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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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95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95회 3) 토(土)에 이목(二木)이 소통하여 문장(文章)의로 과거에 급제하고 부(富)가 성(盛)한 터 【1】 조산으로부터 4개의 토(土)내려오고, 【2】 다시 2개의 목(木)으로 변하여 터를 만들었다. ☞ 목(木)이 토(土)의 자질(資)로 성(盛)하고, 토(土) 역시 소통하니 마땅하다. ☞ 토(土)는 재성(財星)이 되고 목(木)은 문성(文星)이 된다.☞ 그러므로 나오는 사람이 과거가 드러나며 또 집에 재물과 부(富)가 후부 하다. ☞ 『경(經)에 이르길 만약 전신(全身)이 토(土)이고 일목(一木)이 소통疏通)하면 터는 자연 부(富)가 창고에 가득 쌓이고 돈이 가득하다. 단지 반드시 조정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이 말은 많은 무리의 토(土)에 홀로 하나의 목성(木星)이 터가 되면 목(木)이 약하여 자손에 귀(貴)가 나오지만 단지 드러나지 못한다. 그러나 이 터는 이목(二木)이 서로 전(傳)하여 터를 만드니 목의 기운이木氣)가 이미 왕(旺)하다. 그러므로 고과(高科)로 귀(貴)에 이르고 마땅히 조정에 오르는 것이다. 단지 두려운 것은 후세에 전(傳)하여 토성(土星)에 이르러 부(富)가 성(盛)하고 귀(貴) 없이 오래 지속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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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62회 ...고려 23대 왕인 고종의 홍릉(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62회 ...고려 23대 왕인 고종의 홍릉 홍릉은 강화군 간화읍 국화리에 있다. 워낙 경사가 심해 능에 오르는 길이 힘들었다. 아무리 실권이 없고 전쟁중이라지만 이런자리에 왕릉을 조성하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최충헌이 실권을 가지고 있으니 왕이야 허수아비에 불과했다고 하지만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종은 팔만대장경을 조성하여 적으로 부터 고려를 구하자고 하였다. 그런 노력이 있어서 현재까지 능이 보존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아뭏든 강화도에 조성된 왕릉은 하나같이 길지와는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풍수가의 영향이 전혀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안타까운 맘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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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94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94회 2) 토화(土火), 토수(土水)의 조화로 수(水)로써 수려(秀)하고 화(火)로써 녹(祿)이 되어 자손이 부귀쌍전(富貴雙全)의 터 【1】 조산의 토(土)에서 작은 토(小土)가 낙(落)하여 화(火)로 변(變)하니 화생토 (火生土)가 된다. 【2】 그리고 화(火)에서 토(土)가 천(穿)하고 나와 앞에 후부한 토(土)를 전(傳)하니 토(土)가 누적하여 쌓여 이미 후부 하다. 【3】 또한 수(水)로서 토(土)를 윤택하게 하고 다시 토성(土星)이 일어나 전(傳)하여 터를 만들었다. ☞ 토(土)는 화(火)에서 생(生)하고, 능수(水)에서 윤택(潤)하고 능히 수(水)를 막는다. 화(火)가 있고 수(水)가 있으면 이는 마땅하니 수(秀)하면 복(福)을 얻고 자손이 부귀(富貴)하다. ☞ 자손에 부귀쌍전(富貴雙全)을 주관하니 화(火)로써 녹(祿)이 되고 수(水)로써 수려한(秀) 것이다. 경(經)에 "수(秀)로써 복(福)을 얻으려면 뒤로 용(龍)이 거슬러 올라가면서 먼저 수성(水星)을 만나면 청수(淸秀)한 사람이 나오고, 그 이후에 화성(火星)을 만나면 이는 식록(食祿)이 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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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93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93회 5. 토성(土星) 1) 수토(土水), 토목(土木)의 조화로 귀인(貴人)이 거듭 부자를 만드는 부귀쌍전(富貴雙全)의 터 【1】 조산의 주천토(奏天土)가 락(樂)하여 토성(土星)의 개(蓋)를 만드니 복(福)을 대(帶)한 개성(蓋星)이 되어 거부(巨富) 축적(蓄積)을 주관한다. 【2】 토(土)가 변(變)하여 수성(水星)으로 행(行)하여 다시 토(土)로 전한다.(水土會) 【3】 터에 이르러 토(土)가 수(水)의 윤택함을 얻고 다시 전(傳)한 후,또 다시 목(木)을 생(生)하여 터를 만드니 부귀(富貴)가 함께 한다. ☞ 전체적으로 보면 토(土)가 많아 용기(龍氣)가 탁(濁)하나 나아가 수성(水星)이 되어 그 수려함(秀)을 발(發)한다. ☞ 수(水)는 수려하고 목(木)은 문(文)이다. ☞ 그러므로 부귀쌍전(富貴雙全)을 주관한다.☞ 또한 귀인(貴人)이 거듭 부자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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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61회 ...고려 21대 왕인 희종의 석릉(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61회 ...고려 21대 왕인 희종의 석릉 희종은 무인정권 시절에 왕이 되었던 인물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당시의 실권자 최충헌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다 발각되어 교동도로 유배를 가야했다. 이후 용유도에서 세상을 하직하게 되면서 이곳에 릉을 조성한 것이다. 흔히 왕릉하면 규모도 크고 명당에 자리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기 마련인데, 이곳은 그런 선입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깊은 산속으로 한참을 걸어들어가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에 능을 조성하였다. 물론 길지라는 개념과도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이런 곳에 왕릉을 왜 조성한 것일까? 당시 실권자인 최충헌의 입장에서는 죽은 왕을 추모하려 찾아오는 사람들을 원천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들은 자신에게 잠재적인 위협요인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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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92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92회 11) 금토(金土)의 조화로 부(富)는 스스로 쌓을 수 있으나 명예(名譽)가 없는 터 【1】 주산이 하늘에 드리운 금인 헌천금(獻天金)에서 금성(金星)이 내려 온다. 【2】아래의 토성이 후부하여 금토(金土)로 매우 아름다워 보인다. ☞ 그러나 금토(金土)로 중간에 변화가 없어 무겁고 탁하면(重濁) 좋지않다. ☞ 그러므로 부(富)는 스스로 쌓을 수 있으나 명예(名譽)는 떨치지 못한다. ☞ 이러한 터는 부(富)의 터가 될 뿐이나 또한 흉화(凶禍)가 없다. ☞ 뒤의 금성(金星)에 이르러 무직(武職)으로 나갈 수 있으니 허물이 없고 명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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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60회 ...고려 왕비의 강화 가릉(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60회 ...고려 왕비의 강화 가릉 가릉은 인천시 강화군 영도면 능내리에 있다. 고려 원종의 왕비이자 충렬왕의 모친인 순경태후의 능이다. 내부가 석실로 구성되어 있으나 도굴되어 현재는 내부가 비어있고 관을 놓았던 자리만 볼 수 있다. 풍수적인 특징이 뚜렷하지 않고 길지라 하기도 어렵다. 다만 고려의 왕비능이라는 점에서 방문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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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91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91회 10) 순금(純金)으로 신묘(神廟)의 터 【1】 조산의 금성(金星)에서 금(金)을 낙(落)하고 이어져 전부가 금성으로 터를 만든다. 【2】 중간에 토(土)가 없이 순금(純金)의 터가 되어 신묘(神廟)에 향을 피우는 지리에 불과하다. ☞ 신묘(神廟)가 두텁다는 것은 신묘(神廟)의 힘이 두터워 신령(神靈)과 제사(香火)가 왕(旺)하다는 것이다. ☞ 이는 조화(造化)가 없어 일반인이 사용하는 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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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90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90회 9) 금목토(金木土)의 조화로 공경(公卿)이 나오는 터 【1】 조산의 금(金)에서 금(金)으로 락(落金)하여 보개성(蓋星)이 되었다. 【2】 보개성에서 목(木)이 뚫고 내려와 높게 솟아 수려(聳秀)하고 아래에 다시 화개삼태(蓋蓋三台)가 있으니 그 귀(貴)가 가히 수려하다. 【3】 그리고 다시 일토(一土)로 변(變)하여 목(木)을 배양(培)하고, 일토(一土)를 앞으로 전(傳)하여 금(金)을 생(生)하니 토산(土山)에서 연(連)이어 세 개의 금(三金) 나오고, 그런 연후에 금(金)으로 앞으로 나아가 터를 만들었다. ☞ 이 터는 조화(造化)가 갖추어져 귀(貴)와 수(秀)를 얻은 땅이다. ☞ 반드시 태어난 사람이 청수(淸秀)하고, 문장(文章)으로 과제(科第)하여 나라에 신명을 바쳐 지위가 공경(公卿)에 이른다. ☞ 그 차례는 먼저 나아가 무직(武職)을 받들고(金), ☞ 집이 거부(巨富)에 이른 후에 뛰어난 아들이 나오고(土), ☞ 귀(貴)한 자손(孫)을 낳으니 바야흐로 공경의 지위(卿位)에 오르고(華蓋) , ☞ 물러나 개성(蓋星)에 이르니 지위가 공상(公相)에 이른다(寶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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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포천문화원장 이종훈, ... 인문도시 포천의 문화유산과 포천시립박물관(포천시 = 제공) 포천문화원장 이종훈, ... 인문도시 포천의 문화유산과 포천시립박물관 [한국풍수신문] 우리가 살고 있는 포천에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자연유산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유산이 자리하고 있다. 필자는 오랫동안 포천문화원에서 근무하며 포천 관내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연구할 기회가 있었다. 선사시대 고인돌부터 삼국시대 반월산성, 근대 포천성당 및 방어벙커까지 포천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조사하면서 우리 포천의 문화유산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잘 보존·연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지역 문화사를 연구, 전시, 교육하는 포천시립박물관의 건립은 우리 ‘포천’을 표현하는 정체성이 될 것이고, 포천 사람들에게는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중요한 공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1998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된 <포천 반월산성(抱川 半月山城)>은 포천의 주요 상징 공간이자 포천시민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청성산에 위치한 반월산성은 능선에 반달 모양으로 축성된 퇴뫼식(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두른 것) 석축산성으로, 그 모양이 반달(半月) 같다고 해 반월산성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1994년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1995~1997년 발굴조사를 통해 삼국시대 백제가 처음 축조하고 이후 고구려가 성을 견고히 하여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문헌상으로도 많은 기록이 남아 있는 만큼 필자는 포천학연구소에서 반월산성에 대한 문헌자료를 꾸준히 조사해 왔는데, 문헌상에는 ‘반월산성(半月山城)’, ‘청성(靑城)’, ‘고성(古城)’ 등으로 기록돼 있으며, 출토 유물은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다양하게 확인됐다. 그중 가장 중요한 출토품은 「마홀수해공구단(馬忽受解空口單)」이 쓰여진 기와다. 총 7자의 명문이 새겨진 이 기와는 장방형의 액 안에 적혀있는데 ‘마홀(馬忽)’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고구려의 지명으로, 삼국시대 포천 반월산성이 자리한 지금의 포천이 고구려의 영토였음을 시사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또한, 반월산성에서 출토된 기와편을 보면 고구려 기와로 추정되는 것 뿐만 아니라 신라의 토기도 대량 출토됐다. 이를 통해 포천 반월산성은 삼국시대 백제, 고구려, 신라가 모두 사용했던 주요한 산성임을 확인할 수 있다. 포천시는 오랫동안 멈춰있던 반월산성의 시·발굴 조사를 다시금 시작하였다고 한다. 오랫동안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만큼 새롭게 시작하는 연구가 누구보다 반갑다. 반월산성에 대한 꾸준한 조사가 이루어져 앞으로 지어질 포천시립박물관의 전시, 조사, 연구의 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포천에는 2006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된 <구 포천성당(舊 抱川聖堂)>이 있다. 1955년 6군단장 이한림 장군이 지은 성당으로,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고딕 양식이 가미됐으며, 종탑과 뾰족한 아치 창호 등 전형적인 근대 석조 성당 건축의 의장적 특징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이처럼 건축학적 가치가 높은 <구 포천성당>은 1990년 성당의 목조 바닥과 목조 지붕틀이 전소됐지만, 옛 성당을 그대로 보존하고자 지붕과 창틀만 복원하고 석조는 그대로 남겨둔 것은 역사적 가치 보존 측면에서도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포천은 6.25 한국전쟁 시 주요 격전지로, 많은 문화유산이 파괴되거나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현재까지도 도처에 많은 군부대들이 주둔하고 있는 군사지역으로, 포천 전역에 걸친 문화유산을 조사·연구하는데 어려움이 잔존하고 있다.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소실되고 파괴돼 온전히 남아 있는 문화유산이 부족한 탓에 그에 따른 연구가 저조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포천시립박물관을 건립하는데 있어 극복해야 할 큰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천은 그동안 포천학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미약하나마 꾸준히 역사적 문헌 등을 연구 및 조사하고자 노력해왔다. 또한, 국가지정문화재, 국가등록문화재, 경기도지정문화재, 포천시 향토문화재 등 꾸준히 포천 관내 문화재를 지정·등록해왔으며, 포천 관내 인물에 대한 조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향후 포천시립박물관이 건립된다면 지금까지 진행해왔던 포천사 연구가 더욱 힘을 받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롭게 건립되는 포천시립박물관이야 말로 포천시가 추구하는 인문도시를 이루는 주요한 상징물로 자리 잡을 것이며, 인문도시가 갖추어야 할 대상으로 없어서는 안될 주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포천시립박물관이 탄생하기를 기원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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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연재]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59회 ...정순왕후의 조부 송복원의 묘(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59회 ...정순왕후의 조부 송복원의 묘 송복원의 묘는 서울 서초구 우면동 송동마을에 있다. 이 곳에는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의 어머니 민씨와 조부등 여러 기의 묘가 산재해 있어 송씨네 선산인 셈이다. 현재는 그린벨트로 개발이 제한되어 있으나 앞으로 개발 될 여지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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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연재]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89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89회 8) 금목금(金木金)의 조화에 목(木)이 강하고 수토(水土)가 없어 자손(子孫)이 비록 귀(貴)하나 수(壽)가 없는 터 【1】 조산에서 금성(金)의 보개(寶蓋)가 금(金)을 낙(落)하여 매우 귀하다. 【2】 아래로 목성(木)의 보개(寶蓋)가 스스로 생(生)하여 3개의 목(木)을 앞으로 전하니 목(木)이 왕(旺)하고 수려(秀)하다. 【3】 그리고 낙(落)하여 반듯한 일자문성(一字文星)이 되고 다시 나아가 금(金)이 되어 터가 되었다. ☞ 전체적으로 많은 무리의 목(木)이 금(金)을 압(壓)하고 있어 금(金)은 비록 썩지 않고(朽) 멸(滅)하지 않았으나 스스로 일어날 수가 없다. ☞ 이것이 무직(武職) 드러나지 않고 가라앉는 까닭이다. ☞ 그러므로 이 터는 지금 수토(水土)가 없어 흠결(欠缺)이 된다. ☞ 그러므로 일절은 금(金)이 무성(武星)이 되니 무직(武職)에 그친다. 그러나 수토(水土)가 있어 후룡으로 물러나 문성(文星)에 그치면 즉 응당 태어난 사람이 청수(淸秀)하고, 수려한 목(秀木)에 이르면 과명(科名)이 스스로 드러난다. 그리고 다시 뒤로 물러나 화개성(蓋星)에 이르니 지위가 삼공(三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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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연재]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88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88회 7) 금화(金火)의 조화에 화(火)가 강하고 수토(水土)가 없어 귀(貴)하고 수(秀)하나 온화(瘟火)와 재화(災火)가 자주나는 터 【1】 조산의 금성에서 작은 금성(金星)이 락(落)하 부(父)가 되고, 금(金)이 변(變)하여 화(火)가 되니 생(生)이 된다.【2】 그러나 거듭 강한 화성으로 앞으로 나아가 금성(金星)의 터를 만드니 강한 화(火)에 작은 금(金)이 상(傷)하게 된다. ☞ 터에 강한 화가 있고 금(金)이 있으면 어찌 멸(滅)하지 않겠는가? ☞ 만약 사나운 무리의 화(火)가 밤낮으로 불사르면, 훌륭한 공인이 거처 할 곳이 아니며, 오직 녹아 없어질 뿐이다. ☞ 귀(貴)하고 수(秀)하나 온화(瘟火)와 재화(災火)가 자주 나타나는 터가 된다. ☞ 이것이 흉(凶)한 까닭이다. 만약 중간에 화(火)가 머무를 수 있는 토(土)가 있고 금(金)을 생(生)하는 수(水)가 있으면 녹귀(祿貴)가 있는 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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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연재]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58회 ...밀양 어변당(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58회 ...밀양 어변당 어변당은 밀양시 무안면 연상리에 있다. 조선전기의 무신 박곤이 지었다고 하는데, 연못과의 조화가 아름답다. 어변당 앞에는 장군이 만들었다는 적용지라는 연못이 있는데, 그곳에 물고기를 길러 부모를 효도했고 이에 물고기가 그 효성에 감동해 용이 되어 승천해서 건물 이름이 '어변당(魚變堂)'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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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연재]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87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87회 6) 금수상간(金水相間)이나 수(水)가 강하고 수토(水土)가 없어 이향(離鄕)후 귀(貴)가 나오는 터 【1】 조산의 금(金)이 낙(落)하고 변(變)하여 수(水)가 되어 생(生)이 된다. 【2】 그러나 강한 수(水)가 굴곡(屈曲)하여 넘쳐흘러 그치지 않는다. ☞ 이 터는 수(水)가 강하고 금(金)이 약하니 반드시 중간에 목(木)을 얻고 토(土)를 얻어야 바야흐로 조화(造化)가 된다. ☞ 순수(純水)는 뜨고 넘치니(泛濫) 역시 흉해(凶害)가 있다. ☞ 반드시 사는 사람이 고향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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