설 치유반도 철저히 무료다. 지암선생께서 생전 후학들을 교육하실 때, 예수께서 퇴마와 치유의 권능을 주시고 열두 제자를 떠나보내며 하신 말씀을 즐겨 인용하셨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 지암원과 지암원의 선사 태사들은 그 설립 목표와 설립자의 가르침에 충실, 우리 사회를 위한 사랑의 도구로서 그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현재 900명에 달하는 지암원 출신 중에는 천신기를 잊은 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많은 선사 태사들은 오늘도 각자의 위치에서 주위의 건강과 안녕을 위하여 소리소문없이 활약하고 있다. 지암원의 운영과 활동을 책임진 필자로서는 큰 자부심을 느끼며 천신기를 주신 하늘과 지암선생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천신기와 지암원에 관한 4회의 글을 마무리할 즈음, 언젠가 아이들이 흥얼거리던 BTS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어쩜 이 밤의 표정이 이토록 또 아름다운 건/ 저 별들도 불빛도 아닌 우리 때문일 거야.” 세상이 조금은 더 건강하고 조금은 더 평화롭고 어쩜 이토록 또 아름다운 건 지암원 때문이 아니겠는가! 군기도 지암원 이사장 신우(l又)백낙서 ◎외부 기고문은 본매체와 편집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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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12회 ... 해남 도솔암을 다녀와서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12회 ... 해남 도솔암을 다녀와서 [한국풍수신문] 풍수를 하다보면 많은 곳을 답사하기 마련인데, 이번에 찾은 곳은 해남 달마산 도솔암이다. 파고드는 차가움을 이기고자 옷깃을 여미며 찾아든 도솔암은 달마산의 기암괴석을 뒤로 하고 험한 산길을 걸어 도착할 수 있었다. 도솔암에 가는 길은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으나 관광객의 발길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도솔암은 의상대사가 선정하고 의조대사가 도를 닦던 곳이라 하는데, 명랑대첩이후 왜구에 의해 불타고 방치되던 곳을 2002년에 다시 재건하였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위에 자리한 달마산 도솔암은 그 동안의 답사를 통해 느꼈던 많은 감동을 새삼 되돌아보게 하였다. 절묘함과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곳으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의 연속이었고, 크기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조화로움이 한껏 빛나고 있었다. 높은 절벽위에 자리하고 있으나 바위가 빙 둘러싸 바람 한 점 들어오기 어려운 조건은 자연만이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우리 선배 풍수가들의 눈높이는 현대 풍수가들이 감히 넘보기 어려운 경지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새삼 깨닫게 된다. 수많은 답사와 노력을 통해서만 알아낼 수 있는 깊은 산속의 암자와 사찰의 입지는 과연 인간의 힘만으로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답사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현대의 풍수가 중 일부는 현장을 찾지 않고 구글지도를 통해서 찾을 수 있다는 한심한 사고에 머물러 있다. 발품을 팔지 않고 강의실에서 공부를 다하고 길지조차도 강의실에서 간단하게 찾을 수 있다는 발상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한심하기 그지없다. 필자는 나름 답사를 많이 하려고 하지만, 선배 풍수가들이 노력을 통해 얻어 놓은 곳을 다시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생지를 찾기 위해 추운겨울에 산을 헤매지 않고 쉽게 찾아가는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혹자들은 선배 풍수가들이 찾아 놓은 결록서를 바탕으로 생지를 찾고자 하였고, 자신만이 결록서에서 제시한 곳을 찾았다는 아집만으로 풍수의 전부인양 오도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본다. 인간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자신만의 뛰어남을 자랑하고 있으나, 자연의 힘 앞에는 한낱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만다. 자연이 가져다주는 무한대의 혜택을 사람이 극복하기 어려운 것처럼 자연이 이룬 다양한 현상들을 인간의 언어와 논리로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감히 넘보기도 하고 도전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한순간의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연현상이 만든 절묘함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과 논리를 만들어 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풍수가 아닌가 한다. 풍수는 길흉화복론만으로 만들어진 허접한 학문이 아니다. 자연을 인간의 생활속에 끌어들여 합리적인 활용성을 담보하고자 한 형이상학의 학문영역인 것이다. 풍수연구를 나름 했다고 하는 필자도 아직 부족함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영역이 존재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풍수를 실전적인 면과 이론적 배경 그리고 역사를 논하고자 논문을 쓰고 있으나, 풍수의 영역은 넓고도 깊다는 생각이다. 그 깊이와 뜻을 다 알기 어려우며 현명한 깨달음을 얻기 어렵다. 부족한 필자는 어느 것 하나 완성된 논리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학문적 영역 속에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풍수의 현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건축을 통한 현대화 작업은 누군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고 새로운 각도에서 풍수이론은 제시되어야 하며 연구되어야 한다. 필자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으나 현대화된 이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차츰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현장을 찾아 선배 풍수가들의 발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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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26회...출토금(出土金): 토산의 머리 위에 나온 금성[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26회 6. 출토금(出土金): 토산의 머리 위에 나온 금성 ➀ 출토금(出土金)은 먼저 토성산을 이루고 그 평평한 정상에 다시 작은 작은 둥근산이 나와 있다. 혹은 횡으로 나온 토 역시 좋다. 토가 금을 이기니 부다귀소(富多貴小)로 우마(牛馬)가 숲을 이룬다. 이것이 시루봉이다. ➁ 다섯 개의 금(金)이 토(土)에서 나오니 문(文)중에 무(武)가 있다. 집에 재물이 가득하고 명성이 천하에 떨친다. 금이 강하면 그러므로 부(富)와 귀(貴)가 무겁다. ⓷ 평평한 토성위에 금(金)이 5개 이뤘다. 부귀겸전(富貴兼全)으로 문무(文武)의 자질을 겸하고 있다. 토(土)중에 금(金)이 생(生)하면 토(土)가 후(厚)하여 즉 부(富)가 많다. 그리고 금(金)이 왕(旺)하면 즉 귀(貴)가 많다. 그러나 금성이 횡으로 늘어서서(橫排) 어지럽게 나오지 않고 직(直)으로 나와야 부(富)하고 귀(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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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25회...출화금(出火金): 화성에서 나와 기물을 만드는 금성한국풍수신문,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25회 4. 출화금(出火金): 화성에서 나와 기물을 만드는 금성 ➀ 화(火)에서 금(金)이 나오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 금(金)으로 전(傳金)하였다. 기물을 만들 수 있는 아름다운 땅(地)이다. 그러므로 화에서 나온 진금(眞金)은 기물을 이루니 가히 공경할만 하다. ➁ 금(金)에서 화(火)가 나오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 금(金)으로 전(傳金)하였다.이것은 기물을 만드니 요(曜)가 된다. 금(金)중에서 제일 묘(妙)하다. 수려함이 나오고 조정에 올라 의정(廊廟)을 도모한다. 5. 출산광(出山鑛): 산에서 나온 광석의 금성체 ➀ 석산으로 나무나 풀이 자라지 못하는 민둥산이다. 이러한 출산광(出山鑛)은 흉(凶)이 있다. 이러한 산은 화(火)의 변환을 얻어 물러나 청수(淸秀)한 산이 되어야 아름답다. 만약 화를 만나지 못하면 반드시 초목이 살지 못하는 산이 된다. 또한 산에서 광석이 나와 어지럽게 많이 있다. 아직 재련(煆 煉)되지 않은 금이다. 제일 불길하다. 산에 있는 광석이 아직 변하지 않았으니 매우 천하다. ➁ 낮은 산에서 광석(鑛石)이 나와 빛이 나고 둥글어 마치 알 껍질 같다. 광석(鑛石)이 참되고 완전하면 빛이 나고 둥글어 매우 좋다. 무직(武織)과 봉후(封侯)이고 외국(外國)에서 공물을 바친다. 앞에 있는 출산광(出山鑛)은 난잡하고 강한 돌인 난완석(亂頑石)이다. 그러므로 천(賤)하다. 그러나 이것은 섞여 빛이 나는 둥근 돌로 진광(眞鑛) 이다. 그러므로 귀(貴)하다. 비록 아직 제련은 되지 않았지만 자질은 이미 귀(貴)하다 할 수 있다.그러나 역시 무신(武臣)에서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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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의 풍수이야기11회... 고대 하늘(天) 인식과 風水(SK사옥의 하늘천자-거북이 머리를 상장한다.) 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의 풍수이야기11회... 고대 하늘(天) 인식과 風水 [한국풍수신문] 상고시대 사람들에게 ‘하늘’은 해와 달, 별들이 떠있는 곳으로, 비를 내리고 천둥번개를 일으키는 자연물로 인식하였다. 요순(堯舜)시대에는 농경시대에 접어들게 되면서, 홍수(洪水)와 같은 재난(災難)에 봉착하게 되었고 자연현상에 대하여 예민한 관찰을 하게 되었다. 명산과 대천, 풍우, 뇌전 등 자연현상과 자연물 등을 神으로 보고 수호신(守護神)으로써 ‘하늘’을 믿게 되었다. 그 실증으로써 요(堯)가 帝位에 있을 때에 중여의 후손인 희씨와 화씨에게 천지사시(天地四時)를 관장하는 세습관직을 제수하고, 하늘을 경외(敬畏)하고 하늘의 움직임을 잘 조사하여, 역상(曆象)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파종과 제초, 추수 등의 시기를 가르치도록 하였다. 요(堯)의 후계자인 순(舜) 역시 자연현상의 관찰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공경의 대상으로 하늘을 생각하여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자연숭배사상은 더 나아가 천지자연과 사물에 어떤 정령이나 영력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를 경배하던 소박한 사고방식은 인지의 발달과 경험의 축적에 따라 낱낱의 자연현상을 통합하였다. 이를 체계적으로 관찰함으로써 우주 전체를 통할하는 절대최고의 영적 존재자가 있음을 상정하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자연계의 제신(諸神) 내지 우주 전체 섭리를 지배하는 신비스런 영적 존재자가 상제 또는 ‘하늘’이고, 그것을 숭배하는 신앙이 곧 경천사상이다. 천명사상은 바로 경천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하늘은 초월적 존재를 의미하는 관념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SK사옥의 하늘천자-거북이 머리를 상장한다. 하늘을 의미하는 ‘天’이라는 글자는 원래 인간의 머리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갑골문에는 ‘天’이라는 글자가 아래 그림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갑골문에서의 천자(天字) 그림에서 보듯이 ‘天’이라는 글자는 본래 사람의 머리 부분을 상형한 것이다. 허신은 『설문해자』에서 "天은 이마이고, 위가 없는 높음에 이름이고, 하나의 큼을 따름” 이라고 하였다. 안병주는 "天字의 원뜻은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마 내지 두부(頭部)라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일본의 다케우치 요시오(武內義雄)는, "天字는 大字 위에 선을 그은 문자로서, 大는 사람이 두 손을 벌리고 두 다리로 이 세계를 덮는 천공(天空)을 표시하는 것이므로, ‘天’은 우리들 위에 있는 상공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은대(殷代)에는 자연신으로 ‘하늘’ 못지않게 조상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크게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믿음은 미래의 일을 묻는 점복(占卜)을 통해서 구체화되었고, 각종 제례(祭禮)에 신명(神命)과 더불어 조상을 배향(配享)하게 되었다. 조상의 산소를 잘 모시고 제사를 지내면 복을 받는다는 의식은 이때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같은 기를 가진 후손의 발복은 조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동기감응론은 기본논리를 형성하게 된다. 주대(周代)에 이르러 ‘하늘’의 종교적 관념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문왕에 이르러 종묘제도가 성립되고 통치 질서가 확립됨으로서 천명을 계승한 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었고, 하늘과 조상을 제사하는 관습은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종교적 의미에서의 ‘하늘’의 관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음양의 학설로써 우주간의 현상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즉 양으로서의 하늘이 존재한다면, 음으로서 땅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상과 같이 ‘하늘’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자연현상으로 존재하던 ‘하늘’은 점차 신격화되기에 이른다. 더 나아가 은대(殷代)에는 종교적 색채까지 띠기 시작한다. 주대(周代)에는 점차 합리적이고 인간중심적 사고가 발달하게 되면서, 자연현상으로서의 ‘하늘’의 관념을 보이게 되었다. 특히 경(敬)과 덕(德)이 있어 德의 실천성이 강조되는 현상을 보이게 되면서 공자(孔子)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우주만물의 운행원리로서 道의 관념을 강조하면서 ‘하늘’을 자연물로 인식하는 노자(老子)의 사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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