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명리/관상/주역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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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46회...꽃보다 병산서원(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46회...꽃보다 병산서원 병산서원은 선조때의 명재상 류성룡을 주벽으로 모신 서원이다. 앞쪽에 보이는 병산을 따서 병산서원이라 하였다. 강학서원중에 하나인 병산서원은 만대루에서 보는 풍경이 아름다운데 문화재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만대루를 폐쇄하여 올라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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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70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70회 1) 조산의 목(木)이 수토(水土)의 조화로 문장(文章)으로 발복이 나타나는 터 【1】 조산의 삼태목(木)에서 목성(木)이 낙(落하여 부모가 되고. 【2】 다시 2개의 목성으로 낙(落)하여 통천목(通天木)을 이루고, 【3】 터에 이르러 토성(土星)으로 변(變)하여 목(木)을 북돋우니 목(木)의 기운이 강한 터가 된다. ☞ 전체적으로 목성(木星)이 강하다. ☞ 부모 역시 목성으로 문장의 기운이 있고 다시 목성에 수각(水脚)이 붙어서 윤택(滋潤)하게 앞으로 나아가니 목(木)이 수(水)를 얻어 더욱 성(盛)하고, 하늘에 높이 솟아 기이하고 뛰어난다. ☞ 터에 이르러 토(土)로써 북돋우니 목(木)의 세(勢)가 더욱 떨치고 문장(文章)으로 등과하니 자연히 높은 관직에 승진(陞進)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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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45회 ...문화류씨 영의정 류전의 묘(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45회 ...문화류씨 영의정 류전의 묘 류전의 묘는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 군부대 안에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일동면 기산리로 이장한 상태이다. 문화재는 원형을 유지할때 그 가치성이 있다. 우리가 답사를 다니는 이유도 원래의 모습을 보고자 가는 것이지 새롭게 꾸며진 모습을 보고자 가는 것은 아니다. 현재 묘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무리하게 산을 깍고 축대를 쌓아 어색한 모습이다. 멀리에서 보면 웅장함이 돋보이는 모습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옛모습은 찾을 수 없고 콘크리트와 억지스러움만이 자리한다. 류전은 포천시 왕방산 아래 자작동에서 태어난 영의정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본인의 노력에 의해 최정상까지 오른 인물인 만큼 남다른 재주를 가졌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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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9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9회 2. 화성(火星) 8) 객성(客星)이 주성(主星)의로 바뀌어 녹(祿)이 후부 하여 부귀(富貴)가 마땅한 터 주산의 화(火)에서 낙(落)하여 앞으로 나가 화(火)를 전(傳)하고 왕(旺)한 화(火)가 토(土)를 생(生)하고 목(木)으로 그곳을 소통하여 토성의 터를 만들었다. 화(火)는 토(土)를 생하고, 토(土)는 목(木)을 생(生) 하였다. 조화가 이미 완전하고 생극(生剋)이 순수(順數)하다. 순수(順數)는 조종(祖宗)으로 부터 자손(子孫)까지를 말하는 것이다. 화(火)는 녹(祿)으로 조(祖)가 되고 토(土)는 재(財)로 잉태(胎)의 기르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녹(祿)이고 후부 하다고 한 것이니 부귀(富貴)가 마땅하다. 이는 객성(客星)인 토성(土星)이 주성(主星)의로 바꾸어 길(吉)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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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주암선생 문화탐방 46회... 첨성대(瞻星臺)(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46회... 첨성대(瞻星臺) 첨성대(瞻星臺)는 633년 신라 27대 왕인 선덕여왕 때 지어진 천문대다. 원형을 유지하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다. 높이 9.17 m, 밑지름 4.93 m, 윗지름 2.85 m로 중간에 남쪽 방향으로 정사각형의 문이 있으며 상방하원(上方下圓) 즉 천원지방(天圓地方)의 형상을 갖춘 돌탑 형식으로 축조되었다. 위쪽 방형의 각 면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당대의 우주관은 천원지방, 즉 하늘이 둥글고 땅이 모나 있다고 믿는 것이었는데 첨성대는 반대 형상이기 때문이다. 천체의 상징과 계절의 변화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구조라는 설과. 불교계 일각에서는 불교 우주론 속 수미산의 형상을 반영했다고 주장한다. 불경에 따르면 수미산의 정상 도리천은 사각형이기 때문이다. 첨성대의 입구는 남동쪽을 향하였다. 첨성대의 정자석(井字石). 2016년 경주 지진으로 약 4cm 이동했다.상단의 삐져나온 돌 4개는 방틀심석이다. 화강암 벽돌 364개를 이용해 석축 27단을 쌓았음 역시 '1년'의 시간과 28수 별자리, 혹은 27대 국왕인 선덕여왕을 상징하는 의미로 보기도 한다. 가운데 창문을 기준으로 상단 12단과 하단 12단으로 나뉘는데 이는 각각 1년 12달, 합치면 24절기에 대응한다. 내부는 제12단까지 흙으로 채웠고 맨 위에 우물 정(井)자 장대석이 있다. 춘분과 추분 때는 태양광이 창문을 통해 첨성대 밑바닥을 완전히 비추고, 하지와 동지 때는 완전히 사라지게끔 만들었다. 한편 첨성대의 문이 탑의 중간에 위치한 것은 석가모니가 어머니 마야부인의 겨드랑이(혹은 옆구리)에서 태어난 것을 상징하며, 첨성대에 사용된 364개의 화강암 벽돌은 각각 1년의 하루를 상징하고 거기에 선덕여왕의 1이 추가되어 1년 365일이 완성된다는 해석이 있다. 고대의 천문 관측은 과학 연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으며 대개 국가의 길흉을 점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시설은 당연히 왕궁에 가까워야 했다. 첨성대의 지반은 지하 16m까지 퇴적층, 그 아래는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북쪽 지반이 약해 급속한 침하가 이뤄질 수 있으며, 경주 일대는 활성단층인 불국사 단층선이 지나가는 지진 위험 지대이기 때문에 유지 보수에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첨성대는 현대 들어서 금이 많이 가고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짐이 심해지고 있다. ● 풍수적 고찰 천문대냐? 천문대가 아니냐?.로 의견이 분분한 첨성대. 겉에서 본 모양은 천원지방(天元地方).이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이 네모지다.의 이론에 따른 것을 보면 천문대로 보는 것이 타당할듯싶다. 고대의 천문 관측은 과학 연구를 할 목적보다는 국가의 존망(存亡)을 예측하고 국가의 길흉(吉凶)을 점치는 용도였기에 첨성대도 왕궁 근처에 있다. ‘세종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633년(선덕여왕 2)에 건립했다고 문헌비고.첨성대 안을 통해 사람이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했다는 기사가한다으며, ‘서운관지’와 ‘문헌비고’에도 첨성대가 천문대의 역할을 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첨성대가 위치한 맥은 남산(468m)의 지맥으로 남산에서 병오룡(丙午龍)으로 기복굴곡(起伏屈曲)과 지현굴곡(之玄屈曲)을 하여 산진처(山盡處)인 평지에 장엄하게 세워져 있는데 지금은 물길에 둘러싸인 형국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1400여 년의 유구한 세월에도 끄떡없던 지반이 약해져 인근에서 발생한 지진의 진동에 약 2.13cm가 더 기울어져 총 22.58cm가 북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안타까움이 앞선다. 선조들의 하늘에 대한 연구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선던 만큼 우리 후손들은 우주개발에 더욱 분발하여 우주 강국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또 앞으로 수천 년을 길이길이 보전해야 할 찬란한 문화유산이기에 주변의 개발은 물론 지하수의 사용도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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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8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8회 2. 화성(火星) 7) 화(火)에서 육수(六水)를 이루어 시종(侍從) 구경(九卿)이 나는 터 조산에서 낙(落)한 수(水)는 수기(水氣)가 윤택하게 찌는(蒸潤) 곳이다. 화(火)는 더욱 작고 수(水)는 더욱 성(盛)고 아래의 화(火)를 멸(滅)하여 수(水)를 전(傳)한다. 수(水)가 이미 전(傳)하여 혼잡(雜)하지 않으니 즉 길룡(吉龍)이 된다. 오성(五星)은 오직 박잡(駁雜)함을 두려워한다. 또한 조산으로 부터 수화(水火)로 차례로 내려와 왕한 수성의 터를 만드니 박잡(駁雜)하지 않다. 그러므로 화(火)는 녹(祿)이고 수(水)는 수(秀)이니 모두 청귀(淸貴)를 주관한다. 그러므로 구경(九卿)과 시종(侍從)의 지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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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44회 ...신숙주의 증손이자 부마 신항의 묘(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44회 ...신숙주의 증손이자 부마 신항의 묘 [한국풍수신문] 신항의 묘는 의정부시 신곡동에 있다. 근처에 한명회의 부친과 장남 그리고 큰딸의 묘가 있다. 신항의 묘가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 신씨들의 종산처럼 보이지만 청주 한씨의 종산이었을 개연성이 크다. 풍수적으로 뛰어난 길지라 할 수는 없고 조모 한씨의 묘가 그나마 이 보국에서는 가장 좋은 자리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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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7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7회 2. 화성(火星) 6) 발록(發祿)하니 속왕(速旺) 속패(速敗)하는 터 조산의 화성이 락(落)하여 화(火)가 되고 언덕과 같은 횡수(橫水)가 그곳에 물을 대니 물이 꺼지고 무너져서 넘쳐 흐른다. 또한 수성이 물처럼 개장(開障)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화성채의 작은 터를 만들었다. 수중에서 화(火)가 있고 목이 없고 토가 없으니(無木無土) 어찌 오래 가겠는가? 무리의 물(水)이 화(火)에 물을 대어 승기(乘氣) 융결(融結)하여 수(秀)하고 발록(發祿)하나 속왕(速旺) 속패(速敗)한다.화성의 세(勢)가 반드시 멸(滅)한다. 그러나 오로지 수(秀)하고 발록(發祿)한 것은 결국에는 화(火)는 녹성(祿星)이 되고 수(水)는 수성(秀星)이 되고, 또 천심(穿心)하고 정출(正出)한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수려한 사람이 나오고 수려하여 식록(食祿)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성이 강하여 화가 꺼지니 일시에 발달하고 곧 쇠하여 마르고 만다. 만약 토(土)가 있어 수(水)를 멈추고 목(木)이 있어 화(火)를 발(發)하면 즉 좋은 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화성체의 터는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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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주암선생 문화탐방 45회 ...임고서원(臨皐書院)(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45회 ...임고서원(臨皐書院) 임고서원(臨皐書院)은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에 있는 조선전기 정몽주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553년(명종 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몽주(鄭夢周)의 덕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임고면 고천동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554년에 ‘임고’라 사액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3년(선조 36)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이듬해에 다시 사액되었다. 1643년(인조 21)에 장현광(張顯光)과 1787년(정조 11)에 황보 인(皇甫仁)을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1871년(고종 8)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으며, 1919년 존영각(尊影閣)을 건립하여 정몽주의 영정을 모시고 향사를 지내왔다. 1965년에 복원되어 위패를 모셨으며, 1980년 정부의 보조로 현재의 위치에 이건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祠宇)·존영각·강당·포사(庖舍)· 유사실(有司室) 등이 있다. 사우인 문충사에는 정몽주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존영각에는 영정이 소장되어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유사실은 유사가 집무를 보는 곳이고, 포사는 향사 때 제수(祭需)를 마련하여 두는 곳이며, 고사는 고직(庫直)이 거처하는 곳이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2월 중정(中丁 : 두 번째 丁日)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이다. 유물로는 정몽주의 영정 3폭과 《포은문집 圃隱文集》 목판 113판, 《지봉유설 芝峰類說》 목판 71판, 《포은집》· 《어사성리군서 御賜性理群書》 11권 외에 200여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다. 이 서원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6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재산으로는 전답 1만여평, 임야 10정보 등이 있다.(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풍수적 고찰 충절의 상징인 고려말 대학자,포은 정몽주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임고서원의 맥(脈)은 기룡산(965.5m)에서 출맥하여 남서인 정미(丁未)로 기복굴곡으로 백리내룡하여 산진처에 이르러 갑묘(甲卯)로 횡룡입수하였다 420여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란의 화재와 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숭고한 충절의 정신을 기리고자 여전히 굳건히 우뚝 서 빛을 발하고 있다. 420여 년인 1603년에는 현재의 서원 우측에 있었던 것을 1980년 정부의 보조로 현재의 위치로 확장 이전하였다고 하는데 지기상으로는 본래의 자리가 주인의 자리이고 더 낫다. 서원이나 향교.학교...등 교육기관의 터는 어디가 좋은가? 1.지기(地氣)가 있어야 하고. 2.주위에 문필봉이 있어야 하고. 3.국세가 갖춰져야 하고. 4.조안(朝案)이 열려 있어야 하고. 5.조당(朝堂)이 있어야 하고..6.환포하는 금성수가 있어야 좋고. 7.핍착이 없어야 좋다. 참고로 임고(臨睾)’라는 지명은 기룡산 기슭 언덕 밑에 임하여 고을이 형성되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는 중국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동쪽 언덕에 올라가 조용히 읊조리고(登東睾以舒嘯 ),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臨淸流而賦詩)’라는 시구에서 ‘임(臨)’자와 ‘고(睾)’ 자를 따서 ‘임고(臨睾)’라고 불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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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43회 ,,,한명회의 장녀이자 신숙주의 큰 며느리 한씨의 묘(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43회 ,,,한명회의 장녀이자 신숙주의 큰 며느리 한씨의 묘 [한국풍수신문] 한씨의 무덤은 의정부시 신곡동 있다. 신숙주의 증손자이자 부마인 신항의 무덤 우측에 한씨의 무덤은 있다. 부마 신항은 한씨의 손자이고, 신항의 아들이 좌의정을 지낸 신용개이다. 신숙주 집안의 무덤중에 단연 한씨의 무덤이 돋보인다. 앞에 제목에서 밝힌바와 같이 당대를 풍미한 두명의 아버지를 섬긴 여인이지만 안타깝게도 신랑 신주는 22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물론 무덤도 따로 써져 있다. 이들 무덤의 좌측에는 한명회의 부친 한기와 장남 한보의 무덤이 있다고 해서 찾아 들었으나, 비가 온직후라 풀섶을 헤치고 가기에는 부담스러워서 다음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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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6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6회 2. 화성(火星) 5) 관(官)이 청(淸)하고 재(財)가 풍요로운 터 주산의 화(火) 삼태(三台)가 락(落)하여 토(土)를 생(生)하여 화(火)가 머무를 수 있는 토(土)가 된다. 앞으로 나아가 목(木)이 있어 화(火)는 발화 한다. 그러므로 화(火)가 빛나고, 화(火)가 다시 토성(土)의 터를 만드니 성(盛)하다. 터에 있는 토기(土氣)는 후부하니 화(火)가 태울 수 없다. 오직 그 부귀(富貴)의 발복(發福)을 볼 뿐이다. 목(木)은 문(文)이고 화(火)는 녹(祿)이다. 둘은 모두 수려하고 토(土)는 재물을 기르고 북돋운다. 그러므로 관(官)은 청(淸)하고 재(財)는 풍요롭다. 오행이 모두 서로 도와 조화를 이룬 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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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주암선생 문화탐방 44회... 선덕여왕릉(善德女王陵)(한국풍수신문 ) 주암선생 문화탐방 44회... 선덕여왕릉(善德女王陵) [한국풍수신문] 선덕여왕(善德女王.~647.1.8)의 본명은 김덕만.이다. 신라 27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632년∼647년.이며 본관 경주이며 .아버지는 진평왕.어머니는 마야부인 김씨 배우자는 음갈문왕.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자신의 무덤을 도리천에 써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신하들이 유언을 듣고 도대체 도리천이 어디냐고 물으니 낭산이라고 대답하여 그대로 낭산에 장사지냈는데, 후에 문무왕이 선덕여왕릉 밑에 사천왕사를 세워 선덕여왕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한다. 불교의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에는 거대한 수미산이 있다. 수미산은 정상이 정사각형 모양이고 산체(山體)는 정육면체, 또는 뒤집어놓은 피라미드처럼 생겼다고 한다. 수미산 중턱에 사천왕이 거주하는 사왕천(四王天)이 있고, 정상에는 제석천과 다른 신들이 사는 도리천(忉利天)이 있다. 사천왕사가 낭산의 밑에 있으니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 꼭대기는 당연히 수미산의 정상, 즉 도리천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불상을 모신 단을 '수미단'이라 부르는데, 부처를 수미산의 정상에 모신다는 상징적인 뜻이다. 선덕여왕릉은 비석과 같은 명문이 기록으로 확실히 무덤의 주인이 알려진 무열왕릉이나 흥덕왕릉과는 달리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해서 비교적 확실히 무덤의 주인이 알려진 무덤이다. 참고로 지금의 선덕여왕릉은 과거 수해를 입어 무너졌었으며 근세, 근대에 들어서 무너진 부분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즉, 지금의 선덕여왕릉의 돌 기단은 당시의 것이 아니다. 1968년 12월에 도굴 시도가 있었지만 미수로 끝난 일이 있었다. 신라 27대 왕 선덕여왕 능 사적 제182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위키백과) ● 풍수적 고찰 선덕여왕릉(善德女王陵)은 한등산(268.7m)에서 출맥하여 병오(丙午)ㅡ신술(辛戌)룡으로 행도하여 낭산(狼山.99.5m)을 성봉하고 낭산의 9부 능선에 임자(壬子)룡으로 입수하여 좌정하였다. 낭산의 높이가 99.5m가 되는데 역사 기록에 의하면 수해의 피해를 입었다.하니 얼마나 큰 홍수였는지 대강 짐작이 간다. 총명함과 지혜의 여왕으로 각인된 선덕여왕은 사후의 집인 자신의 신후지지를 정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명성에 어긋남이 없이 좋은 자리다. 당판도 좋고.지기도 좋고.토색도 자윤하고 재혈도 손색이 없다. 좌향(坐向)은 임좌병향(壬坐丙向). 파구(破口)는 정미(丁未)파 이는 구빈(求貧)양균송(楊筠松.834~900.唐의 國師)의 진신수법의 하나로 차고소수자왕향(借庫消水自旺向)이다. 차고소수자왕향(借庫消水自旺向)은 임관룡(壬官龍).우선룡(右旋龍)에 좌수도우(左水到右). 병오향(丙午向)에 정미파(丁未破)로 詩의 유유쇠방가거래[惟有衰方可去來(쇠방으로 물이 나가도 되고 들어와도 좋다)]에 합당하여 발부발귀(發富發貴)하고. 인정대왕(人丁大旺)을 하며 장수(長壽)하는 좋은 향법이다. 간방수가 들어오면 삼길육수의 水가 되어 비상한 인재와 문장이 나고 급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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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5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5회 2. 화성(火星) 4) 화출금각(火出金脚) 삼공(三公)이 터가 되나 물러나 취하는 터 조산에 화(火)의 대성신(大星辰)이 일어나고 금(金)이 화(火)를 따라 낙(落)하였다.. 이는 녹임을 받는 수용지금(受鎔之金)이다. 그러나 화에서 떨어져 락(落)하고 다시 금성체의 다리에 화(火)가 나왔으니 이는 화출금각(火出金脚) 이라 말하고 수기(秀氣)가 따라 나오는 곳이다, 이러한 금성은 앞으로 나아가 반드시 창도(槍刀)와 검도(劒刀)등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금(金)이 이미 녹임을 받으니 화기(火氣)는 더욱 성(盛)하고 또 삼태(三台)가 되었다. 삼태는 모두 이는 모두 삼공(三公)의 응(應)을 주관한다. 그러므로 삼공(三公)의 작위가 있는 터가 된다. 그러나 화성(火星)이 높이 솟아있어 이와 같은 곳은 사람들이 사는 터를 만들지 못한다. 반드시 멀리 더 나아가 물러나 따로 평평한 터를 만나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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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42회 ...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42회 ...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 [한국풍수신문] 동래정씨 종택에는 후손들이 살고있어 양해를 구해 살펴보았다. 노블리스오블리즈를 실천하는 가문으로도 유명한데, 정난종과 정광필, 정치화, 숙정공주 등의 묘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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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4회(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64회 2. 화성(火星) 3) 경도(京都)와 제왕의 능침(陵寢)이 되는 터 조산의 화개삼태(火蓋三台)는 화(火)가 세 개 있는 개성(蓋星)이다. 낙(落)하여 목(木)이 세 개가 있는 삼태(三台)가 개성(蓋星)이 되었다. 화(火)를 두르고 목(木)을 얻으니 더욱 불길이 세고 또 나아가 화성의 삼태(三台)의 상(象)이 된다. 앞으로 나아가 성신(星辰)이 더욱 크니 마침내 옥루보전(玉樓寶殿)을 일으킨다. 이렇게 전(傳)하여 앞으로 나아가면 경도(京都)와 제왕의 능침(陵寢) 터가 된다. 그러므로 귀(貴)가 말할 수 없다. 처음 보이는 누대(樓臺) 전각(殿閣)에는 터를 잡을 수 없다. 반드시 마지막 평평 한 터에 이르러 경도(京都)나 제왕의 능침(陵寢) 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