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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0회... 의병장 류인석(柳麟錫)주암선생 문화탐방 30회... 의병장 류인석(柳麟錫) [한국풍수신문] 류인석[柳麟錫. 1842년(헌종 8)~1915년]은 대한제국기 정미7조약 체결 후 연해주에서 13도창의군의 도총재로 활약한 의병장. 위정척사론자로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菴). 강원도 춘천 출신.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으로 14세 때 족숙인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 1865년 만동묘철폐(萬東廟撤廢)와 1868년 병인양요로 대내외적 위기의식이 고조되어 갈 무렵에 이미 사상의 기본적인 틀을 형성하였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때 홍재구(洪在龜)등 강원도·경기도 유생 46인과 함께 척양소(斥洋疏)를 올려개항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1895년 12월 24일(음력) 의병항전을 개시하였다. 유인석 의병진은 한때 3,000명을 넘었으며, 제천·충주·단양· 원주 등지를 중심으로 한 중부지역 일대를 석권하면서 친일적인 관찰사나 군수 등 ‘토왜(土倭)’들을 처단하여 기세를 크게 떨쳤다. 1910년 6월 연해주 의병세력의 통합체인 13도의군(十三道義軍)의 결성을 보게 되었으며, 이상설·이범윤·이남기(李南基)등에 의하여 도총재(都總裁)로 추대되었다. 유인석은 이때 「통고13도대소동포(通告十三道大小同胞)」라는 포고문을 반포, 전국민이 일치단결하여 최후의 항일구국전을 벌일 것을 주장하였다. 풍수적 고찰 주산이 반듯하지 못하고 한쪽이 잘려나가 반쪽이다. 백호는 그런대로 주인응 향해 읍하는데 청룡은 허하여 불어오는 곡풍을 막아내지를 못하고 있다. 주산에서 급하게 내려온 용맥은 취기처를 찾지 못하고 조당으로 퍼져 나가 사그러진다.안산은 높지만 나름대로 주인을 향해 읍하지만 성에 차지를 않지만 백호가 입구를 봉쇄하니 외부의 침입이 용이하지 않아 의병 훈련장으로는 최적지다. 좌향(坐向)은 술좌진향(戌坐辰向).경진분금(庚辰分金). 左水가 右로 흘러 손사방(巽巳方)으로 나가니 양공의 88향법상의 수국(水國)의 정묘향(正墓向)이다. 정묘향(正墓向)는 발부발귀(發富發貴)하고 인정대왕(人丁大旺)하며 복수쌍전(福壽雙全)까지도 한다. 또한 묘고 장지(墓庫藏地)라 주로 귀(貴)보다는 부(富)로 큰 부자가 된다는 향이니 자식으로 봐서는 주로 막내쪽.이고 재물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선호하는 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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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29회...김우명(金佑明) 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29회...김우명(金佑明) 묘 김우명[金佑明.1619년(광해군 11)~1675년(숙종 1)]은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정(以定). 군자감판관 김비(金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김흥우(金興宇)이고, 아버지는 김육(金堉)이며, 딸은 현종의 비이다. 1642년(인조 20) 진사시에 합격하여, 강릉참봉·세마(洗馬) 등을 역임하였다.1659년 현종이 즉위하자 국구(國舅)로서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에 봉하여졌다. 1616년 영돈녕부사가 되고 이어 오위도총관과 호위대장을 겸직하였다. 송시열(宋時烈)과 같은 서인이었으나 민신(閔愼)의 대부복상문제(代父服喪問題: 실성한 아버지 대신 손자가 상주가 된 것에 대한 대립문제)를 계기로 남인인 허적(許積)에 동조. 또한, 숙종 초에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복평군(福平君) 이남(李枏) 형제가 궁중에 드나들면서 궁녀들을 괴롭힌 사실을 들어 이들의 처벌을 상소하였다. 그 뒤 남인 윤휴(尹鑴)·허목(許穆) 등과 알력이 심하여짐으로써 벼슬을 그만두고 두문불출하였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풍수적 고찰 계관산(664.7m)에서 출맥한 용은 남서로 기복굴곡을 하여 수십리를 달려와 병오룡(丙午龍)으로 입수(入首)를 하였다. 좌우 용호는 주인을 편하게끔 순하게 호위를 하고 안산은 북한강 건너편에 있어 좀 멀다는 느낌이 든다. 급하게 내려오다 좌정(坐定)한 당판은 귀신이 잡아 줬다고 하는 전설(傳說)이 있는데 구첨이 뚜렷하지가 않아 아쉽다. 좌향(坐向)은 임좌병향(壬坐丙向ㅡ천반봉침)이다. 파구(破口)는 내파(內破)로 보면 左右水 합수(合水)하여 당문출수(當門出水)다. 외파(外破) 정미파(丁未破)로 이는 당(唐)의 국사인 양균송((楊筠松.-834~900)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차고소수자왕향(借庫消水自旺向)이다. 차고소수자왕향(借庫消水自旺向)은 임관룡(壬官龍).우선룡(右旋龍)에 좌수도우(左水到右). 병오향(丙午向)에 정미파(丁未破)로詩의 유유쇠방가거래[惟有衰方可去來(쇠방으로 물이 나가도 되고 들어와도 좋다)]에 합당하여 발부발귀(發富發貴)하고. 인정대왕(人丁大旺)을 하며 장수(長壽)하는 좋은 향법이다. 간방수가 들어오면 삼길육수의 水가 되어 비상한인재와 문장이 나고 급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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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마포구, '레드로드에서 한강까지’ 놀면서 배우는 역사문화 탐방(마포구 = 제공) 마포구, '레드로드에서 한강까지’ 놀면서 배우는 역사문화 탐방 [한국풍수신문] 마포구는 20일 지역아동센터 어린이 30명을 대상으로 홍대 레드로드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역사문화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구에서 운영 중인 ‘한강 역사문화 뱃길탐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문화체험 빈도가 낮은 지역 아동들에게 즐겁고 유익한 체험학습을 제공하면서 마포구 랜드마크인 홍대 레드로드와 잠두봉 유적지, 한강에 이르는 지역자원의 역사적 가치를 교육하기 위해 마련됐다. ‘레드로드에서 한강까지 역사문화 공부방’ 이라는 테마로 오후 3시 어린이들의 홍대 레드로드 탐방이 시작됐고 이후 절두산 순교성지를 방문해 스토리텔링 해설과 함께 역사문화를 배웠다. 특히 레드로드 탐방에서는 박강수 마포구청장이 ‘레드로드 박사님’으로 일일 가이드를 맡아 홍대 레드로드 지역의 역사와 레드로드가 생겨난 이유, 명칭, 레드로드 캐릭터 ‘깨비, 깨순’이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소개했다. 참가 어린이 한 명은 "홍대는 몇 번 와본 곳인데 옛날 모습에 대해서도 알게 되니 더 재밌고, 새로 꾸며진 알록달록한 모습도 예뻐서 참 좋다” 고 소감을 밝혔다. 이후 어린이들은 잠두봉 선착장으로 이동해 한강르네상스호 행정선에 탑승, ‘어린이 한강 역사문화 뱃길탐방’과 ‘함께 그려보는 꿈의 정원’ 체험활동을 진행했다. 어린이들은 양화나루, 밤섬, 잠두봉 등의 풍경을 감상하며 한강 일대의 역사문화에 관한 해설을 듣고 이를 토대로 그림을 그려보며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시간을 가졌다. 탐방은 총 2시간 30분 코스로 아이들이 배에 탑승해 진행되는 만큼 인솔교사 십 여 명이 동행하여 질서를 유지하고 승선 사전 안전교육과 점검을 실시하는 등 안전을 최우선으로 했다. 이날 어린이들이 그린 작품을 홍대 레드로드 어울마당로의 대형화분을 꾸미는 데 활용할 예정이며 구는 오는 9월부터는 일반 구민을 대상으로 하는 ‘한강 역사문화 뱃길탐방’이 다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강수 구청장은 " ‘레드로드 박사’가 되어 어린이들과 마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즐겁고 의미 있었다” 며 "아이들에게 지역의 역사와 귀중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일깨우고 교육하는 일은 미래를 준비하는 또 다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 체험 프로그램과 홍보를 통해 구민들의 자긍심과 마포의 브랜드가치를 높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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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28회...한백록(韓百祿) 장군 묘주암선생 문화탐방 28회...한백록(韓百祿) 장군 묘 [한국풍수신문] 한백록(韓百祿, 1555년∼1592년)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수지(綬之)이다. 한경인(韓敬仁)의 손자이며, 한굉(韓硡)의 아들이다 진잠현감, 지세포만호, 부산진첨사를 역임했으며, 임진왜란 때 경상우수사 원균과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휘하에서 옥포, 합포 해전에 참전했으며, 미조항 싸움에서 전사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풍수적 고찰 북배산(869.6m)에서 出龍하여 기복굴곡을 하여 甲卯.ㅡ乙辰ㅡ巽巳龍으로 와 임좌로 좌정하였다. 좌향(坐向)은 임좌병향(壬坐丙向).신사분금(辛巳分金). 파구(破口)는 1파는 병오파(丙午破)로 당문출수(當門出水).다. 2차는 사파(巳破).로 임관(臨官)을 충파하는 살인대황천.이다. 국세는 안정적이나 교쇄는 주밀(周密)하지 못한것이 아쉽다. 당판은 보통으로 옹골찬 모습으로 보이나 취기는 당판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당문출수(當門出水).가 합법(合法)이 되려면 ㄱ. 용진혈적(龍眞穴的)해야 한다. ㄴ. 천간자 파구여야 한다 ㅡ右水가 左로 흘러 향상의 丙字로 나가며 午字를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ㄷ.백보전란(百步轉欄)해야 한다. 당문출수(當門出水).가 합법이면 대부대귀(大富大貴)하고 인정(人丁).이 흥왕(興旺)한다. 다만 장후(葬後)에 수(壽)를 다하지 못한 자가 생길 수도 있고 어린 과부가 가끔씩 나니 용진혈적(龍眞穴的)하지 않을시에는 사용하면 안된다. 백보전란으로 간주하기에는 조금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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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27회... 조선 8대 명당의 하나 신숭겸(申崇謙)장군 묘주암선생 문화탐방 27회 조선 8대 명당의 하나 신숭겸(申崇謙)장군 묘 [한국풍수신문] 신숭겸[申崇謙 .882년(헌강왕 6) ~ 927년(태조 10)]. 본관 평산.곡성군 출신. 초명 능산(能山). 사당 지묘사(智妙寺) 가족ㅡ형제 신능길(申能吉). 아들 신보장(申甫藏) 고려 초기의 장군이자 개국공신. 평산 신씨의 시조. 공신호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시호 개국장절공(開國莊節公) 초명은 능산이며 체격이 장대하고 용맹했으며 홍유, 배현경, 복지겸 등과 함께 기병대장으로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왕으로 추대해 고려를 개국하였다.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과 공산 동수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때 군사를 이끌고 참여했다가 형세가 위급해지자 원보 김락과 더불어 싸우다가 전사했다. 신숭겸은 곡성현 출신으로 왕건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며 고려를 건국한 개국 1등공신이다. 이후 왕건에게서 신(申)씨를 사성받고 숭겸(崇謙)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신숭겸의 활솜씨가 뛰어났는지 함께 황해도 평산으로 사냥을 나간 왕건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가리키며 "저 기러기 떼 중 앞에서 세 번째로 가는 기러기를 맞춰 보라."라고 명하자 화살을 쏴서 기러기를 떨어뜨렸다는 일화가 남아 있는데 이 이야기가 평산 신씨의 본관이 평산이 되는 유래이다. 왕건이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전했던 공산 전투에서 후백제의 견훤에게 참패하고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왕건의 투구와 갑옷을 빌려 입고 미끼가 되어 후백제군을 유인해, 왕건은 일반 군졸의 옷을 입고 탈출하는데 성공하여 신숭겸의 희생 덕분에 왕건은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 훗날 참수된 신숭겸의 시신은 왼쪽 발 밑에 북두칠성 모양의 사마귀가 있다는 것을 근거로 겨우 찾았지만 머리는 끝내 찾지 못해서 왕건은 황금으로 머리를 만들고, 미리 정해둔 자신의 신후지지(身後之地)에 매장해주었다. 신숭겸의 무덤은 봉분이 3개인데 머리를 대신한 황금 두상을 지키고자 이렇게 했다고 전한다. 신숭겸의 묘는 총 열 개인데, 도굴을 두려워하여 구월산과 신숭겸이 전사한 팔공산에 각 세 개의 가묘를 지었고, 두 개의 도굴방지용 가묘를 포함한 세 묘가 있는 춘천에는 신숭겸의 몸이 묻혀 있고, 전남 곡성군 태안사에는 신숭겸의 머리가 묻혀 있다. 중국 허창에는 목이, 당양에는 몸이 묻혀 있는 관우와 비슷한 셈이다. 여담으로 춘천에 있는 신숭겸 장군묘는 풍수지리학적으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당 중에 하나라고 한다. 태안사에 몇 가지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신숭겸의 애마가 신숭겸의 목을 들고 여기까지 와서 3일을 울다가 굶어 죽었다고 하며, 목과 말을 묻고 장군단이라 하여 매년 3월 16일에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호환이 일어나는 등 사찰에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참고문헌 : 나무위키) PS 조선 8대 명당중의 하나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묘는 북배산(869.6m)에서 발조한 용으로 신술(辛戌) 건해(乾亥) 룡으로 금성체의 주산을 성봉을 한 후 입수처에서 다시 甲과 丙으로 요동을 치며 술룡으로 입수하여 좌정하였다. 조당(朝堂)은 천군만마(千軍萬馬)를 능히 거느릴 수 있고 용.호(龍.虎)는 원근(遠近)에서 주인을 호위하니 편안하기 그지없다. 좌향(坐向)은 술좌진향(戌坐辰向)에 左水가 흘러 巽巳方으로 나가니 양공의 88향법상의 수국(水國)의 정묘향(正墓向)이다. 이는 발부발귀(發富發貴)하고 인정대왕(人丁大旺)하며 복수쌍전(福壽雙全)까지도 한다. 또한 묘고 장지(墓庫藏地)라 주로 귀(貴)보다는 부(富)로 큰 부자가 된다는 향이니 자식으로 봐서는 주로 막내쪽.이고 재물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선호하는 향이다. 또한 발부발귀(發富發貴)하고 인정대왕(人丁大旺)하며 복수쌍전(福壽雙全)까지도 한다. 국세는 대국으로 청룡(靑龍) 안산(案山)으로 청룡작국이다. 급하게 달려온 용은 취기처에 단정히 좌정하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안산과 조산(朝山)이 중중(重重)이라 많은 후손들이 각지에서 두각을 나타내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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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26회...해우소(解優所)와 상생(相生)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26회...해우소(解優所)와 상생(相生) [한국풍수신문] 해우소(解優所)는 뒷간. 측간. 화장실.등을 말하는데 이는 지기(地氣)와 천기(天氣)가 가득한 음식을 섭취하여 영양분을 흡수하고 배설하는 곳으로 마치 소우주의 마지막 여행 처이기에 ‘마음속의 근심을 풀어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남김없이 버리라는 뜻이지요. 영월 장릉 근처 보덕사(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110)의 경내 밖에 강뭔 문화재 제 132호 해우소가 있다. 근자에 보기 드물게 한 계단 두 계단의 돌계단을 올라 가야만 일을 보게끔 되어 있는데 이는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겨 있고 또한 연한(年限)이 무려 141년이 넘어서고 있어 아주 희귀한 건물이 아닐 수 없다. 보덕사 해우소는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은 양인 남자가 들어가 해우(解憂) 하게끔 해놨고. 왼쪽은 음인 여자가 들어가 해우(解憂) 하게끔 해 놨다. 실지 예전엔 배설물을 가장 좋은 거름으로 여겨 1.사고팔기도 하였고. 2.동물이나 뱀…….등 벌레나 해충 등을 피하고자. 3.기타 위생적인 부분. 등을 고려하였기에 평지보다 더 높게 한 것이었죠. 이는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죠. 옛말에 뒷간과 사돈집은 멀수록 좋고 '뒷간과 우물. 뒷간과 부엌은 떨어져 있어야 좋다'고 해서 한옥이나 초가집에서는 뒷간을 본채와 떨어지게 지었으며 지을 때에도 동토(動土=동티)가 없게 길일을 택해서 지었다. 실지 집안에서 가장 음기(陰氣)가 많이 발생하는 곳이 해우소다. 그래서 가능하면 주거공간에서 좀 떨어지는게 좋은데 요즘은 수세식으로 위생을 강화해서 실내에 설치해 편리함을 더 우선시한 세상이 됐죠. 만약 해우소에서 해우(解憂)하다가 넘어지거나 쓰러지면 음기(陰氣)가 강한 곳이라 대부분 사망에 이르렀기에 바닥은 미끄러지지 않게 마찰이 있는 것으로 해야 하고. 조명은 밝게 해야 하며.노인이 거주할 시는 문턱을 높여서는 안 되고 손잡이가 있게끔 하는 게 좋다. 사회가 다변화되다 보니 각계각층의 이해 충돌이 있고 개인간 에도 얽힌 감정이 있어 1.밝은 세상. 2.건전한 사회. 3.건강한 삶이 되는 데 있어 걸림돌이니 혹여 조금이라도 맘속에 담고 있거든 해우(解憂)와 해원(解寃)하시어서 상생(相生)하는 관계가 되기를 고대해봅니다 PS 1.뒷간 ㅡ뒷간은 뒤를 보는 곳을 가리키는 말. 2. 통시 ㅡ뒷간에서 돼지를 키우던 옛 풍속에서 비롯된 말이다. 3.측간(厠間)ㅡ측(厠)‘厂’은 ‘바위 아래의 사람이 기거하는 굴’로 사람의 분뇨를 배설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 4.해우소(解優所) ㅡ사찰에서 말로‘근심을 푸는 곳으로 번뇌 망상을 남김없이 버리라'는 뜻이다. 5.화장실(化粧室)ㅡ대소변을 배설하고 손을 씻거나 화장 따위를 고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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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25회...어음정(御飮井)과 생명수(生命水)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25회...어음정(御飮井)과 생명수(生命水) 단종(1441~1457}은 12살 때인 1452에 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3년만인 1455년 숙부인 수양대군(세종의 2남이자 문종 동생)에게 왕위를 찬탈당해 결국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1457.6.22(陰)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길에 오르죠. 한여름 삼복더위의 불볕더위 속에 50여 명의 군졸들과 원주 치악산.황둔을 거쳐 솔치재를 넘는 심정은 말로 이루 표현하기가 어려웠을 터.... 솔치재를 넘던 중 조그마한 샘터를 발견하고서 목을 축이니 이보다 더 감미롭고 시원한 청량제가 어디 있을까? 실지 단종이 목을 축인 후 감로주(甘露酒) 같다고하였다. 하며 마신 샘이 있는 곳은 물미.라는 지명이 붙여졌고.샘터는 임금이 마셨다. 하여 어음정(御飮井) 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풍수적 고찰.어음정 주변은 국세가 잘 갖춰진 곳이다. 전형적인 와혈형이다. 와혈의 핵심은 우각사(牛角砂)이고 미돌(微突)이다. 와혈형에 미돌이 없다면 십중팔구 수렁에 빠지기 쉽다. 어음정주변은 미돌이 없어 수렁이다. 실지 습지에 능수버들 나무가 산재해 있다. 물은 깨끗하면서 시원할 건데 물맛을 못 보게 해놓아 아쉬움이 남는다. 좌향은 경유좌로 동향이다. 관광지나 역사 유적지로 할려면 두레박이라도 설치 해놓아 물맛도 볼 수 있게끔 하고.또 잠시 사색이나 쉬어 갈 수 있는 벤치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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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24회...동원 이강릉(同原異岡陵)의 선산 김씨 묘역주암선생 문화탐방24회, 동원 이강릉(同原異岡陵)의 선산 김씨 묘역 [한국풍수신문] 동원이강'이란 본 줄기는 같은{同} 언덕{原}인데 마지막 취기처에 이르러 갈라져 다른{異} 두 줄기의 언덕{岡}에 취기가 형성되어 봉분(封墳)을 조성하는 형식을 말하는데 선산김씨 묘역이 딱 그런 경우다. 본줄기맥에는 통훈대부 창평현령 김윤옥(金潤屋)묘를 비롯하여 서천군수 김여석(舒川郡守金汝錫)과 김여석의 배위 원주이씨.매수공(梅叟公) 김이명의 묘가 상하의 종대로 조성되어 있고. 좌측 이강릉에는 충좌위사지 김세지.-절충장군 첨지중추 부사(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김계하(金繼賀). 김도장(金道長'登武科).김의근묘가 상하의 종대로 있다. 선산김씨 묘역은 춘천시 동면 구봉산(九峰山-441m)에서 을진(乙辰).손사(巽巳)룡으로 행도하여.정미(丁未). 병오(丙午)룡으로 횡룡하여 다시 한 번 더 변화를 주어 정미(丁未)로 입수하니 생룡중의 생룡이로다. 원맥에서 갈라져 나온 주맥(主脈)과 부맥(副脈)은 묶어주기를 두 번 또는 세 번 이상을 하니 법안(法眼)으로는 가늠하기가 여의치 않는 곳이다. 지리에 정통하고자 하는 분이나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필답코스가 아닌가 싶어 추천합니다. 와겸유돌(窩鉗乳突)의 사상혈 중 유혈(乳穴)에 속하는데 여기서 심혈(尋穴)과 점혈(點穴)까지 가능하다면 법안을 넘어 도안에 이르렀다고 봐야 되겠지요. 흠은 도로공사로 인해 백호백이 잘려나가 부녀자나 지손과 외손에 영향을 끼치겠다..점혈에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선삼김씨 묘역 통훈대부 창평현령 김윤옥(金潤屋)묘 선산 김씨(善山 金氏)는 서로 다른 3개의 계파가 있는데 첫째, 고려개국공신(開國功臣) 대광시중(大匡侍中) 김선궁(金宣弓)을 시조로 하는 계열 둘째, 원성왕 후손으로 좌복야(左僕射) 김한충(金漢忠)을 시조로 하는 계열이고 셋째, 경순왕의 아들 김추(金錘)를 시조로 하는 계열이다. 이들은 이조(異祖) 동본동성(同本同姓)이다. 시조 김선궁(金宣弓)은 고려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벼슬이 대광시중 정난보국공신(大匡侍中 靖難輔國功臣)에 책록되고, 선주백(善州伯)에 봉 받았으며 순충공(順忠公)의 시호를 받았다. 속칭 일선김씨(一善金氏)라고도 한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백제를 정벌할 때 숭선(嵩善. 경북 선산) 지방 전투에 병사를 모집함에 김선궁(金宣弓)이 고을 아전(衙前)으로써 응모하니, 태조는 자신이 쓰던 활 어궁(御弓)을 하사하고이름도 선궁(宣弓)이라 지어 주었다. 전쟁에서 공을 세워 시중(侍中)에 오르고 식읍을 지급받았다. 아들 김봉문(金奉文)은 선산(善山)에서 아버지 뒤를 이어 좌윤(左尹)으로 아전이 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선산(善山)의 옛 이름인 일선(一善)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다가, 조선 태종 때 지역명이 선산(善山)으로 개칭(改稱)됨에 따라 선산김씨(善山金氏)로 개관(改貫)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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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23회... 삼척 공양왕릉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23회... 삼척 공양왕릉 [한국풍수신문] 삼척 공양왕릉(恭讓王陵)은 고려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제34대, 재위기간 1389-1392)의 능묘이다. 공양왕은 왕조의 몰락과 함께 폐위되어 왕자 석(奭), 우(瑀)와 함께 원주와 간성을 거쳐 삼척에서 조선조 태조 3년(1394)에 교살(絞殺) 되었다고 전한다. 왕릉은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 현종 3년(1837) 정유년 가을에 삼척 부사 이규현이 개축하였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많은 사연을 가슴에 품은 채 그저 천추의 한(恨)을 품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묘소는 1942년 면장 김기덕과 이 지방인사들이 다시 개축하고 1977년 6월 면장 최문갑이 봉축하였다. 현재 우리 나라에는 공양왕릉이 두 군데 있는데 이 곳 궁촌리와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에 남아있다. 경기도에 있는 공양왕릉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나 삼척의 공양왕릉은 민간에 오랫동안 구전되어 왔다. 현재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된 공양왕릉은 가장 규모가 크고 그 옆은 왕자 나머지는 시 녀 또는 왕이 타던 말무덤이라고 전한다. 조선조 헌종 3년(1837)에 삼척부사(三陟府使) 이규헌(李奎憲)이 개축을 했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를 하였다. <태조실록>과 <양촌집> 등에는 조선조 태조 4년(1395)에 고려 왕조의 왕씨를 위해 삼척, 강화, 거제에서 수륙제(水陸齋)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이 곳의 지명 유래에 따르면 궁촌은 임금이 유배된 속이라 하고 마을 뒷길 고돌산에 공양왕이 살해되었다는 살해재가 있다. 또한 공양왕의 맏아들 왕석이 살았다는 궁터, 말을 매던 마리방이라는 지명도 전한다. 궁촌리에서는 3년마다 해신제를 지내기 전에 반드시 왕릉에 와서 제사를 추모하고 있다. 강원도 기념물 제71호(1995.09.18 지정) (참고문헌 :대한민국 구석구석 ) PS. 무너져가는 고려왕조를 어떻게든 일으켜보고자 절치부심했지만 이미 기울어진 판세에 결국은 강제 폐위되고 목숨까지 잃은 비운의 왕.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무덤과 이곳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무덤 진위를 떠나 한이 서려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대왕산에서 출맥한 용은 간인(艮寅)ㅡ을진(乙辰)ㅡ손사(巽巳)룡으로 입수하여 해좌(亥坐)로 자리잡았다. 취기처 명당은 아니지만 바다를 등지고 동남향을 하고 청룡이 해풍(海風)을 막고 해수(海水)의 수세(水勢)를 잠재우고.백호는 청룡과 교쇄를 하였지만 지기명당(地氣明堂)보다는 납기명당(納氣明堂)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마을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으니 넋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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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의 문화탐방22회... 오대산 사고(史庫)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의 문화탐방22회... 오대산 사고(史庫) [한국풍수신문] 사고는 나라의 역사 기록과 국가적으로 중요한 서적, 문서를 보관하던 창고다.고려 말기부터 조선 말기에 걸쳐 소중하게 보관.관리해오고 오늘날에도 대통령이 재임 시에 있었던 기록들을 퇴임을 하면 대통령 기록물 보관소로 이관돼 엄격하게 관리해오고 있죠. 조선 시대엔 행여 문제가 생길까 봐 4부를 만들어 1.춘추관. 2.충주. 3.전주. 4.성주의 사고(史庫)에 각기 한 부씩 봉안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를 빼고는 모두 불타 없어졌다. 그래서 좀 더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일반인이 쉽게 접근이 어려운 곳으로 천장지비의 명당 길지를 찾아 사고를 짓고 참봉2명 군졸 60명.승려 20명이 철통 경계를 하며 왕실의 역사서를 보관.보호하는데 힘썼다.한다. 1.강화도의 마니산. 2.강원도의 태백산. 3.영변의 묘향산. 4.평창의 오대산에 각기 보관하였다. 임진왜란(1592)때 전주사고만 남고 모두 불타 없어졌던 걸 1606년(선조 39)에 다시 만들어 춘추관.태백산. 묘향산.마니산에 사고를 짓고 보관하던 중 이괄의 난(1624)과 병자호란(1636)으로 춘추관 본이 불타 없어졌고, 그 후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에 보관하였다. 오대산 사고는 5대 사고 중의 하나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왕실의 족보인 선원보략(璿遠譜略)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사고의 보호사찰인 영감사 내에 있으며 물, 불,바람의 삼재(三災)가 침입하지 못한다는 길지(吉地)였다고 한다. 정족산본.태백산본.은 현재 서울대학교에 보관중이고 적상산본.은 한국전쟁 중에 없어졌으며, 오대산본.은 일본에서 거의 불타 없어졌다. 사고를 지을 당시에는 실록각, 선원각, 별관, 그리고 수호사찰로서 영감사가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모두 불에 타 1992년에 사각과 선원보각으로 이루어진 사고의 건물을 다시 지었다.(위키백과 참조) 오대산 사고는 합수지점 위에 지어져 있으며 상상외로 견고하게 지어진 것에 다시 한 번 경외심을 느낀다. PS풍수적으로 보면 좌향은 건좌손향(乾坐巽向)으로 동향이다.재물을 상징하는 물길은 환포보다는 비류다. 안산(案山)은 길지의 안산이라고 보기엔 미흡. 지기는 비류이다보니 육지(育地)보다는 내려가는 맥 한나라의 역사나 개인의 발자취를 볼 때 지나온 과거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온고지신(溫故知新)을 하는 국가나 개인은 큰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증명하듯이 앞으로도 발자취를 기록하고 보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기록을 보관하는 일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는 게 현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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