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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주암선생 문화탐방 40회... 노동서원주암선생 문화탐방 40회... 노동서원 [한국풍수신문] 노동서원(魯東書院)은 우리나라 사학(私學)의 원조인 최충(崔冲)의 영정(影幀)과 위패(位牌), 그리고 그의 아들인 최유선(崔惟善)을 봉안(奉安)하고 있다. 최충의 12대 손인 최변이 이곳에 낙향하여 자손들이 번창하자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당을 지었다가 후에 노동서원이라 개칭되었다. 서원에 봉안된 두 분의 영정은 1628년 (영조 24)의 거작(巨作)으로서, 1984년 6월 27일 강원도 일반 동산문화재(江原道一般 動産文化財)로 각각 등록되었으며 그 외 제기(祭器)일체가 또한 문화재로 등록, 현재 서원(書院)에 보관되어 있다. 대지 1500평에 건평 20평의 정전(正殿)과 14평 의 동재(東齋), 서재(西齋)가 있으며 내삼문(內三門)과 외삼문(外三門)이 각각 2棟씩 있다. 정전(正殿)에는 문헌(文憲), 문화(文和) 두 분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동재와 서재는 유인(儒人)들이 체류하며 학문을 토론하고 강론하는 곳이다. 또 유교적 전통문화 계승과 발전 을 위한 행사의 장으로도 쓰이며 특히 인근 초,중,고 학생들의 유적순례지로서 좋은 장소가 되고 있다. 본 서원은 원래 홍천군 북방면 노일리에 있던 것을 수호(守護)의 어려움으로 인 하여 1932년 5월에 이곳으로 옮겼으며 6.25동란에 소실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일부를 개축(改築)하고 수차에 걸쳐 중수(重修)하였다. 또한 정례행사인 제향을 유림행사(儒林行事)로서받들며 년 1회 봉제사를 올린다. 최충[崔沖.984년(성종 3)~ 1068년(문종 22)]인은 해주 최씨의 시조인 최온(崔溫)의 아들이다. 옛 고구려 영토인 해주 출신 최충은 은퇴 이후 총 9곳의 학당이라는 뜻의 '9재학당'을 세워 문관을 배출했다. 이른바 '시중최공도(侍中崔公徒)'인데 '최 시중의 공도들'이란 뜻으로 한국 사립학교의 원조이다. 시호 문헌공(文憲公).자(字) 호연(浩然)호 성재(惺齋)ㆍ월포(月圃자(字) ㆍ방회재(放晦齋) 최충 아들 최유선 영정 시호 문화공(文和公). 본관 해주 최씨(海州 崔氏) 최유선[崔惟善. ? ~ 1075년 1월]고려왕조 문종 인효대왕 시기의 유학자, 문관. 해주 최씨의 시조인 최온(崔溫)의 손자이며 최충의 장남, 최사추의 큰아버지이다. 고려 유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벼슬은 문하시중까지 올랐다. ● 풍수적 고찰. 노동서원은 좌방산(487m)에서 동진하여 술좌(戌坐)로 좌정하였다. 서원 뒤는 밭으로 사용중이나 서원으로 입수전에 기운이 상승하니 조금 뒤로 좌정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좌향(坐向)은 술좌진향(戌坐辰向)이다. 파구(破口)는 을진파(乙辰破) 당문출수)當門出水)다. 양공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묘향묘파(墓向墓破)에 해당되는데... 우선룡에 좌선수 술좌진향.에 을진파.을방수구 1.좌수가 우로 흘러 향의 을방으로 나가며 辰字를 범하지 말고 백보전란.용진혈적.천간자.파구면 묘향묘파로 대부부귀하게 되지만 약간이라도 차질이 있다면 황천을 범하여 패절하는 화를 입는다. 2.우수가 좌로 흘러 향상의 乙字로 나가면 絶水가 도충묘고(到沖墓庫-절방수가 묘고로 나감)하는 것이다. 당면으로 곧게 나가도 견동토우(牽動土牛).다 書에 이르길 을병수방손수선(乙丙須防巽水先-살인대황천).이라 한 것이 이것이다.황천살을 범하였으니 패절한다. 초기에는 수법이 맞아 잘 나가나 끝에는 황천살을 범하니 조심해야 한다. ● 당문출수가 합법이 되려면 ㄱ. 용진혈적(龍眞穴的)해야 한다. ㄴ. 右水가 左로 흘러 향상의 乙字로 나가며 辰字를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ㄷ.백보전란(百步轉欄)해야 한다. 양택은 양룡(陽龍)이어야 한다. 취기보다는 국세가 갖추어지고 안(案)이 좋아야 한다. 본래에 있던 자리[홍천군 북방면 노일리에 있던 것을 수호(守護)의 어려움으로 인 하여 1932년 5월에 이전.]가 어떤지는 확인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사학의 웑조이신 분이 좀더 양명한 곳에 계셨으면 더 좋았을것인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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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주암선생 문화탐방 39회... 수타사(壽陀寺)주암선생 문화탐방 39회... 수타사(壽陀寺) [한국풍수신문] 수타사(壽陀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로 강원도 홍천군 동면 공작산(孔雀山)에 있는데 통일신라의 제33대 성덕왕 7년 708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처음에는 우적산(牛跡山) 일월사(日月寺)라 하였으며 영서지방의 명찰로 손꼽혀 오다가 1568년(선조 2)에 현위치로 이건(移建)하면서 수타사(水墮寺)라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의 병화로 완전히 불타버린 뒤 1636년(인조 14)에 공잠(工岑)이 중건하였고, 1644년에 학준(學俊)이 당우(堂宇)를 확장하였다. 1683년(숙종 9)까지 계속하여 중건하여 옛모습을 재현하였다. 현재의 이름으로 바꾼 것은 1811년(순조 11)이다. 대적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으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총 2,999평의 대지에 171평의 건물을 갖춘 이 절은 풍수로 볼 때 공작포란지지(孔雀抱卵之地)라는 명당이며, 주위는 동용공작(東聳孔雀)·서치우적(西馳牛迹)·남횡비룡(南橫飛龍)·북류용담(北流龍潭)으로 표현되는 포근한 골짜기에 있다.(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풍수적 고찰 수타사는 공작산(孔雀山. 887.4m.ㅡ사방으로 뻗은 능선이 공작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공작산이라 함.)에서 발조 후 西進하여 수리봉을 성봉한 후 다시 경유(庚酉)로 행도하여 약수봉(558m)의 소원봉을 이룬 후 다시 출맥한 용(龍)이 곤신(坤申)-신술(辛戌)로 기복굴곡(起伏屈曲)과 박환(剝換)을 거듭하며 행도하여 공작의 알에 해당하는 주산(主山)을 이루고 산진처에 이르러 을진(乙辰)-갑묘(甲卯)로 입수하여 좌정한 곳이다.혈형은 계소혈(鷄巢穴)에 가깝다. 당판은 튼실하고 조당은 금성수로 환포하니 유정하기가 그지없고 평화로우면서 안정적인 재물 명당이다. 취적이 저절로 되는 곳이니 재물 걱정은 안해도 될 곳이다. 청룡이 유정하게 감싸면서 안산을 이루니 청룡작국이다. 청룡작국이니 인정(人丁)도 왕하고. 안산 형태가 토체이니 큰 재물이 왕하는 곳이다. 좌향(坐向)은 묘좌유향(卯좌酉向).으로 정동향이다. 파구는 좌수도우(左水到右)하여 신술(辛戌)로 파구(破口)되니 양공(楊公. 834~900.唐나라 국사)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차고소수자왕향(借庫消水自旺向)이다. 이는 임관룡(臨官龍).우선룡에 좌수도우.경유향에 신술파.로 詩의 유유쇠방가거래[惟有衰方可去來(쇠방으로 물이 나가도 되고 들어와도 좋다)]에 합당하여 발부발귀.하고 오래살고 인정(人丁ㅡ인물과 장정)이 왕(旺)한다. 국세.형세.지세가 좋고.이기(理氣)법에도 손색이 없는 곳이라 인정과 재물이 발현하는 곳이니 유구한 역사를 이어가리라... 인정(人丁)과 재물에 대한 발원이 필요하시면 수타사에 가 기원하시고 특히 재물에 대한 발원이 필요하신 분들은 대적광전에 있는 취기처에 가 발원해보심이 좋을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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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주암선생 문화탐방 38회... 애국을 몸소 실천한 남궁억(南宮檍) 선생.(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8회... 애국을 몸소 실천한 남궁억(南宮檍) 선생. [한국풍수신문] 한서 남궁억(南宮檍) 선생 유언." 내가 죽거든 무덤을 만들지 말고.과목(果木)밑에 묻어 거름이나 되게 하라."1934년 1월 26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정성껏 마련한 제물을 진설하고.남궁억(南宮檍) 선생에 禮를 표했습니다 예를 표한 후 기념. 남궁억[南宮檍.1863.12.27.1939.4.5]. 본관 함열 남궁씨 字 치만(致萬) 호 한서(翰西) 아버지 남궁영(南宮泳), 어머니 덕수 이씨. 배우자 양혜덕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자녀: 딸 남궁숙경, 남궁자경. 아들 남궁염 아버지 남궁영(南宮泳)과 어머니 덕수 이씨 사이에서 12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1894년 내부토목국장으로 파고다공원을 세웠다.1896년 2월 아관파천 후에 관직을 사임하고 1896년 7월 서재필, 이상재 등과 독립협회를 창립하였다. 1898년 9월 나수연, 유근 등과 황성신문을 창간하고 사장에 취임해 국민 계몽과 독립협회 활동을 지원하는데 힘을 쏟았다. 1905년 3월 고종의 간곡한 요구로 다시 관직을 맡아 성주군수로 부임했다. 그러나 1905년 11월 일본이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하자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왔다.1906년 2월 양양군수에 임명되자 애국계몽운동에 참가하였다. 1907년 일본이 헤이그 밀사사건을 이유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 7조약을 체결해 침략 정책을 강화하자 사임하고 애국계몽운동에 주력하였다. 1910년 8월 경술국치 이후 교육을 통한 구국 운동에 노력하여 1910년 10월 배화학당 교사가 되었다. 1933년 11월 개신교 계열 독립운동 비밀 결사인 '십자당'을 조직해 활동하다 홍천경찰서에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되어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노령이 참작되어 석방되었으나 1939년 4월 5일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 풍수적 고찰. 나라를 사랑하고.국민개봉활동에 전념하고 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 꽃을 누구보다 사랑한 한서 남궁억 선생 묘역은 장락산(629.5m)에서 북동으로 동진하여 회룡고조형국(回龍顧祖形局)을 취하였다. 우측에선 홍천강 모곡.수산 유원지 물이 주산을 감싸고 도는 형국이라 취기처가 분명하고 재혈이 합당하면 부귀가 기약되는 곳이다. 묘역은 3단으로 아름답게 조성되었지만 주산에서 낙맥하는 주(主) 기운은 청룡방으로 흐르고 묘소로 오는 기운은 작은 보백지지다. 주산은 암반으로 된 골산(骨山)의 문필봉인데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우측의 강물은 반배로 다가오니 비보(裨補)를 해야 한다. 조당과 안산은 유정하다. 좌향은 인좌신향(寅坐申向)과 곤신(坤申)사이의 공망이나 인좌신향(寅坐申向)에 경신(庚申) 분금으로 하면 좋다. 파구(破口)는 우수(右水)가 좌(左)로 흘러 정미(丁未)로 나가니 이는 양공(楊公. 834~900.唐나라 국사)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차고소수자생향(借庫消水自생向)이다. 차고소수자생향은 부귀하고 장수하며 인정(人丁)이 대왕한다. 차남이 먼저 발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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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7회... 강릉최씨(江陵崔氏) 중시조 최입지(崔立之) 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7회... 강릉최씨(江陵崔氏) 중시조 최입지(崔立之) 묘 최입지(崔立之)는 고려 후기의 문신.본관은 강릉. 자는 양필(良弼). 호는 성묵당(誠默堂). 시조 최흔봉(崔欣奉)의 12대손.으로 조부는 최군보(崔君甫), 父 최릉(崔陵)이다. 강릉최씨 평장공파(平章公派)의 시조이다. 원래 최입지(崔立之)는 최흔봉(崔欣奉)공을 시조로 하는 완산(完山)인이었으나 시조의 묘가 실전되었고, 시조로부터 12세손인 충숙공(忠淑公) 최입지가 강릉군에 봉해지면서, 그 후손들은 강릉을 관향으로 쓰게 되어 그를 중시조로 모시게 되었다. 말년에 혼란한 정국을 뒤로 하고 강릉 모산(母山)에 은거하여 후손이 여러 대에 걸쳐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하여 최입지가 살던 곳인 현재의 강릉시 장현동 모산의 지명을 평장동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개국 후 수태사태상(守太師太常)으로 증직. 세종 때에는 영의정(領議政)에 가증(加贈)되었다. 시호는 충숙(忠淑)이다. 최입지의 유허지는 강원도 강릉시 장현동 모산.에 최입지구지기적비(崔立之舊址紀蹟碑)가 있다, (참고문헌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강릉최씨 종친회) ● 풍수적 고찰 태백산맥의 오대산(2563m)에서 발조한 용은 동남향으로 기복굴곡(起伏屈曲)을 하고 다시 정동쪽으로 위이굴곡으로 행도하다 서진(西進)하여 소목고개를 지난 후 정좌하였는데 좌향(坐向)은 묘좌유향(卯坐酉向)을 하였다. 형국은 백호 작국으로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다. 혈형(穴形)은 유혈(乳穴)로 혈장(穴場)은 장유(長乳)다. 용호(龍虎)은 부모가 자식을 감싸 안듯 유정하다.. 안산(案山)은 부부가 밥상을 두고 사이좋게 앉듯이 아담하면서 다정다감한데 조산(朝山)은 약간 사비(斜飛)인 것이 아쉽다. 앞에 고속도로 개설로 인해 옛 모습인지 불분명하기도 하다. 조당(朝堂)은 작지만 알차다. 파구(破口)는 정미파(丁未破)다. 양공(楊公. 834~900.唐 국사)의)의 88향법에 의하면 이는 향상(向上)으로 관대방(冠帶方)을 충파하니어린 유년기의 총명한 자식이 상하고 또 규중의 부녀와 딸들이 상하면서 재산이 패하여 오래되면 패절하니 유의해야 할 향법중의 하나다. 고려 후대의 인물이라 그때는 파구의 개념이 보편화되지 않아서 크게 개의치 않았으리라 본다. 참고로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장안골 뒷산 고성산(古城山)에는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의 명혈로 알려져 왔으며, 금산리라는 지명도 거문고에서 따와 금산(琴山)이라 했다가, 나중에 강릉 김씨들이 많이 산다 하여 금산(金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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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6회... 원신(元愼) 장군 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6회... 원신(元愼) 장군 묘. 원신[元愼.1551년 (명종 6)) ~]장군은 자(字) 신재(愼哉). 본관 원주(原州). 거주지 한성([京]). 엄시하(嚴侍下)에서 선조(宣祖) 16년(1583) 계미(癸未) 알성시(謁聖試) 병과(丙科) 20위(46/101)에 합격하였다.통정대부 행 남원도호부사 겸 전라도방어사(通政大夫 行 南原都護府使 兼 全羅道防禦使) 부(父)는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동지의금부사 행 의교랑안기도찰방 (曾 嘉善大夫 戶曹參判 同知義禁府事 行 宜敎郞安奇道察訪) 원영세(元永世.)다. 형(兄) : 원척(元惕) 제(弟) : 원개(元愷) 제(弟) : 원제(元悌) ● 풍수적 고찰. 장구봉(300m)에서 임자(壬子)로 지현굴곡을 하여 다시 경유(庚酉)룡으로 행도하여 간인룡으로 입수하였다. 혈형(穴形)은 장유(長乳)다. 내룡맥과 당판(當坂)로 봐서는 취기(聚氣)가 된 것처럼 보이나 백호사(白虎沙)가 비주(飛走)를 하고 보호를 못 해주니 흘러내리는 과룡(過龍)에 모양새만 취기된 당판처럼 보이는 보백지지(保魄之地)’ 로 봐야 한다. 골과 도로가 반배를 하니 재물 또한 취적이 쉽지 않는 곳이다. 재실은 묘역 아래에 있는데 현대식이다. 좌향(坐向)은 인좌신향(寅坐申向)에 경유파(庚酉破)다. 만약 경파(庚破)라면 양공(楊公. 834~900.唐 국사)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문고소수(절처봉생향)다. 書에 말하는 녹존류진패금어(祿存流盡佩金魚ㅡ녹존방으로 물이 나가면 벼슬을 한다. )라는 말이 이것이다. 이는 부귀하여 복수쌍전하지만 약간이라도 차질이 있으면 패절하니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다만용진혈적. 천간자파구. 백보전란.을 해야만 사용 가능하니 신중을 기해야 하는 수법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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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35회 ... 최규하 전 대통령 부모 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35회 ... 최규하 전 대통령 부모 묘. ● 최규하(崔圭夏, 1919년 7월 16일~2006년 10월 22일)는 대한민국의 제10대 대통령이다. 제4공화국의 2번째 대통령이며, 대한민국 최초의 국무총리 출신 대통령이었다.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호는 현석(玄石)이다. 1945년부터 경성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미 군정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발탁된 이후, 정부수립 후 농림부에서 근무하다가 외무부로 발탁되면서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1967년에 외무부 장관에 발탁됐다. 1976년 3월 13일 국회의 동의를 거쳐 국무총리가 됐으며, 10.26 사건으로 대통령 박정희가 사망하자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1979년 10월 27일부터 1979년 12월 6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1979년 12월 6일부터 1980년 8월 16일까지 군부 실권하의 대통령으로 재임하였다.아버지 : 최양오 (崔養吾, 1897.4.21~ 1973.8.26)어머니 : 이응선 (李應善, 1899.10.11 ~ 1983.5.2) ● 풍수적 고찰. 봉산(232.4m)에서 출맥한 용은 기복굴곡으로 북동진하여 을진(乙辰) 정미(丁未)로 행도하여 갑묘(甲卯).간인룡(艮寅龍)으로 횡룡(橫龍)으로 입수하였다. 산진처에 자리를 잡은 당판은 크지 않지만 아담하면서도 취기가 제대로 된 옹골찬 멋진 명당국이다. 다만 백호(白虎)가 낮게 호위하여 백호방이 허약한 게 아쉽다. 청룡도 낮게 부복(俯伏)한 자세라 용호로 보아 겸손의 미덕을 추구하는 자손 들이겠는데 묘역 관리에도 좀 더 신경을 쓰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좌향(坐向)은 인좌신향(寅坐申向)에 경유파(庚酉破)로 양공(楊公. 834~900.唐나라 국사)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문고소수. 이는 서(書)에 말하는 녹존류진패금(祿存流盡佩金魚ㅡ녹존방으로 물이 나가면 벼슬을 한다)라는 말이 곧 이것이다. 부귀하여 복수쌍전하지만 약간이라도 차질이 있으면 패절하니 함부로 사용할 수 없으며 용진혈적.천간자파구.백보전란.을 해야만 사용 가능하니 신중을 기해야 하는 수법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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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4회... 이기(李墍.) 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4회... 이기(李墍.) 묘 이기[李墍.1522년(중종 17) ~ 1600년(선조 33)]는 대사헌, 지돈녕부사, 예조판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한산(韓山.지금의 충청남도 서천))이다. 자는 가의(可依). 호는 송와(松窩). 장윤(長潤)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질(秩)이다. 아버지는 지란(之蘭)이며, 어머니는 원선(元璿)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시서에 능했다. 1555년(명종 10)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7년 수찬(修撰)을 역임한 뒤 전한(典翰)이 되어 편수관으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화군 보(順和君0x9A45)를 보필하면서 강원도에 내려가 의병을 모집하였다. 지중추부사·대사헌·지돈녕부사·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죽은 뒤 1603년에 2품 이상 재신을 청백리로 뽑는데 녹선되었고, 그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그가 대사헌으로 있을 때 종로 네거리를 지나는데 말이 너무 말라 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는 개의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훗날 말이 피곤해 땅에 주저앉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대사헌의 말’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그는 이처럼 청빈하여 한사(寒士)나 다름없이 직책을 맡아보았다. 시호는 장정(莊貞)이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풍수적 고찰 월림산(200m)에서 발조하여 庚酉龍로 기복굴곡으로 서진하여 중조봉을 이룬 후 丙午로 방향을 틀어 乾亥龍으로 입수를 하였다 국세는 백호가 안아주지 못하고 약간 비주하는 모양새이기는 하나 대체적으로 편안하며 안정적이다. 당판 크고 옹골차다.묘역을 잡다한 돌들로 산민하게 쌓아 놓았는데 생각보다 높지는 않아 다행이고 짐승들의 침입을 막는 비보(裨補)로 보는 것이 타당할듯하다. 주산은 금성체로 후부(後富)한데 묘 좌측으로 근자에 들어선 고압선이 지나고 있어 찾아오는 후손들에 피해가 갈까 두렵다. 좌향(坐向)은 건좌손향(乾坐巽向)에 파구(破口)는 병오파(丙午破)로 문고소수(文庫消水)이다 문고소수(文庫消水)는 양공(楊公)의 진신수법으로 書에서 녹존유진패금어( 祿存有盡佩金魚)라는 말이 이것이다. 즉 부귀(富貴)하여 복수쌍전(福壽雙全)하지만 역간이라도 차질이 있으면 패절(敗絶)하니 가벼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으며 용진혈적(龍眞穴的)해야 무방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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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3회... 조엄(趙曮) 해사일기(海槎日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3회... 조엄(趙曮) 해사일기(海槎日記) 조엄[趙曮.1719년(숙종 45년) ~ 1777년(정조 1년)]은 조선후기 공조판서, 이조판서,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명서(明瑞), 호는 영호(永湖). 조중운(趙仲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도보(趙道輔)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조상경(趙商絅)이다. 어머니는 이정태(李廷泰)의 딸이다. 1738년(영조 14) 생원시에 합격, 음보로 내시교관(內侍敎官) · 세자익위사시직(世子翊衛司侍直)을 지내고, 1752년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1763년 통신정사(通信正使)로서 일본에 다녀온 뒤, 대사간 · 한성부우윤, 예조 · 공조의 참판 및 공조판서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770년 평안도관찰사로 파견되어 감영의 오래된 공채(公債) 30여 만냥을 일시에 징수하는 등 적폐(積弊)를 해소하는 수완을 보였다. 그러나 토호세력들의 반발로 탐학했다는 모함을 받아 평안도 위원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아들 조진관(趙鎭寬)의 호소로 죽음을 면하고 김해로 귀양이 옮겨졌으나 실의와 불만 끝에 이듬해 병사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경사(經史)에 밝았을 뿐만 아니라 경륜(經綸)도 뛰어났다. 민생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서 남긴 업적이 적지 않다.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가져오고 그 보장법(保藏法)과 재배법을 아울러 보급, 구황의 재료로 널리 이용되게 했던 점은 후세에 공덕으로 크게 기려지고 있다. 저서로 통신사로서 일본을 내왕하며 견문한 바를 적은 『해사일기(海槎日記)』가 전하고 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풍수적 고찰 고구마를 가져와 구황작물로 자리잡게 한 조엄선생의 묘역은 어떤가? 부길산(150m)에서 행도를 시작한 용(龍)은 정미(丁未)로 기복굴곡(起伏屈曲)을 하여 경유(庚酉)룡으로 힘차게 달려와 잠시 숨고르기를 한 후 낙맥을 하고 과협처를 거쳐 정미(丁未)로 입수를 하였다. 주산은 준수하고 백호는 주인에게 예로써 호위를 하고. 청룡은 주인에게 예를 갖추는 것처럼 보이다가 이내 기념관 쪽으로 달려간다. 안산은 단아한 자태로 주인을 향해 있다. 내룡에 비해 당판은 옹골차지 못한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좌향(坐向)은 축좌미향(丑坐未向). 파구(破口)는 곤파(坤破)다. 이는 양균송 선사의 88향법의 정묘향(正墓向)에 해당된다. 관대룡.우선룡에 좌선수(左水到右-水가 絶방으로 나감) 정미향에 곤신파는 書에 이르길 정곤종시만사상[丁坤終時萬斯箱(정향을 하고 곤방으로 물이 나간다면 큰 부자가 된다는 향이다).] 이는 발부발귀(發富發貴.인정대왕(人丁大旺). 복수쌍전(福壽雙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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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2회 원충갑(元沖甲) 장군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뮨화탐방 32회 원충갑(元沖甲) 장군 [한국풍수신문] 원충갑(1250~1321)은 고려의 무신으로 1250년 중원도(中原道) 원주(현 강원도 원주시)에서 아버지 원민성(元敏成)의 무녀독남, 4대 독자로 태어났다. 지방의 계수관시(界首官試)에 합격하여 향공(鄕貢)이 되었으며, 이어 국자감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고향인 원주의 별초(別抄)에 들어가 무관으로 근무했다.본관은 원주고, 시호는 충숙(忠肅)이다.향공진사(鄕貢進士)로 원주별초(原州別抄)에 있으면서 1291년(충렬왕17) 합단적(哈丹賊)이 치악성을 포위하자,전후 10차에 걸쳐 적을 크게 무찔렀다. 원충갑의 이러한 공로로 원주는 익흥도호부로, 다시 1308년 원주목(原州牧)으로 승격되었고,원주에 부과되던 각종 부역과 잡공이 3년 동안 면제되었다.원충갑 또한 여섯 번 전임하여 삼사(三司)우윤(右尹)에 올랐다. 충선왕 때 응양군 상호군이 되었고, 합단적을 물리친 공으로 1319년(충숙왕 6) 추성분용정란광국공신이 되었다.원충갑은 충숙왕 8년 나이 72세에 생을 마감하였다. 치악산 영원산성 안에 원충갑사가 세워져 제사를 모시다가 1669년(현종 10) 사당을 세워 원충갑을 주향하고 김제갑과 원호를 배향하였고, 1670(현종 11) 윤 2월 7일 충렬사로 사액되었다. (출처: 원주시청)강원도 문화재자료 제 138호 ● 풍수적 고찰. 원충갑(元沖甲) 장군 묘역은 한강기맥으로 백운산에서 발조하여 월림산(225m)의 소조봉을 성봉 한 후 경유(庚酉)ㅡ신술(辛戌) 용으로 지현굴곡(之玄屈曲)으로 달려와 과협을 이루고서 위이(逶迤)을 하여 취기처에 준수한 용신산을 앞에 두고 좌정하였다. 당판(當坂)은 크기에 비해 옹골차며 취기는 물론 재혈에도 제대로 된 곳이다 다만 좌우 용호사(龍虎沙)가 주인에게 예를 다 갖추지 못한 것이 흠이다. 안산은 반갑게 주인을 맞이하는 국세다. 좌향(坐向)은 8층 천반으로 진좌술향(辰坐戌向)에 건해파(乾亥破)로 左水가 右로 흐르니 이는 양공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화국(火局)의 정묘향(正墓向)이다. 정묘향은 인물인 귀(貴)보다는 재(財)로 주로 3남이 혜택을 많이 보는 방위로 발부발귀(發富發貴)와 인정대왕(人丁大旺). 복수쌍전(福壽雙全).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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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1회... 한승수 전 총리 생가.주암선생 문화탐방 31회... 한승수 전 총리 생가. [한국풍수신문] 한 인물을 배출하는 데에는 여러 요소가 있는데 그중의 제일은 지기(地氣)의 영향이다. 옛말에 인걸은 지령(人傑地靈)이라고 했다. 즉 사람은 땅의 기운(氣運=地氣)의 영향을 받고 산다. 먼저 음택(陰宅)의 영향이다. 조상의 음택이 지기(地氣).천기(天氣).조응기(照應氣). 형상기(形象氣)가 좋으면 조상과 자손의 동기감응(同氣感應) 으로 훌륭한 자손이 태어난다. 조상의 음택이 좋으면 ㄱ.좋은 컨디션 유지 ㄴ.매사에 자신감 ㄷ.종사하는 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ㄹ.적덕을 쌓게끔 하여 ㅁ.좋은 배우자 만나고 ㅂ.최상의 컨디션 상태에서 수태. ㅅ.최적의 태교가 되어 ㅇ.큰 인물이 될 사주팔자를 갖고 태어난다. 다음은 양택(陽宅 -거주 공간)의 영향이다. 양택이 지기(地氣).천기(天氣).인기(人氣).조응기(照應氣). 형상기(形象氣)가 좋으면 ㄱ.좋은 컨디션 유지 ㄴ.매사에 자신감 ㄷ.종사하는 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ㄹ.적덕을 쌓게끔 하여 ㅁ.좋은 배우자 만나고 ㅂ.최상의 컨디션 상태에서 수태. ㅅ.최적의 태교가 되어 ㅇ.큰 인물이 될 좋은 사주팔자를 갖고 태어난다. ㅈ.건강한 생활유지. ㅊ.사회생활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ㅌ.입신양명(立身揚名)한다. 양택(陽宅)의 생명은 취기처(聚氣處)보다는 ㄱ.사세(四勢)가 갖춰지고 ㄴ.지기(地氣).천기(天氣).인기(人氣).조응기(照應氣). 형상기(形象氣)가 좋아야 하고 .좌향(坐向)이 어긋나지 않고. ㄷ.택주(宅主)와 궁합이 맞아야 하고. ㄹ.인심(人心)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 ㅁ.물길.도로.길..등이 반배하지 않아야 한다. 양택삼요의 1.배산임수(背山臨水) -뒤는 적당한 높이의 산이 병풍처럼 있고. 앞은 물이 금성수로 흐르는 곳이면 좋다. 2.전저후고(前低後高) -집 앞은 집과 터보다 낮아야 하고 집 뒤는 적당한 높이가 되어야 좋다. 3.전착후관(前窄後寬)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넓지 않으면서 좁아야 하고 집 안쪽은 좁지 않은 넓은 곳이어야 좋다. 천연 재물이 모이는 조당을 물길이 금성수로 감싸고 돌면 금상첨화다. 한승수 전 총리의 생가는 위의 조건을 다 충족한다. 주산은 장군봉(188.1m)에서 출맥하여 간인룡(艮寅龍)으로 달려와 아담한 금성체의 소원봉을 성봉하여 생가로 입수하고 있으니 지기(地氣).천기(天氣).인기(人氣).조응기(照應氣). 형상기(形象氣)까지 좋아 후세의 권력까지 기약을 한다. 집 앞의 조당과 의암호는 후한 인심(人心) 말해주고 있다. 집의 좌향(坐向)은 신좌을향(辛坐乙向)에 손사파(巽巳破)로 정묘향이다. 이는 관대룡.우선룡에 좌선수(좌수도우-水가 絶방으로 나감)로 書에 이르길 을향손류청부귀[乙向巽流淸 富貴(을향을 하고 을방수가 손방으로 물이 나가면 부귀한다.)]라 하여 발부발귀(發富發貴)하고 인정(人丁)이 대왕하며복수쌍전(福壽雙全.)한다. PS 한승수(韓昇洙, 1936년 12월 28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39대 국무총리로 춘천군 출생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학 석사, 요크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대한민국 육군을 중위로 전역하였다. 2001년 제56차 유엔 총회에서 의장을 맡았다. 2008년 국무총리로 재임하였다. 2022년 10월 25일 유엔총회의장협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참고문헌 위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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