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명리/관상/주역 뉴스목록
-
[카드뉴스] 주암선생 문화탐방 43회 ... 한승수 부모 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43회 ... 한승수 부모 묘 [한국풍수신문] 대한민국 제39대 국무총리 한승수(韓昇洙) 출생지 :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 박사마을)[1] 본관 청주 한씨 몽개공파 호 춘강(春崗)·지암(志岩) 박정희의 처조카 사위로, 김진재는 사돈 지간이다. 육영수의 언니인 육인순의 둘째사위로서 장덕진 전 농수산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바로 손아랫동서이다. 그리고 김세연 전 국회의원의 장인이므로 김세연의 아버지인 고 김진재 전 국회의원과는 사돈 지간이다. 1936년 12월 28일 강원도 춘천군(現 춘천시) 서면 방동리 박사마을에서 아버지 한석린(韓錫麟, 1910. 8. 28 ~ 1995. 8. 17)과 어머니 진천 송씨(鎭川 宋氏, 1910. 11. 6 ~ 1959. 9. 13)사이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55년 춘천고등학교(27회), 1960년 연세대학교 졸업. 1968년 7월 영국 요크 대학교 대학원(University of York)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 등을 각각 취득했다. 1971~1988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 교수 역임. 제13대 15대 국회의원 당선. . 1994년 12~1995년 12월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 2008.2.9~2009.9. 28 제39대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2010년 5월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이사회 초대 의장에 내정. 2022년 10월 20일 유엔 총회의장협의회 의장에 선출되었다. ● 풍수적 고찰. 한승수 부모 묘는 뒷재봉(501.4m)에서 출맥한 용이 기복굴곡을 하여 을진(乙辰)의 동남으로 남진하여 다시 병오(丙午)룡으로 입수하여 좌정하였다. 당판(當坂)은 튼실하고 취기(聚氣)도 잘된 곳이다. 안산은 거리는 좀 멀지만 일자문성으로 후부 해 보여 재혈이 제대로 되면 군왕지로도 볼 수 있는 곳이다. 좌향(坐向)은 임좌병향(壬坐丙向.).병오(丙午) 분금이다. 저ㅏ수(左水)가 우(右)로 흘러 정미방(丁未方)으로 나가니 차고소수자왕향(借庫消水自旺向)이다. 이는 시(詩)의 유유쇠방가거래(유유쇠방가거래-쇠방으로 물이 나가도 되고 들어와도 좋다.)에 합당하고.발부발귀하고 오래 살고 인정(人丁)이 왕한다.. 봉분 후미가 허물어지고 있는데 속히 사초를 하여 설기가 안되게끔 하기를 고대해보네요.
-
[카드뉴스]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3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3회 2. 화성(火星) 2) 화(火)의 성신(星辰)이 삼태(三台)가 되고 입혈(入穴)하여 귀(貴)가 나타나는 터 조산의 강한 화성에서 구가 락(落)하였다. 이것은 화(火)의 기운이 무더워 생긴 수(水)이지 화(火)를 극(剋)하는 수(水)가 아니다. 그리고 화를 황성하게 하는 발화수(發火水)가 된다. 그리고 다시 수(水)아래 또 작은 화성(火星)이 천(穿)하고 , 목으로 변하여 삼태(三台)를 이루니 화(火)가 두텁고 목(木)을 얻으니 녹(祿)의 기운이 매우 왕성하다. 터에 이르러 화(火)의 성신(星辰)이 일어나고 앞으로 나아가 화개삼태(華蓋三台)가 되니 그 귀(貴)의 나타남은 마땅한 터가 된다.
-
[카드뉴스]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41회 ... 안동김씨 영의정 김자점의 조부 김억령의 묘(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41회 ... 안동김씨 영의정 김자점의 조부 김억령의 묘 [한국풍수신문] 김억령의 묘는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에 있다. 본인은 충청도 관찰사를 지냈고 손자가 그 유명한 영의정 김자점이다. 김자점이 역모죄로 몰려 죽었으므로 집안이 쑥대밭이 되는건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조부의 산소가 남아있어 답사할수 있었다. 김자점의 손자인 김세룡은 효명옹주와 결혼하여 부마가 되었으나 역모죄에 연루되어 흔적도 찾을 수 없다. 김자점의 어머니와 부인, 며느리, 딸등은 모두 노비로 전락하여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으나, 효명옹주는 왕손이라 서인으로 강등되고 유배되는 정도에 머물렀다. 그 또한 가혹하기는 마찬가지다. 역모죄와 같은 무서운 죄명은 풍수적인 이유로 접근하기 보다는 정치적인 사건으로 접근하는게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역모를 했다기 보다는 왕과 정치세력간의 복잡한 정치논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
[카드뉴스]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2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2회 2. 화성(火星) 1) 목화통명(木火通明)으로 속발(速發) 속달(速達)하고 귀(貴)가 드러나는 터 조산의 화(火)가 낙(落)하여 작은 화성이 되고 목(木)을 얻어 화(火)가 발(發)하니 화(火)의 녹(綠0기운이 강하다. 만약 목(木)이 없이 화(火)가 발(發)한다면 즉 화(火)는 장차 멸(滅)한다. 궁간에 화성의 화개삼태와 토성의 삼태봉을 얻으니 마땅히 공상(公相)의 지위가 응(應)함을 주관한다. 또한 오행(五行)의 조화로 논(論)하면 목(木)이 화(火)를 생(生)하고 화(火)가 또 토(土)를 생(生)하다. 따라서 화(火)는 토(土)를 생하고 토(土) 역시 화(火)가 머물어 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火)가 전(傳)하는 바는 녹(祿)이 왕(旺)하고 관(官)이 나타나는 땅이다. 그러므로 명당경(明堂經)에 토(土)는 능히 화(火)를 극(剋)하나 역시 화(火)를 생(生)한다고 하였다.
-
[카드뉴스] 주암선생 문화탐방 42회 ... 죽서루(竹西樓)(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42회 ... 죽서루(竹西樓) [한국풍수신문] 죽서루(竹西樓)는 삼척시의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정면 7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로 세워져 있는데,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가 창건하였고, 1403년(태종 3) 삼척부사 김효손(金孝孫)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누각에는 이이(李珥)를 비롯한 여러 명사들의 시가 붙여져 있는데, ‘關東第一樓(관동제일루)’라는 대액(大額)은 숙종 때의 부사 이성조(李聖肇)가 건 것이다. 현재의 크기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장방형 평면을 이루고 있지만, 본래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좌우 각 1칸에 놓인 공포(栱包)의 모습이 다르고, 또 내부 천장에 당초 측면 밖으로 나와 있던 도리의 뺄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는 기둥 윗몸에서 소첨차(小檐遮)를 보의 방향으로 놓고, 이 위에 대접받침을 놓아 초제공에 놓은 첨차를 받치고, 이 첨차는 외이출목도리(外二出目道里)의 장여를 받치고 있는 주심포식(柱心包式)의 건축이지만, 각 부재들은 오히려 다포식의 모습을 더 많이 지니고 있다. 가구(架構)는 7량(七樑)으로 앞뒤 평주(平柱) 위에 대들보를 걸고, 이 위에 첨차와 소로[小累]로 싸여진 포작식(包作式)의 동자기둥을 세워 종량(宗樑)을 받치고, 이 종량 위에 초각된 판형(板形)과 대공(臺工)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특히, 이 누각에서 주목되는 것은 기단(基壇)과 초석이 없이 두리기둥 밑면을 그렝이질하여 자연암반 위에 직접 세운 것이다. 누각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연등천장[椽背天障]이며, 우물마루바닥 밖으로는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두르고, 기둥 사이는 벽체나 창호 없이 모두 개방하였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0] ● 풍수적 고찰 죽서루(竹西樓)는 예로부터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누각 동쪽 대나무 숲 너머에 ‘죽장사(竹藏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죽장사 서쪽에 있는 누각'이라 하여 '죽서루(竹西樓)'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죽서루는 현존하는 관동팔경의 누각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보물 제213호로 지정되어 있다. 누각(樓閣 )은 선비나 명사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음주가무(飮酒歌舞)를 하기 위해, 산이나 언덕, 물가 등의 풍광명미(風光明媚)한 곳에 높이 지은 다락집이기에 좌향에는 크게 구애를 받지 않는다. 물가에서는 주로 물을 바라보거나 물을 끼고 도는 곳에 짓는데 죽서루도 예외는 아니어서 오십천(五十川)에서 가장 풍광이 뛰어난 곳으로 오십천의 계곡수를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정면 7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로 세워져 있다. 오십천(五十川)은 태백시의 백병산(白屛山.1259m)에서 발원하여 유역면적이 좁은 편이라 곡류가 심하여 동해로 흘러가기까지 50번가량 꺾여야 한다고 해서 오십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한다. 죽서루에서 눈여겨봐야 할것은 덤벙주초다. 기둥의 받침돌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자연석 위에다 기둥을 맞춰서 그대로 건축했다는 점이 풍수적으로 볼 때 자연을 사랑하는 면이 돋보인다. 정자나 누각의 입지 조건은 어디가 좋은가? ㄱ.주변 지형지세와 어울려야 좋다. ㄴ.유서(由緖)깊은 곳이면 좋다. ㄷ.산수가 어우러지는 곳이 좋다. ㄹ.지기(地氣)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ㅁ.풍광이 좋아야 한다. ㅂ고산준령(高山峻嶺)은 피하는 게 좋다. ㅅ.물이 금성체로 흐르면 좋다. ㅇ.탁수(濁水)가 아닌 청수(淸水)가 좋다. ㅈ.물이 좌수도우(左水到右) 하면 좋다. ㅊ.물이 장대하면 좋다. ㅌ.물 흐름이 완만하면 좋다. ㅍ.수심은 너무 깊지도 너무 얕지도 않아야 좋다. ㅎ.바닥은 늪이 아닌 자갈이나 암반이 좋다. 0.너무 위험한 절벽이 아니어야 좋다. 0.흉석위나 흉석이 보이는 곳은 피하는 게 좋다. PS ●성혈에 대한 설명 용문바위 위에 있는 성혈(性穴). 성혈은 선사 시대에 풍요, 생산, 다산을 상징. 칠월칠석 자정에 아녀자들이 성혈터에 찾아가서 일곱 구멍에 좁쌀을 담아놓고 치성을 드린 다음 그 좁쌀을 한지에 싸서 치마폭에 감추어 가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었다.
-
[카드뉴스]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40회 ...남원 몽심재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40회 ...남원 몽심재 [한국풍수신문] 몽심재는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에 있다. 조선후기 상류층 주택의 전형이라 평가받는데 무엇보다도 풍수에 바탕을 두고 입지를 선정하였다는 점이 이 주택의 특징이다.
-
[카드뉴스]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1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1회 11) 수(水) 토(土) 목(木)의 조화로 부귀쌍전의 터(富貴雙全格) 【1】 조종(祖宗)과 부모(父母)는 여섯 개의 수(六水)로 생왕(生旺)하다. 【2】 그리고 그 아래에 후덕(厚)한 토(土) 2개가 강한 수(水)를 막고 다시 앞으로 나가니 더욱 길하다. (난수토: 欄水土) 【3】 토(土)아래의 목(木)은 토(土) 사이에 소통(疏通)하여 부귀(富貴)를 누린다. 【4】 또한 터에 이르러 목(木) 사이에 어병토가 있고 목(木)으로 변하여 토(土)로 전(傳)하여 입혈(入穴)하니 더욱 길(吉)하고 부귀쌍전격 (富貴雙全格)이다. ☞ 수(水)는 수려(秀麗)하고 ☞ 토(土)는 후부(厚富)하니 ☞ 목(木)은 부귀쌍전(富貴)으로 부(富)로 인한 귀(貴)가 나온다. 이러한 터는 완전히 아름다운 격(格)이다. 앞의 수가 강하고 토가 약한 터와 차이가 있다.
-
[카드뉴스] 박정해 교수 풍수이야기 39회 ...아산장씨 시조 묘와 장영실의 단(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 풍수이야기 39회 ...아산장씨 시조 묘와 장영실의 단 [한국풍수신문] 아산장씨 시조묘와 장영실의 단은 충남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에 있다. 관노의 신분에서 조선 최고의 과학자로 극적인 삶을 살다간 장영실의 묘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시조의 묘소 옆에 단을 조성하여 장영실을 기리고 있다.
-
[카드뉴스]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38회...지봉유설의 저자 전주이씨 이조판서 이수광의 묘(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38회...지봉유설의 저자 전주이씨 이조판서 이수광의 묘 [한국풍수신문] 이수광의 묘는 양주시 장흥면에 있다. 왕족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니 한마디로 금수저 출신이다. 아버지도 이조판사를 지냈고 본인도 이조판서를 지냈다. 아들은 영의정을 지낸 이성구이다. 잘나가는 집안이다. 하지만 묘소에서는 특별함을 찾을 수는 없다.
-
[카드뉴스]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0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0회 10) 수성(水星)이 강하고 토(土)가 약해 탁(濁)하여 탐한지인(貪汗之人)이 나오는 터 【1】 조산의 강한 수성(水星)에서 작은 토(土)가 낙(落)하고, 【2】 또 강한 수성에서 토(土)가 천(穿)하여 앞으로 나아가, 【3】 3개의 수(水)로 강한 수성의 터를 이뤘다. ☞ 본래 수토(水土)는 서로 마땅하나 이처럼 강한 수는 흙을 쓸어내려 흙탕물이 되어 탁해진다. 만약 터에 이르러 토성이 있으면 쓸 수 있는 터가 된다. ☞ 그러므로 수(水)는 수려하여 문장(文章)의 선비가 나옴을 주관하지만 토(土)는 무너져 탁(濁)하니 재물을 탐하는 탐한지인(貪汗之人)이 나온다. ☞ 수(水)가 토(土)로 탁(濁)하다고 한것은 오직 제 오 육 칠 절(五六七節)을 논(論)한 것이다. 당연히 오 육대(五六代) 자손(子孫)이 탐(貪)과 탁(濁)의 응함이 있다. 이처럼 명당경(明堂經)에서 발응은 터에서 하나의 세(一世)는 하나의 절(一節)에서 응(應)하며 뒤로 물러나면서 그것을 취한다는 것이지, 하나의 절(一節)의 흉(凶)이 전부의 용(龍)의 화복(禍福)의 뜻이 아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다만 마땅히 산의 성봉(星峰) 절수(節數)로써 논(論)해야 한다.
-
[카드뉴스]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9회[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9회 9) 수(水)가 성(盛)하고 금(金)이 약(弱)하여 무직(武職)으로 빈궁(貧窮)하나 수려함(秀)은 손(孫)에 있는 터 【1】 수성(水)의 조산(祖)이 일어나 수려(秀)하다. 【2】 그리고 낙(落)하여 금(金)이 되고 또 다시 강한 수(水)로 변(變)하여 도도(淘淘)히 일어나 흐르는 세(勢)이다. 금(金)이 작고 거대(巨大)한 수(水) 가운데 있어 처음에 부진함이 나타난다. 【3】 그러나 터에 이르러 금수상간(金水相間)으로 시간이 지나 자손에게 유리하다. ☞ 일반적으로 금수(金水)는 서로 마땅하다. ☞ 그러나 수(水)가 왕성하고 금(金)이 약(弱)하면 금(金)은 수(水)에 의해 속임(欺) 을 당하고 수(水)의 흐름이 멈추지 않는다. 또한 금(金)이 강한 물에 잠기면 더욱 작아진다. ☞ 이러한 터는 무직(武職)으로 빈궁(貧窮)하고 수려함(秀)은 손(孫) 의 지(枝)에 있다. 즉 처음에 작은 무신(武臣)이 나와 빈곤이 부진(不振)하여 자손(子孫)까지 이어지게 한다. ☞ 그러나 터에 이르러 금수상간(金水相間)으로 반드시 수려(秀)하고 현명 한 사람이 나오니 마땅히 스스로 벼슬과 명망이 세상에 나타난다. ☞ 단지 초년에 부진함이 있다고 이러한 땅을 버리지는 못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모두 금생수(金生水)로 둘은 서로 마땅하다는 것은 알지만 특별히 수(水)가 성(盛) 하면 금(金)이 약(弱)하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므로 중간에 토(土)가 있어 수를 막아 쓸려 내려가는 것을 움켜진 이후에 금(金)을 얻어야 드러내니 세상에 쓰임을 될 수 있는 것이다.
-
[카드뉴스] 박정해 교수 풍수이야기 37회...금천강씨 우의정 강석기의 묘박정해 교수 풍수이야기 37회...금천강씨 우의정 강석기의 묘 [한국풍수신문] 강석기의 묘는 광명시에 있다. 날씨도 춥고 석양이 지는 시간에 찾아 들었다. 위풍당당하게 금천 강씨의 선영은 자리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사유지이니 어떤 경우에도 출입을 금할 것을 공지하고 있었으나, 풍수에 미친 내가 그런 협박에 굴해서 안들어 가 보겠는가? 강석기는 우의정을 지냈고 딸은 소현세자의 비가 되었으며 여러 아들들은 현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적 풍파는 이 집안에도 찾아들었고 소현세자비는 사약을 받고 죽었으며, 아들들은 장살을 당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집안이 멸문지화의 화를 당한 것이다. 이를 모두 풍수적인 이유만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지나친 비약이 아닐 수 없다. 정치와 시대적인 상황은 현실적인 일로서, 풍수만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요인들이 자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억지논리로 궤맞추는 상황은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만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해석이 요구되는 것이 현재 우리풍수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
[카드뉴스]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8회[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8회 8) 수(水)가 왕(旺)하여 풍랑에 떠돌아 이룸이 없는 터 【1】 수성(水星)이 낙(落)하여 평강(平岡)의 수(水)가 되어 되었다. 【2】 그러나 다시 5개의 많은 목(木)이 앞으로 나간다. 목(木)이 2개 3개 면 가능하나 6개로 많으면 수(水)는 목(木)에 의해 막히는 곳이 되어 흐르지 못하니 수(水)의 이로움이 아니다. 【3】 그리고 수성으로 변(變)하고 목(木)으로 전(傳)하여 입혈(入穴)하였다. 비록 변하여 목(木)이 되더라도 목(木)은 생기(生氣)가 없고, 목(木)은 마침내 이루지 못하고 수(水)역시 불리하다. ☞ 그러므로 목(木)은 수(水)는 근원(源)이 있으나 토(土)의 뿌리가 없어 살 수 없다. ☞ 자손(子孫)에 응(應)함은 문(文)이나 궁(窮)하다. ☞ 풍랑에 떠돌아(漂泊)이룸이 없는 터가 된다.
-
[카드뉴스] 주암선생 문화탐방 41회 ...살신성인의 표본 강재구(姜在求 1937,~1965, )주암선생 문화탐방 41회 ...살신성인의 표본 강재구(姜在求 1937,~1965, ) [한국풍수신문] 1937년 7월 26일 경기도 인천부 금곡정(現 인천광역시 동구 금곡동) 54번지에서 태어났다. 인천중학교와 서울고등학교 졸업, 1960년 육군사관학교를 16기생으로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수도사단 및 전후방의 각 부대를 전속, 대위로 진급하였다. 1965년 정부의 월남파병 결정 이후 파병을 자원하여 맹호부대 제1연대 10중대에 배속되었다. 파병되기 전 홍천 부근에서 수류탄 투척훈련을 하던 중 부하의 실수로 수류탄이 중대원 가운데로 떨어지자 몸으로 덮쳐 부하들의 생명을 구하고 사망했다. 장례는 육군장으로 치러졌고, 소령으로 추서되었으며, 육군사관학교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평소 그의 신조는 " 굵고 짧게 살자" 였다고 한다. 배우자 온영순 자녀 강병훈(아들) 사망 1965년 10월 4일 (향년 28세) 순직한 곳ㅡ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성동리 성동천 부근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생도시절 2중대였던 강재구 소령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2중대가를 '재구가'로 만들어 부르고 있다. '재구가'는 '타오르는 횃불'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재구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1.해달같이 눈부신 기백과 정열 끝없이 타오르는 횃불을 보라 동지들을 구하려고 제몸 던졌네 저님은 살아있는 의기의 상징 내 나라 내 겨레 위해서라면재구처럼 이 목숨 아끼잖으리 2.장미같이 향기론 피를 품어서 거룩한 불사신의 이름 새겼네 지축을 흔드는 정의의 외침 너와 나 가슴마다 메아리친다 내 나라 내 겨레 위해서라면 재구처럼 이 목숨 아끼잖으리 풍수적 고찰. 자신의 몸을 던져 부하의 목숨을 살린 강재구 소령. 굵고 짧게 살자.라는 좌우명.에 걸맞게 살신성인의 표본이 된 그의 추모탑이 있는 추모공원은 취기된 곳은 아니지만 맥선에 따라 조성되어 안정감이 있다. 부디 많은 방문객들이 내방하여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빛나는 정신을 되새기고. 살신성의 정신이 길이길이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
[카드뉴스]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7회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7회 [한국풍수신문] 7) 수(水)가 왕(旺)하고 화(火)가 약(弱)하여 온화(瘟火)와 황종(黃腫)이 있는 터 【1】 수성(水星)이 높고 수려(秀)하다. 【2】 낙(落)하여 평강(平岡)이 되니 토(土)도 아니고 목(木)도 아니다. 【3】 평강 아래에 화각(火脚)이 있고 변(變)하여 화성(火星)이 되었으나 위 의 강한 수(水)에 의해 불은 꺼지고 마니 화(火)는 수(水)로 인해 상(傷)을 당하는 흉화(凶禍)가 있다. ☞ 그러므로 이러한 터에서는 반드시 토(土)가 있어 수(水)를 막아야 하고, ☞ 목(木)이 있어 화(火)를 생(生)한 이후에 길한 (吉) 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