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명리/관상/주역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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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6회... 원신(元愼) 장군 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6회... 원신(元愼) 장군 묘. 원신[元愼.1551년 (명종 6)) ~]장군은 자(字) 신재(愼哉). 본관 원주(原州). 거주지 한성([京]). 엄시하(嚴侍下)에서 선조(宣祖) 16년(1583) 계미(癸未) 알성시(謁聖試) 병과(丙科) 20위(46/101)에 합격하였다.통정대부 행 남원도호부사 겸 전라도방어사(通政大夫 行 南原都護府使 兼 全羅道防禦使) 부(父)는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동지의금부사 행 의교랑안기도찰방 (曾 嘉善大夫 戶曹參判 同知義禁府事 行 宜敎郞安奇道察訪) 원영세(元永世.)다. 형(兄) : 원척(元惕) 제(弟) : 원개(元愷) 제(弟) : 원제(元悌) ● 풍수적 고찰. 장구봉(300m)에서 임자(壬子)로 지현굴곡을 하여 다시 경유(庚酉)룡으로 행도하여 간인룡으로 입수하였다. 혈형(穴形)은 장유(長乳)다. 내룡맥과 당판(當坂)로 봐서는 취기(聚氣)가 된 것처럼 보이나 백호사(白虎沙)가 비주(飛走)를 하고 보호를 못 해주니 흘러내리는 과룡(過龍)에 모양새만 취기된 당판처럼 보이는 보백지지(保魄之地)’ 로 봐야 한다. 골과 도로가 반배를 하니 재물 또한 취적이 쉽지 않는 곳이다. 재실은 묘역 아래에 있는데 현대식이다. 좌향(坐向)은 인좌신향(寅坐申向)에 경유파(庚酉破)다. 만약 경파(庚破)라면 양공(楊公. 834~900.唐 국사)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문고소수(절처봉생향)다. 書에 말하는 녹존류진패금어(祿存流盡佩金魚ㅡ녹존방으로 물이 나가면 벼슬을 한다. )라는 말이 이것이다. 이는 부귀하여 복수쌍전하지만 약간이라도 차질이 있으면 패절하니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다만용진혈적. 천간자파구. 백보전란.을 해야만 사용 가능하니 신중을 기해야 하는 수법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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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0회[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0회 천락변전(穿落變傳)의 설과 옥수진경(玉髓眞經) 1) 오성산이 조산으로부터 평평하게 가운데로 뚫고 지나가는 것이 천(穿)이고, 2) 높은 데서 아래로 향하면 성봉이 떨어지면 낙(落)이 되며, 3) 중간에 진행하다 다른 성본으로 변하여 나오는 것을 변(變)이라 한다4) 뚫고나오는 천(穿)이나 떨어져 락(落)하여 변(變)하여 앞으로 나아가거나 터로 들어가면 전(傳)이 된다. 그러므로 조산으로부터 먼저 천(穿)하거나 락(落)할 수 도 있고 이후에 전하여 마지막으로 전하여 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오성의 변화는 먼저 조종산이 조(祖)가 되며, 조산 아래가 부모(父母)가 되고,부모산 아래가 아들(子)이 되고, 아들 아래가 손자(孫)가 되며, 계속 이어져 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출신(出身)과 같은 것이다. 마치 조부가 높은 관직이고, 부모가 높은 관직이며, 자식이 높은 관직이면 앞으로 태어날 손자 역시 부귀가 있음을 예측 할 수 있듯이 조산으로부터 내려오는 기운을 예측하면 터의 길흉(吉凶)을 예측 할 수 있으니 이것이 옥수진경을 응용한 터를 보는 방법이다. 1) 내룡(來龍)이 서로 상생(相生)하고 상극(相剋)하지 않으면 선(善)이 되고, 2) 만약 터로부터 튀로 후룡(後龍)을 보아 자식이 부모를 극하면 마땅하나, 부모가 자식을 긍하면 마땅하지 않다. 3) 대개 내가 극(剋)하는 것은 재물(財)가 되고, 나를 극(剋)하는 것은 귀(鬼)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歌)에 이르길, 천락(穿落)과 전변(傳變)은 최고로 정미(精微)하니,이 이론(論)은 오직 혈에 오를 때(入穴時)에 보아야 한다고 했다. 길흉(吉凶)의 나눔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자손(子孫)이 현명하고 불초(不肖)함은 모두 하늘(天)에 있다. 그러나 조종(祖宗) 부모(父母)가 이미 현덕(顯德)하면 즉 화(和)와 순(順)이 모이는 바가 되니, 기맥(氣脈)이 있는 곳에서 잉(孕)하고 반드시 아들과 형제가 드러난다. 이것 역시 하늘의 이치가 항상 그러하기 때문이다.변전(變轉)이 있으면, 이것이 기맥(氣脈)이니 자손(子孫)이 형성(形成)된다. 그러므로 골절(骨節)의 길흉(吉凶)이 나누어 지는 것은 , 1) 진실로 앞의 사람이(前人) 길덕(吉德)이 있으나 자손(子孫)이 불초(不肖)가 있는 것은, 모든 자손(子孫)가운데 태식(胎息)에서 편탁(偏濁)한 기(氣)를 받은 것이 일인(一人)에 불과하니, 모든 자손 가운데 이와 같이 전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2) 그리고 전인(前人)이 잘못된 흉(凶)을 쌓았으나, 자손(子孫)중에 현자(賢)가 있는 것은, 이것은 반드시 모든 아들 중에 우연히 일인(一人)이 있는 것이고, 또한 전인(前人)이 행한 바가 역시 아직 빠르지 않아 이르지 않아 아름다울 뿐이다. 3) 그러므로 반드시 이러한 인생(人生)을 기다려 자손이 나오면, 이후에 가풍(家風)이 바뀌니 더욱 덕(德)을 쌓아야 한다. 또한 모든 술가(諸家)의 태식(胎息) 역시 역시 두 가지의 설이 있는데, 하나는 정혈(定穴) 할 때 논하는 태혈(胎穴)과 식혈(息穴)을 한다. 또 하나는 옛날 남자(男子)의 어부인(御婦人)이 이미 잉태(孕胎)를 받으면 부인은 다시 진어(進御)하지 않고 반드시 별거(別居)하며 휴식(休息)한다. 그리고 임신한 산실을 정한다. 그래서 아들을 태(胎)에 가진 부인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병(病)을 받지 않는다. 이것이 태전(胎前) 산후(産後)로 반드시 쉬면서 기르는(息養)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식(息)이다. 세상에서 소위 자식(子息)이라는 것은 태식(胎息)을 말 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음양(陰陽)이 화창(和暢)하고, 두 기(二氣)가 만나 합(合)하고, 혈정(血精)이 교구(交構)하면 남녀(男女)를 만든다. 정(精:男)이 혈(血:女)보다 먼저 다달아 양(陽)이 음(陰)을 이기면 남자(男子)가 되고, 혈(血:女)이 정(精:男)보다 먼저 다달아 음(陰)이 양(陽)을 이기면 여자(女子)가 된다.정(精)에서는 남자가 나오고, 혈(血)에서는 여자가 나온다. 바로 남자의 맥(男脈)이 먼저이면 즉 정(精)이 먼저 도달하여 혈(血)이 정(精)을 감싸니 남자가 된다. 여자의 맥(男脈)이 먼저이면 즉 혈(血)이 먼저 움직이니 정(精)이 혈(血)을 감싸 여자가 된다. 그러므로 건도성남(乾道成男), 곤도성녀(坤道成女)라 하였으니 천지 지리 역시 그러하다. 오성(五星)의 성(星)은 각기 음양(陰陽)으로 나눈다. 음양(陰陽)이 융회(融會)하고 화기(和氣)가 유창(流暢)하면 즉 변(變)하는 바는 반드시 길(吉)하고, 전(傳)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양(陰陽)이 이지러져 만나면 오성(五星)이 서로 상배(相配)하지 못하니 즉 이지러진 기(氣)의 변(變)하는 바가 반드시 흉(凶)이니 전(傳)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오성(五星)으로 용(龍)을 정(定)하면 즉 상생상극(相生相剋)과 화복(禍福)을 만에 하나도 잃지 않는다. 또 일반 술가(術家)의 용(龍)과 같지 않으니 억지로 구성(九星)으로 궁(宮)을 나누어 논할 필요가 없다. 천하에 어찌 두 가지 이치가 있겠는가? 이미 오행(五行)의 학문이 전하니 즉 잡스러운 다른 학문이 필요 없다. 만약 후인(後人)이 바야흐로 이러한 이름을 말한다면 즉 사지(史志)에 전(傳)하는 것을 살펴보아도 역시 이러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경(經)과 사료(史)에서 있는 것과 비교하여 칠성(七星)의 성(星)으로 선택한 것이다. 생기(生氣), 천의(天衣), 절체(絶體), 유혼(遊魂), 오귀(五鬼), 복덕(福德), 절명(絶命)등이니 구성(九星)은 세상을 기만하고 풍속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미(子微)는 취하지 않았다. 대개 길흉(吉凶)의 증험이 응(應)하는 것과, 오행(五行)이 합(合)하는 바는, 모두 섞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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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박정해 교수 풍수이야기 31회 ... 남양홍씨 좌의정 홍달손의 묘[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 풍수이야기 31회 ... 남양홍씨 좌의정 홍달손의 묘 홍달손의 묘는 의정부시 있다. 평소에는 입구의 철문이 잠겨있어 접근이 어려운데 운좋게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 볼 수 있었다. 홍달손은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쫓고 권력을 쟁취하는 계유정난의 중심인물이다. 한마디로 성공한 쿠데타가 되어 출세가도를 달린것이다. 많은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본인의 출세길이 열린만큼 삶이 아름답기만 하였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묘를 통해 유추할수 있다는 당돌한 생각을 하면서 묘를 감평해 보았다. 특별함이 없는 모습이지만 안타까운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완벽하였다면 세상의 공평함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하는 두려운 맘이 부족한 부분을 파고든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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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35회 ... 최규하 전 대통령 부모 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35회 ... 최규하 전 대통령 부모 묘. ● 최규하(崔圭夏, 1919년 7월 16일~2006년 10월 22일)는 대한민국의 제10대 대통령이다. 제4공화국의 2번째 대통령이며, 대한민국 최초의 국무총리 출신 대통령이었다.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호는 현석(玄石)이다. 1945년부터 경성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미 군정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발탁된 이후, 정부수립 후 농림부에서 근무하다가 외무부로 발탁되면서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1967년에 외무부 장관에 발탁됐다. 1976년 3월 13일 국회의 동의를 거쳐 국무총리가 됐으며, 10.26 사건으로 대통령 박정희가 사망하자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1979년 10월 27일부터 1979년 12월 6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1979년 12월 6일부터 1980년 8월 16일까지 군부 실권하의 대통령으로 재임하였다.아버지 : 최양오 (崔養吾, 1897.4.21~ 1973.8.26)어머니 : 이응선 (李應善, 1899.10.11 ~ 1983.5.2) ● 풍수적 고찰. 봉산(232.4m)에서 출맥한 용은 기복굴곡으로 북동진하여 을진(乙辰) 정미(丁未)로 행도하여 갑묘(甲卯).간인룡(艮寅龍)으로 횡룡(橫龍)으로 입수하였다. 산진처에 자리를 잡은 당판은 크지 않지만 아담하면서도 취기가 제대로 된 옹골찬 멋진 명당국이다. 다만 백호(白虎)가 낮게 호위하여 백호방이 허약한 게 아쉽다. 청룡도 낮게 부복(俯伏)한 자세라 용호로 보아 겸손의 미덕을 추구하는 자손 들이겠는데 묘역 관리에도 좀 더 신경을 쓰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좌향(坐向)은 인좌신향(寅坐申向)에 경유파(庚酉破)로 양공(楊公. 834~900.唐나라 국사)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문고소수. 이는 서(書)에 말하는 녹존류진패금(祿存流盡佩金魚ㅡ녹존방으로 물이 나가면 벼슬을 한다)라는 말이 곧 이것이다. 부귀하여 복수쌍전하지만 약간이라도 차질이 있으면 패절하니 함부로 사용할 수 없으며 용진혈적.천간자파구.백보전란.을 해야만 사용 가능하니 신중을 기해야 하는 수법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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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48회[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48회 15. 생금토(生金土): 금을 생(生)하는 토(土) 생금토(生金土) 토성(土星)이 금(金)을 생(生)하면 청수(淸秀)가 가운데 모이고 무관의 기운이 문관으로 바뀌고 자연히 모두가 부(富)하다. 토(土)는 본래 부(富)가 된다. 금(金)은 본래 무(武)가 되고 마침내 하나로 잡아 논(論)하는 것이 불가(不可)하다. 금(金)은 비록 무성(武星)이 되나 가운데 수기(秀氣)를 띠고 또 천성(天星)으로 그것을 말하면 금(金)은 태백(太白)이다. 병(兵)을 주관하니 즉 무성(武星)을 의심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일명(一名) 장경(長庚:금성, 태백성)으로 태양(太陽)의 아름답게 번쩍이는 빛이 이어지고, 수(水)와 함께 모두 귀비(貴妃)의 상(象)이 된다. 당인(唐人)이 잉태(孕)하여 이태백(李太白)을 낳고 이에 문장(文章)의 머무름(宿)이 되었다. 그러므로 토(土)가 이미 출금(出金)하면 진실로 문무(文武)의 자질을 같이 겸비한 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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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 풍수이야기 30회...홍명원의 묘박정해 교수 풍수이야기 30회...홍명원의 묘 [한국풍수신문] 홍명원의 묘는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 산78-20에 있다. 계단을 한참 오른후에야 만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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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4회... 이기(李墍.) 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4회... 이기(李墍.) 묘 이기[李墍.1522년(중종 17) ~ 1600년(선조 33)]는 대사헌, 지돈녕부사, 예조판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한산(韓山.지금의 충청남도 서천))이다. 자는 가의(可依). 호는 송와(松窩). 장윤(長潤)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질(秩)이다. 아버지는 지란(之蘭)이며, 어머니는 원선(元璿)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시서에 능했다. 1555년(명종 10)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7년 수찬(修撰)을 역임한 뒤 전한(典翰)이 되어 편수관으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화군 보(順和君0x9A45)를 보필하면서 강원도에 내려가 의병을 모집하였다. 지중추부사·대사헌·지돈녕부사·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죽은 뒤 1603년에 2품 이상 재신을 청백리로 뽑는데 녹선되었고, 그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그가 대사헌으로 있을 때 종로 네거리를 지나는데 말이 너무 말라 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는 개의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훗날 말이 피곤해 땅에 주저앉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대사헌의 말’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그는 이처럼 청빈하여 한사(寒士)나 다름없이 직책을 맡아보았다. 시호는 장정(莊貞)이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풍수적 고찰 월림산(200m)에서 발조하여 庚酉龍로 기복굴곡으로 서진하여 중조봉을 이룬 후 丙午로 방향을 틀어 乾亥龍으로 입수를 하였다 국세는 백호가 안아주지 못하고 약간 비주하는 모양새이기는 하나 대체적으로 편안하며 안정적이다. 당판 크고 옹골차다.묘역을 잡다한 돌들로 산민하게 쌓아 놓았는데 생각보다 높지는 않아 다행이고 짐승들의 침입을 막는 비보(裨補)로 보는 것이 타당할듯하다. 주산은 금성체로 후부(後富)한데 묘 좌측으로 근자에 들어선 고압선이 지나고 있어 찾아오는 후손들에 피해가 갈까 두렵다. 좌향(坐向)은 건좌손향(乾坐巽向)에 파구(破口)는 병오파(丙午破)로 문고소수(文庫消水)이다 문고소수(文庫消水)는 양공(楊公)의 진신수법으로 書에서 녹존유진패금어( 祿存有盡佩金魚)라는 말이 이것이다. 즉 부귀(富貴)하여 복수쌍전(福壽雙全)하지만 역간이라도 차질이 있으면 패절(敗絶)하니 가벼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으며 용진혈적(龍眞穴的)해야 무방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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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47회[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47회 14. 가금토(架金土): 토성의 머리 위에 걸려있는 금성 가금토(架金土) 토성(土星)의 산 위에 작은 금성(金星)이 있다. 토(土)가 금을 쌓으면(堆金) 문무(文武)가 서로 있고 천창만상(千創萬廂) 무리(旅)가 숲과 같다. 가금토(架金土)는 출토금(出土金)과 서로 같은 류(類)인데 경중(輕重)이 다르다. 출토금(出土金)은 금(金)으로 주(主)를 삼으니 즉 금(金)이 토중(土中)에 묻혀(埋) 탁(濁)이 많고 청(淸)이 적은 것이다. 가금토(架金土)는 토(土)를 주(主)로 삼으니 금(金)이 토중(土中)에서 나와 탁(濁)이 작고 청(淸)이 많다. 그러므로 가금토(架金土)가 출토금(出土金)보다 낫다. 그러나 역시 부귀(富貴)는 서로 같다. 또 마치 정좌금(定座金)과 화살토(火煞土)역시 비슷한 종류(類)인데 화살토(火煞土)는 토성아래 화요(火曜)가 나온 것이고, 정좌금((定座金)은 즉 금성아래 화요가 나온 것이다. 첨각(尖脚)은 비록 같으나 취용(取用)은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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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 풍수이야기 29회 ...박팽년의 조부 박안생의 묘박정해 교수 풍수이야기 29회 ...박팽년의 조부 박안생의 묘 [한국풍수신문] 박안생의 묘는 세종시 전동면 송정리 산4번지에 있다. 오랫만에 다시 찾았는데, 안타까운 맘이 크다. 풍수 이론에 녹존성의 주산에는 소원봉이 있어야 혈을 맺고 겸차혈을 맺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박안생의 묘는 녹존성 주산에 분명히 소원봉이 있는데 그곳을 피해 작은 맥에 의지해 묘를 조성하였다. 이것 때문에 박팽년의 집안에 불행이 닥쳤다고 해석할 수 있으나, 언제나 처럼 풍수적인 이유만으로 모든것을 해석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않다. 일정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불행이 조부묘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수용하기 어렵다. 이론에 부합하는 혈처를 정하고 묘를 조성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안타까운 맘이 크다.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이론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길흉을 논하고 덧붙혀 발복론을 제시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본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지해 억지스런 괴변을 늘어 놓는 경우가 있는데, 안타까운 맘이 든다. 그런 차원에서 박안생의 묘는 풍수가의 실수가 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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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철 인터뷰, 옥수진경 번역 출간 관광경영학 박사 웰니스문화관광학과 장원기 교수(옥수진경 번역 출간 관광경영학박사 장원기 교수) 지철 인터뷰, 옥수진경 번역 출간 관광경영학 박사 웰니스문화관광학과 장원기 교수 안녕하십니까? 한국풍수신문의 지철 윤명선 입니다. 장원기 교수님 바쁘신 시간 내주셔서 김사드립니다. [한국풍수신문] 풍수지리의 역사는 약 5천여년에 중국 주나라때 시작으로 BC200년 전 한나라때 청오경과 장자방이 지은 적정경에서 출발하여 곽박이 지은 금낭경을 통해 일행선사가 오성(五星)의 이론이 완성 되고 송대 장자미에 의해 쓰여진 옥수경(玉髓經)에 주자의 친구 채원정이 해설을 더하여 3,500여 페이지의 옥수진경 완성 이 방대한 옥수진경을 5년간 번역한 장원기 교수를 만났다. ◎ 다음은 장원기 교수와 일문일답... ◎ 옥수진경4 옥수비전 출간 축하드립니다. 번역 기간과 내용을 얘기해 주시죠? 풍수지리의 역사는 약 5천여년이 됩니다. 중국의 주나라때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에서는 도성(都城) ·궁전을 건설할때 풍수지리를 이용했으며, 본격적으로 경전(經典)의 면모를 갖춘것은 BC200년 전 한나라때 청오경과 장자방이 지은 적정경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동진시대 곽박이 지은 금낭경을 기본으로 당대 일행선사에 의해 오성(五星)의 이론으로 완성됩니다. 이러한 풍수경전을 기본으로 송대 장자미에 의해 쓰여진 옥수경(玉髓經)에주자의 친구 채원정(蔡元定)이 해설을 더하여 3,500여페이지의 옥수진경(玉髓眞經)이 완성됩니다. 이러한 방대한 옥수진경의 경전을 5년간에 걸쳐 번역을 완성하고 2018년 옥수진경(1. 용론), 옥수진경(2. 사격론), 옥수진경(3. 형국론) 을 출간하고 마지막으로 이번에 옥수비전을 출간하였습니다. 이처럼 늦게 출간한 이유는 마지막 옥수비전은 그 내용이 심오하여 잘못 술수로 인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5년 후에 출간 하였습니다. 일반 풍수지리에서는 몇 평 않되는 터를 가지고 명당을 논하지만 옥수진경에서는 약 460여리가 되는 즉 남한의 크기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터를 논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본래 풍수지리의 이론입니다. 이러한 풍수지리이론은 관광지 해설이나 현대의 마을스토리텔링에 적합한 이론이 됩니다. ◎ 웰니스문화관광학과 소개해주시죠? 저는 관광을 전공하면서 풍수지리을 함께 30여년 연구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제 원관디지털대학교 웰니스관광학과에서 풍수지리를 활용하여 웰니스관광해서, 웰니스 관광 콘텐츠개발에 접목하여 강의 하고 있습니다. 관광지의 에드워드렐프는 관광지의 정체성을 " 물리지리적 자연환경하에서, 인간들이 만든 문화에대하여, 의미를 부여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물리지리적 자연환경은 풍수지리적으로만 해설이 가능합니다. 특히 웰니스적 관광지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원광디지털대학교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웰니스관광학과가 신설된것입이다. 또한 2학기때 부터는 대한민국 최초 대학교 관광과에 "관광풍수지리"과목을 신설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관광지는 풍수지리적 여건 하에 조성되었습니다. 그러나 해설에는 풍수지리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관광지와 마을의 정체성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마 "관광풍수지리"는 향후 관광에서 융복합하여야 할 과목이 되고 이러한 과목이 신설되고 이를 활용한 마을 스토리텔링, 관광지해서, 콘텐츠개발을 하는곳이 원관디지털대학교 "웰니스스관광학과”가 선도하리라고 봅니다. (좌측 한국풍수신문 대표 지철 윤명선, 우측 장원기 교수) ◎ 전국 각 지역 마을 유래와 문화를 융합하는 사업을 어떻게 개발하면 좋을까요? 마을의 유래를 알아보는것은 마을이 형성된 배경, 문화 등 정체성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문화는 같은지역에서 유사하지만 산, 물, 공기 등 물리지리적 자연환경이 같은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마을의 정체성이며 차별화 전략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규명하고 해설하는 학문이 풍수지리입니다. 따라서 각 마을이 가지고 있는 물리지리적 자연환경을 스토리텔링하고 콘텐츠를 개발하여 축제와 연계한다면 성공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마을의 산세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인 "봉황포란형"의 마을이라면, 마을에서 고추장, 된장, 발효식품을 개발 알 보양으로 비치하여 " 봉황포란형의 명담마을에서 봉황이 5년동안 품은 된장, 고추장, 발효식품이라 해설하면 더욱 더 설득력이 있을것입니다. 이것이 차별화이고 스토리텔링이 될것입니다. 그리고 각 마을의 대부분이 풍수지리에 의해 불려지지만 그것을 해설 할 수 있는 이론을 몰라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 여러 풍수 책 중 옥수진경의 매력은 어떤가요? 서두에서 말씀드린데로 풍수지리의 몬래 목적은 왕도나 궁궐, 마을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당말 황소의 난으로 경림서고에서 가지고나간 풍수이론을 바탕으로 현재의 풍수지리 이론이 형성 되었습니다. 묘만 잘 써도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는 구빈 양균송의 이론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으로는 우리가 활용해야하는 마을 스토리텔링, 도시스토리텔링, 콘텐츠개발에 활용이 불가능 합니다. 그러나 옥수진경은 묘를 쓰는 음택의 이론도 이야기 하지만 460여리되는 큰 터에서, 마을에서,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풍수 이론을 설명하기 때문에 양균송이 정립한 풍수이론과는 확연히 틀립니다. 특히 우리는 음양 오행 오기의 기운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이 일행선사의 오성론입니다. 음양 구기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조그만 터에서 향법, 수법이라는 법수에 얶메이지 않습니다. 본디 지구의 땅이 먼저 나왔고 인간이 살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본의 풍수이론은 후대 인간이 만든 법수에 자연을 꿰어 맞추려하니 모순이 됩니다. 풍수지리는 내기와 외기, 그리고 세와 형을 가지고 이야기 해야 합니다. 이것이 다른점이라 생각 합니다. ◎ 후학도들에게 한 말씀 주신다면? 물리지리적 자연환경은 다르지만 해설 방법은 하나입니다. 작게는 집, 그리고 마을, 도시, 국가의 차별화를 이야기 하는데있어서는 풍수지리 이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융 복합 하여야 스토리텔링이 되고 콘텐츠개발이 됩니다. 13년전 처음으로 저는 "관광풍수지리”와 "풍수지리를 활용한 스토리텔링개발"을 주장하고 옥수진경을 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관광과에 관광풍수지리과목도 개설 했습니다. 이제부터 새로운 관광풍수학의 학문이 시작되리라 본니다. 저는의 임무는 여기까지 입니다. 이것을 활용하여 발전시키는 것이 후학들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장원기 교수가 얘기 하는 풍수는 "작게는 집, 그리고 마을, 도시 ,국가의 차별화를 통해 물리지리적 자연환경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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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3회... 조엄(趙曮) 해사일기(海槎日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3회... 조엄(趙曮) 해사일기(海槎日記) 조엄[趙曮.1719년(숙종 45년) ~ 1777년(정조 1년)]은 조선후기 공조판서, 이조판서,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명서(明瑞), 호는 영호(永湖). 조중운(趙仲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도보(趙道輔)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조상경(趙商絅)이다. 어머니는 이정태(李廷泰)의 딸이다. 1738년(영조 14) 생원시에 합격, 음보로 내시교관(內侍敎官) · 세자익위사시직(世子翊衛司侍直)을 지내고, 1752년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1763년 통신정사(通信正使)로서 일본에 다녀온 뒤, 대사간 · 한성부우윤, 예조 · 공조의 참판 및 공조판서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770년 평안도관찰사로 파견되어 감영의 오래된 공채(公債) 30여 만냥을 일시에 징수하는 등 적폐(積弊)를 해소하는 수완을 보였다. 그러나 토호세력들의 반발로 탐학했다는 모함을 받아 평안도 위원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아들 조진관(趙鎭寬)의 호소로 죽음을 면하고 김해로 귀양이 옮겨졌으나 실의와 불만 끝에 이듬해 병사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경사(經史)에 밝았을 뿐만 아니라 경륜(經綸)도 뛰어났다. 민생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서 남긴 업적이 적지 않다.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가져오고 그 보장법(保藏法)과 재배법을 아울러 보급, 구황의 재료로 널리 이용되게 했던 점은 후세에 공덕으로 크게 기려지고 있다. 저서로 통신사로서 일본을 내왕하며 견문한 바를 적은 『해사일기(海槎日記)』가 전하고 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풍수적 고찰 고구마를 가져와 구황작물로 자리잡게 한 조엄선생의 묘역은 어떤가? 부길산(150m)에서 행도를 시작한 용(龍)은 정미(丁未)로 기복굴곡(起伏屈曲)을 하여 경유(庚酉)룡으로 힘차게 달려와 잠시 숨고르기를 한 후 낙맥을 하고 과협처를 거쳐 정미(丁未)로 입수를 하였다. 주산은 준수하고 백호는 주인에게 예로써 호위를 하고. 청룡은 주인에게 예를 갖추는 것처럼 보이다가 이내 기념관 쪽으로 달려간다. 안산은 단아한 자태로 주인을 향해 있다. 내룡에 비해 당판은 옹골차지 못한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좌향(坐向)은 축좌미향(丑坐未向). 파구(破口)는 곤파(坤破)다. 이는 양균송 선사의 88향법의 정묘향(正墓向)에 해당된다. 관대룡.우선룡에 좌선수(左水到右-水가 絶방으로 나감) 정미향에 곤신파는 書에 이르길 정곤종시만사상[丁坤終時萬斯箱(정향을 하고 곤방으로 물이 나간다면 큰 부자가 된다는 향이다).] 이는 발부발귀(發富發貴.인정대왕(人丁大旺). 복수쌍전(福壽雙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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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28회...단풍이 물든 부석사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28회...단풍이 물든 부석사 [한국풍수신문] 부석사는 무량수전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풍수적 관점에서 보면 형세풍수의 특징이 잘반영된 사찰이기도 하다. 전통사찰의 입지선정에 풍수가 중요하게 반영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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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46회[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46회 12. 조하회토(竈 下灰土): 부엌 속의 재 같은 토 조하회토(竈 下灰土) 토산(土山) 가운데 화(火)가 태왕(太旺)하여 마치 부엌 속의 재(灰)와 같은 토이다. 이러한 터는 화가 강하여 재산과 가업이 흩어지고 만사가 고르지 못하다. 이러한 터는 기가 마르고 건조하여 용맥이 행(行)하지 못하니 취하여 사용하지 못한다. 13. 간금토(間金土): 금 사이에서 생(生)하는 토(土) 간금토(間金土) 일토(一土) 일금(一金)이 서로 사이에 행(行)하고 있다. 금토상간(金土相間)으로 금을 생(生)하여 빛이나고 문장(文章)이 서로 섞여 있으니 부귀(富貴)가 평온하다. 따라서 금토(金土)의 산은 상극(相剋)이 없고, 토중(土中)에 금(金)을 생(生)하여 생왕(生旺)이 거듭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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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2회 원충갑(元沖甲) 장군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뮨화탐방 32회 원충갑(元沖甲) 장군 [한국풍수신문] 원충갑(1250~1321)은 고려의 무신으로 1250년 중원도(中原道) 원주(현 강원도 원주시)에서 아버지 원민성(元敏成)의 무녀독남, 4대 독자로 태어났다. 지방의 계수관시(界首官試)에 합격하여 향공(鄕貢)이 되었으며, 이어 국자감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고향인 원주의 별초(別抄)에 들어가 무관으로 근무했다.본관은 원주고, 시호는 충숙(忠肅)이다.향공진사(鄕貢進士)로 원주별초(原州別抄)에 있으면서 1291년(충렬왕17) 합단적(哈丹賊)이 치악성을 포위하자,전후 10차에 걸쳐 적을 크게 무찔렀다. 원충갑의 이러한 공로로 원주는 익흥도호부로, 다시 1308년 원주목(原州牧)으로 승격되었고,원주에 부과되던 각종 부역과 잡공이 3년 동안 면제되었다.원충갑 또한 여섯 번 전임하여 삼사(三司)우윤(右尹)에 올랐다. 충선왕 때 응양군 상호군이 되었고, 합단적을 물리친 공으로 1319년(충숙왕 6) 추성분용정란광국공신이 되었다.원충갑은 충숙왕 8년 나이 72세에 생을 마감하였다. 치악산 영원산성 안에 원충갑사가 세워져 제사를 모시다가 1669년(현종 10) 사당을 세워 원충갑을 주향하고 김제갑과 원호를 배향하였고, 1670(현종 11) 윤 2월 7일 충렬사로 사액되었다. (출처: 원주시청)강원도 문화재자료 제 138호 ● 풍수적 고찰. 원충갑(元沖甲) 장군 묘역은 한강기맥으로 백운산에서 발조하여 월림산(225m)의 소조봉을 성봉 한 후 경유(庚酉)ㅡ신술(辛戌) 용으로 지현굴곡(之玄屈曲)으로 달려와 과협을 이루고서 위이(逶迤)을 하여 취기처에 준수한 용신산을 앞에 두고 좌정하였다. 당판(當坂)은 크기에 비해 옹골차며 취기는 물론 재혈에도 제대로 된 곳이다 다만 좌우 용호사(龍虎沙)가 주인에게 예를 다 갖추지 못한 것이 흠이다. 안산은 반갑게 주인을 맞이하는 국세다. 좌향(坐向)은 8층 천반으로 진좌술향(辰坐戌向)에 건해파(乾亥破)로 左水가 右로 흐르니 이는 양공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화국(火局)의 정묘향(正墓向)이다. 정묘향은 인물인 귀(貴)보다는 재(財)로 주로 3남이 혜택을 많이 보는 방위로 발부발귀(發富發貴)와 인정대왕(人丁大旺). 복수쌍전(福壽雙全).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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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45회[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45회 11. 살화토(煞火土): 화(火)를 누르는 토(土) 살화토(煞火土) 화각(火脚)이 아래에 있고 토성(土星)이 위에 있다. 마치 토가 화를 누르고 있는 형상이다. 토(土)로써 화(火)를 누르면 복(福)이 있고 화(禍)가 없다. 화(火)가 이미 토(土)를 생(生)하고 토(土)가 화(火)를 눌러도 이러한 화는 꺼지지 않으니 후부(富厚)함과 수려함(秀)을 주관한다. 그러나 이러한 터는 오직 관록(官祿)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녹이 있으니 앞으로 나아가 어떠한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앞으로 나아가 전(傳 )하여 화성(火星)의 첨수(尖秀)함을 얻으면 즉 대귀(大貴)하고, 목(木)을 얻어도 역시 귀(貴)하다. 그러나 목(木)은 반드시 두 세 개를 전해야 비로소 왕하다. 화(火)는 이미 터의 뿌리(根基)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수(水)나 금(金)이면 즉 또 반드시 전변(傳變)의 조화(造化)가 어떠한지를 보아야 한다. 대개 토화(土 火)는 스스로 서로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