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명리/관상/주역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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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36회 ...정종의 증손 완성군 이귀정의 묘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36회 ...정종의 증손 완성군 이귀정의 묘 [한국풍수신문] 흑석동 한복판에 무덤이 있다. 서울이 개발되고 수많은 무덤이 이장되었으나, 완성군의 무덤군은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후손들이 피나는 노력을 한 결과라 할 수 있는데, 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왕손으로서의 자부심과 함께 풍수 명당에 묻힌 조상을 잘 모시고자 하는 효심의 결과라 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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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주암선생 문화탐방 40회... 노동서원주암선생 문화탐방 40회... 노동서원 [한국풍수신문] 노동서원(魯東書院)은 우리나라 사학(私學)의 원조인 최충(崔冲)의 영정(影幀)과 위패(位牌), 그리고 그의 아들인 최유선(崔惟善)을 봉안(奉安)하고 있다. 최충의 12대 손인 최변이 이곳에 낙향하여 자손들이 번창하자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당을 지었다가 후에 노동서원이라 개칭되었다. 서원에 봉안된 두 분의 영정은 1628년 (영조 24)의 거작(巨作)으로서, 1984년 6월 27일 강원도 일반 동산문화재(江原道一般 動産文化財)로 각각 등록되었으며 그 외 제기(祭器)일체가 또한 문화재로 등록, 현재 서원(書院)에 보관되어 있다. 대지 1500평에 건평 20평의 정전(正殿)과 14평 의 동재(東齋), 서재(西齋)가 있으며 내삼문(內三門)과 외삼문(外三門)이 각각 2棟씩 있다. 정전(正殿)에는 문헌(文憲), 문화(文和) 두 분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동재와 서재는 유인(儒人)들이 체류하며 학문을 토론하고 강론하는 곳이다. 또 유교적 전통문화 계승과 발전 을 위한 행사의 장으로도 쓰이며 특히 인근 초,중,고 학생들의 유적순례지로서 좋은 장소가 되고 있다. 본 서원은 원래 홍천군 북방면 노일리에 있던 것을 수호(守護)의 어려움으로 인 하여 1932년 5월에 이곳으로 옮겼으며 6.25동란에 소실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일부를 개축(改築)하고 수차에 걸쳐 중수(重修)하였다. 또한 정례행사인 제향을 유림행사(儒林行事)로서받들며 년 1회 봉제사를 올린다. 최충[崔沖.984년(성종 3)~ 1068년(문종 22)]인은 해주 최씨의 시조인 최온(崔溫)의 아들이다. 옛 고구려 영토인 해주 출신 최충은 은퇴 이후 총 9곳의 학당이라는 뜻의 '9재학당'을 세워 문관을 배출했다. 이른바 '시중최공도(侍中崔公徒)'인데 '최 시중의 공도들'이란 뜻으로 한국 사립학교의 원조이다. 시호 문헌공(文憲公).자(字) 호연(浩然)호 성재(惺齋)ㆍ월포(月圃자(字) ㆍ방회재(放晦齋) 최충 아들 최유선 영정 시호 문화공(文和公). 본관 해주 최씨(海州 崔氏) 최유선[崔惟善. ? ~ 1075년 1월]고려왕조 문종 인효대왕 시기의 유학자, 문관. 해주 최씨의 시조인 최온(崔溫)의 손자이며 최충의 장남, 최사추의 큰아버지이다. 고려 유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벼슬은 문하시중까지 올랐다. ● 풍수적 고찰. 노동서원은 좌방산(487m)에서 동진하여 술좌(戌坐)로 좌정하였다. 서원 뒤는 밭으로 사용중이나 서원으로 입수전에 기운이 상승하니 조금 뒤로 좌정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좌향(坐向)은 술좌진향(戌坐辰向)이다. 파구(破口)는 을진파(乙辰破) 당문출수)當門出水)다. 양공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묘향묘파(墓向墓破)에 해당되는데... 우선룡에 좌선수 술좌진향.에 을진파.을방수구 1.좌수가 우로 흘러 향의 을방으로 나가며 辰字를 범하지 말고 백보전란.용진혈적.천간자.파구면 묘향묘파로 대부부귀하게 되지만 약간이라도 차질이 있다면 황천을 범하여 패절하는 화를 입는다. 2.우수가 좌로 흘러 향상의 乙字로 나가면 絶水가 도충묘고(到沖墓庫-절방수가 묘고로 나감)하는 것이다. 당면으로 곧게 나가도 견동토우(牽動土牛).다 書에 이르길 을병수방손수선(乙丙須防巽水先-살인대황천).이라 한 것이 이것이다.황천살을 범하였으니 패절한다. 초기에는 수법이 맞아 잘 나가나 끝에는 황천살을 범하니 조심해야 한다. ● 당문출수가 합법이 되려면 ㄱ. 용진혈적(龍眞穴的)해야 한다. ㄴ. 右水가 左로 흘러 향상의 乙字로 나가며 辰字를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ㄷ.백보전란(百步轉欄)해야 한다. 양택은 양룡(陽龍)이어야 한다. 취기보다는 국세가 갖추어지고 안(案)이 좋아야 한다. 본래에 있던 자리[홍천군 북방면 노일리에 있던 것을 수호(守護)의 어려움으로 인 하여 1932년 5월에 이전.]가 어떤지는 확인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사학의 웑조이신 분이 좀더 양명한 곳에 계셨으면 더 좋았을것인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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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35회...비운의 소현세자 묘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35회...비운의 소현세자 묘 [한국풍수신문] 아버지 인조에 의해 독살된 소현세자...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아내 강빈은 사약을 받고 죽는다. 세 아들은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가 두명은 풍토병으로 죽고 막내 경안군만 살아 남는다. 이 보다 더한 비극이 있을까 싶다. 소현세자의 묘는 비공개 지역으로 접근도 쉽지 않다. 아직도 그에 대한 정치적 박해는 풀리지 않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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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5회[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5회 5) 전부가 수(水)이고 목토(木土)가 없어 청수(淸秀)하나 빈(貧)한 터 【1】 수(水)가 왕(旺)하게 조산(祖)을 일으키고, 락(落)하여 수(水)가 부모(父母)가 된다. 그리고 아래로 전하여 모두가 변환이 없는 성(星)을 이루고 있다. 경(經)에 만약 전부가 수(水)이고 목토(木土)가 없으면 길게 흘러(長流) 범람(氾濫)하여 모두 머무를 곳이 없다고 하였다. 이처럼 내려오는 산이 수성으로 모두 좋아도, 재(財)가 모이지 않는다.발(發)한 후에 사라지는 것은 물이 빠지는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오행(五行)의 조화(造化)와 같으니 마땅히 서로의 본질(相資)을 살펴야 한다. 지리의 설(設)은 이와 같이 차이가 없다. ☞ 넘치는 모든 물은 토(土)가 없으면 막을 수 없고, ☞ 나무(木)가 없으면 건널 수 없으니, ☞ 혼란에 빠져 (昏墊) 위태롭지(幾) 않겠는가? ☞ 마땅히 청수(淸秀)하나 빈(貧)한 것은 물에 떠서(泛) 머무를 곳이 없으니, 장차 그 장소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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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34회...양주조씨 평안도관찰사 조수량의 묘[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34회...양주조씨 평안도관찰사 조수량의 묘 조수량의 묘는 의정부시 낙양동에 있다. 계유정난 당시에 이조판서 조극관과 조수량 형제는 희생되었다. 이때 집안이 어려움에 빠졌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비석이 묘역 입구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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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4회[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4회 4) 금(金)이 수(水)에서 나와 멈춰 먼저 무(武)가 나타나고 자손(子孫)에서 문(文)으로 바뀌는 터 【1】 조산의 수(水)에서 목(木)이 천(穿)하고 나와 수생목(水生木)으로목(木)이 왕(旺)하다. 【2】 목(木)에서 락(落)한 금(金)은 천변(穿變)하여 3개의 금성(金星)을 이루니 금수상간(金水相間)으로 둘 다 청(淸)하다. 【3】 3개의 금(金)에서 나와 다시 전(傳)한 목(木)은 금종(金鐘) 옥부(玉釜)를 두르고 있으니 착금목(斲金木)으로 문(文)의 기질이 함께 있다.【4】 그리고 수성(水星)으로 변(變)하여 금성(金星)으로 입혈(入穴)한다. ☞ 금성(金星)의 본(本)은 무(武)이고 또한 절절(節節)이 정출(正出)천심(穿心)한다. ☞ 또한 수(水)의 본(本)은 수(秀)로 금(金)을 생(生)을 한다. ☞ 수(水)가 금(金)을 잉태(孕胎)하고 있으면 전부가 무(武)라고 하면안 된다. ☞ 출신의 기운이 이미 귀(貴)하니 마땅히 문무겸전(文武兼全)이 나오고 장수(將帥)로 조정에 들어간다. 금(金)이 수(水)에서 나와 멈추면, 반드시 먼저 무(武)가 나타나고 자손(子孫)에 이르러 후에(後)문(文)으로 바뀐다. 이러한 터에서는 문무겸전(文武兼全)이고 장상(將相)과 공경(公卿)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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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주암선생 문화탐방 38회... 애국을 몸소 실천한 남궁억(南宮檍) 선생.(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8회... 애국을 몸소 실천한 남궁억(南宮檍) 선생. [한국풍수신문] 한서 남궁억(南宮檍) 선생 유언." 내가 죽거든 무덤을 만들지 말고.과목(果木)밑에 묻어 거름이나 되게 하라."1934년 1월 26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정성껏 마련한 제물을 진설하고.남궁억(南宮檍) 선생에 禮를 표했습니다 예를 표한 후 기념. 남궁억[南宮檍.1863.12.27.1939.4.5]. 본관 함열 남궁씨 字 치만(致萬) 호 한서(翰西) 아버지 남궁영(南宮泳), 어머니 덕수 이씨. 배우자 양혜덕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자녀: 딸 남궁숙경, 남궁자경. 아들 남궁염 아버지 남궁영(南宮泳)과 어머니 덕수 이씨 사이에서 12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1894년 내부토목국장으로 파고다공원을 세웠다.1896년 2월 아관파천 후에 관직을 사임하고 1896년 7월 서재필, 이상재 등과 독립협회를 창립하였다. 1898년 9월 나수연, 유근 등과 황성신문을 창간하고 사장에 취임해 국민 계몽과 독립협회 활동을 지원하는데 힘을 쏟았다. 1905년 3월 고종의 간곡한 요구로 다시 관직을 맡아 성주군수로 부임했다. 그러나 1905년 11월 일본이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하자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왔다.1906년 2월 양양군수에 임명되자 애국계몽운동에 참가하였다. 1907년 일본이 헤이그 밀사사건을 이유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 7조약을 체결해 침략 정책을 강화하자 사임하고 애국계몽운동에 주력하였다. 1910년 8월 경술국치 이후 교육을 통한 구국 운동에 노력하여 1910년 10월 배화학당 교사가 되었다. 1933년 11월 개신교 계열 독립운동 비밀 결사인 '십자당'을 조직해 활동하다 홍천경찰서에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되어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노령이 참작되어 석방되었으나 1939년 4월 5일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 풍수적 고찰. 나라를 사랑하고.국민개봉활동에 전념하고 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 꽃을 누구보다 사랑한 한서 남궁억 선생 묘역은 장락산(629.5m)에서 북동으로 동진하여 회룡고조형국(回龍顧祖形局)을 취하였다. 우측에선 홍천강 모곡.수산 유원지 물이 주산을 감싸고 도는 형국이라 취기처가 분명하고 재혈이 합당하면 부귀가 기약되는 곳이다. 묘역은 3단으로 아름답게 조성되었지만 주산에서 낙맥하는 주(主) 기운은 청룡방으로 흐르고 묘소로 오는 기운은 작은 보백지지다. 주산은 암반으로 된 골산(骨山)의 문필봉인데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우측의 강물은 반배로 다가오니 비보(裨補)를 해야 한다. 조당과 안산은 유정하다. 좌향은 인좌신향(寅坐申向)과 곤신(坤申)사이의 공망이나 인좌신향(寅坐申向)에 경신(庚申) 분금으로 하면 좋다. 파구(破口)는 우수(右水)가 좌(左)로 흘러 정미(丁未)로 나가니 이는 양공(楊公. 834~900.唐나라 국사)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차고소수자생향(借庫消水自생向)이다. 차고소수자생향은 부귀하고 장수하며 인정(人丁)이 대왕한다. 차남이 먼저 발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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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3회[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3회 3) 전체적으로 보면 화성이 강하나 조산(祖)이 수(水)이어서 자손(子孫)이 서로 왕(旺)한 터 【1】 특이하게 일어난 수(水)가 낙(落)하여 좌목(座木)이 되고 아래의 토(土)에 의해 생(生)을 받으니 당연히 목(木)이 왕성(盛)하다. 【2】 그러나 아래 토(土)에서 변(變)한 목(木)은 작은 좌목(座木)이 되어(旺)하지 못하다. 왕(旺)하지 못하면 전(傳)하여 앞으로 나가지못한다. 【3】 그러므로 변(變)하여 화(火)를 생(生)하고 화(火)가 중간에서 목(木)을 얻어 발화목(發火木)이 되니 화(火)는 세력이 성하여(熾) 활활 타올라그 녹(祿)을 가히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화성이 강하여 불길이 성하여 목을 테워버릴 수 있으나 조산(祖)이 강하게 일어난 수(水)이다. 그러므로 목의 기운은 해를 받지 않는다. 【1】 그러므로 조(祖)는 수(秀)가 나타나고, 【2】 낙(落)하여 목(木)이 되니 부모는 문(文)이 높고, 【3】 목(木)이 다시 토(土)를 천(穿)하여 생(生)이 된다. 【4】 그러므로 어머니(母)의 자질(資)로 목(木)이 흥(興)하다. 토(土)는 재성(財星)이다. 그리고 아래는 불을 태워 발(發)하는 목성과 화성이 있어 녹(祿)이 되니 자손이 서로 왕(旺)한 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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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33회 ...정종의 7남 수도군의 묘[한국풍수신문] 박정해교수 풍수이야기 33회 ...정종의 7남 수도군의 묘 수도군의 묘는 원래 서울 미아리에 있었으나, 포천시 소흘읍 무립2리로 이장되었다. 정종은 15남 8녀를 두었는데 모두 후궁의 소생이다. 정안왕후 김씨가 자식을 낳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종은 자식들이 정치에관여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1차 2차 왕자의 난을 보면서 정치의 무서움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의 비정함과 더러움은 다르지 않은듯하다. 필자도 정치와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는데 능력의 부족이 가장 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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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2회[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2회 2) 수토목(水土木)의 조화로 문장으로 귀(貴)와 부(富)가 나오는 터 【1】 천사(天絲)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어병토(御屛土)가 두르고(帶), 【2】 락(落)하여 토성(土星)이 되고, 【3】 다시 목성산(木星山)으로 내려와 터를 만들었다. 문장으로 과거에 급제하고 지극히 귀(貴)하고 부(富)한 터가 된다. 【1】 천사추(天絲墜)는 본래 수성(水星)이 귀(貴)한 것으로 조산(祖)을 일으키고, 【2】 천락(穿落)하여 수성(水星)의 어병(御屛)이 되니 이미 주격(主格)을 띠고 있다. 【3】 어병(御屛)에서 다시 낙(落)하여 바른 토성(土星)이 되고, 【4】 변(變)하여 목(木)을 생(生)한다. 그러므로 목(木)은 매우 왕(旺)하고 앞으로 나아가 더욱 빼어나 귀(貴)하다. 수(水)는 수려함(秀)을 주관하고, 목(木)은 귀(貴)를 주관하고, 토(土)는 재(財)를 주관한다. 당연히 문장으로 등과 하여 지극히 귀한 신하가 된다. 【1】 천사추(天絲墜)가 조종(朝宗)이 되고, 【2】 어병(御屛)이 부(父)가 되고, 【3】 토(土)가 모(母)가 되고, 【4】 태(胎)가 나와 좌목(座木)으로 자(子)가 된다.【5】 그리고 아래의 목성(木星)은 모두 손(孫)의 식(息)이 된다. 수(水)는 수성(秀星)이 되고, 목(木)은 문성(文星)이 되니 즉 수(秀)가 있는 자(子)와 문(文)이 있는 손(孫)이 되는 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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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7회... 강릉최씨(江陵崔氏) 중시조 최입지(崔立之) 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7회... 강릉최씨(江陵崔氏) 중시조 최입지(崔立之) 묘 최입지(崔立之)는 고려 후기의 문신.본관은 강릉. 자는 양필(良弼). 호는 성묵당(誠默堂). 시조 최흔봉(崔欣奉)의 12대손.으로 조부는 최군보(崔君甫), 父 최릉(崔陵)이다. 강릉최씨 평장공파(平章公派)의 시조이다. 원래 최입지(崔立之)는 최흔봉(崔欣奉)공을 시조로 하는 완산(完山)인이었으나 시조의 묘가 실전되었고, 시조로부터 12세손인 충숙공(忠淑公) 최입지가 강릉군에 봉해지면서, 그 후손들은 강릉을 관향으로 쓰게 되어 그를 중시조로 모시게 되었다. 말년에 혼란한 정국을 뒤로 하고 강릉 모산(母山)에 은거하여 후손이 여러 대에 걸쳐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하여 최입지가 살던 곳인 현재의 강릉시 장현동 모산의 지명을 평장동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개국 후 수태사태상(守太師太常)으로 증직. 세종 때에는 영의정(領議政)에 가증(加贈)되었다. 시호는 충숙(忠淑)이다. 최입지의 유허지는 강원도 강릉시 장현동 모산.에 최입지구지기적비(崔立之舊址紀蹟碑)가 있다, (참고문헌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강릉최씨 종친회) ● 풍수적 고찰 태백산맥의 오대산(2563m)에서 발조한 용은 동남향으로 기복굴곡(起伏屈曲)을 하고 다시 정동쪽으로 위이굴곡으로 행도하다 서진(西進)하여 소목고개를 지난 후 정좌하였는데 좌향(坐向)은 묘좌유향(卯坐酉向)을 하였다. 형국은 백호 작국으로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다. 혈형(穴形)은 유혈(乳穴)로 혈장(穴場)은 장유(長乳)다. 용호(龍虎)은 부모가 자식을 감싸 안듯 유정하다.. 안산(案山)은 부부가 밥상을 두고 사이좋게 앉듯이 아담하면서 다정다감한데 조산(朝山)은 약간 사비(斜飛)인 것이 아쉽다. 앞에 고속도로 개설로 인해 옛 모습인지 불분명하기도 하다. 조당(朝堂)은 작지만 알차다. 파구(破口)는 정미파(丁未破)다. 양공(楊公. 834~900.唐 국사)의)의 88향법에 의하면 이는 향상(向上)으로 관대방(冠帶方)을 충파하니어린 유년기의 총명한 자식이 상하고 또 규중의 부녀와 딸들이 상하면서 재산이 패하여 오래되면 패절하니 유의해야 할 향법중의 하나다. 고려 후대의 인물이라 그때는 파구의 개념이 보편화되지 않아서 크게 개의치 않았으리라 본다. 참고로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장안골 뒷산 고성산(古城山)에는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의 명혈로 알려져 왔으며, 금산리라는 지명도 거문고에서 따와 금산(琴山)이라 했다가, 나중에 강릉 김씨들이 많이 산다 하여 금산(金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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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1회[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1회 수성(水星) 1) 강한 수성(水星)의 기운을 토성(土星)이 가로막아 만든 부귀쌍전의 터(富貴雙全) 【1】 조산(祖山)의 수성산(水星山)이 아래로 낙(落)하여 목성산(木星山)이 되고 【2】 다시 두 개의 수성산(水星山)을 만들어 아래로 내려가니 수성의 기운이 강하다. 【3】 강한 수성의 기운을 토성산(土星産)이 가로막고(攔水土) 【4】 다시 목성산과 토성산이 나와 터를 만들었다. ☞ 강한 수성(水星)을 토(土)로 막아 목(木)이 지나가고 토(土)를 만나 멈추니, ☞ 토(土)는 수(水)로 윤택(潤)하고, ☞ 목(木)은 수(水)와 토(土)로 재배(栽培)한다. ☞ 부(富)와 귀(貴)가 드러나 부귀쌍전(富貴雙全)의 터가 된다. 만약 목(木)이 토(土)가 없이 물을 건너가면 수(水)가 범람하여 방탕하게 떠내려가 낮은 곳에서 머무를 곳이 없다. 혹 앞으로 나아가 터가 나오더라도 수려할(秀) 뿐이고 마침내 재물(財物)이 모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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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 풍수이야기 32회 조선 왕실의 마지막 공녀[한국풍수신문] 박정해 교수 풍수이야기 32회 조선 왕실의 마지막 공녀…병자호란 패전이 낳은 깊은 상흔 의정부시 금오동에는 ‘족두리 묘’로 불리는 의순공주(義順公主, 1635~1662)의 묘가 있다. 조선의 마지막 공녀였던 의순공주는 종친 금림군의 딸이다. 16세의 나이에 청나라의 도르곤에게 시집을 간 의순공주....본인의 의사는 반영이 된것이 아니었으니 안타까운 경우라 할것이다. 5월에 결혼하고 12월에 도르곤이 죽고 말았으니 안타까움의 연속이다. 다시 도르곤의 조카 박락에게 보내졌다. 그후 아버지 금림군에 의해 조선으로 돌아왔으나, 환향년이라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던 불운의 여인이다. 묘소도 역시나 편안한 안식처라는 느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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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6회... 원신(元愼) 장군 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6회... 원신(元愼) 장군 묘. 원신[元愼.1551년 (명종 6)) ~]장군은 자(字) 신재(愼哉). 본관 원주(原州). 거주지 한성([京]). 엄시하(嚴侍下)에서 선조(宣祖) 16년(1583) 계미(癸未) 알성시(謁聖試) 병과(丙科) 20위(46/101)에 합격하였다.통정대부 행 남원도호부사 겸 전라도방어사(通政大夫 行 南原都護府使 兼 全羅道防禦使) 부(父)는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동지의금부사 행 의교랑안기도찰방 (曾 嘉善大夫 戶曹參判 同知義禁府事 行 宜敎郞安奇道察訪) 원영세(元永世.)다. 형(兄) : 원척(元惕) 제(弟) : 원개(元愷) 제(弟) : 원제(元悌) ● 풍수적 고찰. 장구봉(300m)에서 임자(壬子)로 지현굴곡을 하여 다시 경유(庚酉)룡으로 행도하여 간인룡으로 입수하였다. 혈형(穴形)은 장유(長乳)다. 내룡맥과 당판(當坂)로 봐서는 취기(聚氣)가 된 것처럼 보이나 백호사(白虎沙)가 비주(飛走)를 하고 보호를 못 해주니 흘러내리는 과룡(過龍)에 모양새만 취기된 당판처럼 보이는 보백지지(保魄之地)’ 로 봐야 한다. 골과 도로가 반배를 하니 재물 또한 취적이 쉽지 않는 곳이다. 재실은 묘역 아래에 있는데 현대식이다. 좌향(坐向)은 인좌신향(寅坐申向)에 경유파(庚酉破)다. 만약 경파(庚破)라면 양공(楊公. 834~900.唐 국사)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문고소수(절처봉생향)다. 書에 말하는 녹존류진패금어(祿存流盡佩金魚ㅡ녹존방으로 물이 나가면 벼슬을 한다. )라는 말이 이것이다. 이는 부귀하여 복수쌍전하지만 약간이라도 차질이 있으면 패절하니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다만용진혈적. 천간자파구. 백보전란.을 해야만 사용 가능하니 신중을 기해야 하는 수법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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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0회[한국풍수신문] 장원기교수, 옥수진경(玉髓眞經) 해설(解說) 풍수 연재 50회 천락변전(穿落變傳)의 설과 옥수진경(玉髓眞經) 1) 오성산이 조산으로부터 평평하게 가운데로 뚫고 지나가는 것이 천(穿)이고, 2) 높은 데서 아래로 향하면 성봉이 떨어지면 낙(落)이 되며, 3) 중간에 진행하다 다른 성본으로 변하여 나오는 것을 변(變)이라 한다4) 뚫고나오는 천(穿)이나 떨어져 락(落)하여 변(變)하여 앞으로 나아가거나 터로 들어가면 전(傳)이 된다. 그러므로 조산으로부터 먼저 천(穿)하거나 락(落)할 수 도 있고 이후에 전하여 마지막으로 전하여 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오성의 변화는 먼저 조종산이 조(祖)가 되며, 조산 아래가 부모(父母)가 되고,부모산 아래가 아들(子)이 되고, 아들 아래가 손자(孫)가 되며, 계속 이어져 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출신(出身)과 같은 것이다. 마치 조부가 높은 관직이고, 부모가 높은 관직이며, 자식이 높은 관직이면 앞으로 태어날 손자 역시 부귀가 있음을 예측 할 수 있듯이 조산으로부터 내려오는 기운을 예측하면 터의 길흉(吉凶)을 예측 할 수 있으니 이것이 옥수진경을 응용한 터를 보는 방법이다. 1) 내룡(來龍)이 서로 상생(相生)하고 상극(相剋)하지 않으면 선(善)이 되고, 2) 만약 터로부터 튀로 후룡(後龍)을 보아 자식이 부모를 극하면 마땅하나, 부모가 자식을 긍하면 마땅하지 않다. 3) 대개 내가 극(剋)하는 것은 재물(財)가 되고, 나를 극(剋)하는 것은 귀(鬼)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歌)에 이르길, 천락(穿落)과 전변(傳變)은 최고로 정미(精微)하니,이 이론(論)은 오직 혈에 오를 때(入穴時)에 보아야 한다고 했다. 길흉(吉凶)의 나눔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자손(子孫)이 현명하고 불초(不肖)함은 모두 하늘(天)에 있다. 그러나 조종(祖宗) 부모(父母)가 이미 현덕(顯德)하면 즉 화(和)와 순(順)이 모이는 바가 되니, 기맥(氣脈)이 있는 곳에서 잉(孕)하고 반드시 아들과 형제가 드러난다. 이것 역시 하늘의 이치가 항상 그러하기 때문이다.변전(變轉)이 있으면, 이것이 기맥(氣脈)이니 자손(子孫)이 형성(形成)된다. 그러므로 골절(骨節)의 길흉(吉凶)이 나누어 지는 것은 , 1) 진실로 앞의 사람이(前人) 길덕(吉德)이 있으나 자손(子孫)이 불초(不肖)가 있는 것은, 모든 자손(子孫)가운데 태식(胎息)에서 편탁(偏濁)한 기(氣)를 받은 것이 일인(一人)에 불과하니, 모든 자손 가운데 이와 같이 전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2) 그리고 전인(前人)이 잘못된 흉(凶)을 쌓았으나, 자손(子孫)중에 현자(賢)가 있는 것은, 이것은 반드시 모든 아들 중에 우연히 일인(一人)이 있는 것이고, 또한 전인(前人)이 행한 바가 역시 아직 빠르지 않아 이르지 않아 아름다울 뿐이다. 3) 그러므로 반드시 이러한 인생(人生)을 기다려 자손이 나오면, 이후에 가풍(家風)이 바뀌니 더욱 덕(德)을 쌓아야 한다. 또한 모든 술가(諸家)의 태식(胎息) 역시 역시 두 가지의 설이 있는데, 하나는 정혈(定穴) 할 때 논하는 태혈(胎穴)과 식혈(息穴)을 한다. 또 하나는 옛날 남자(男子)의 어부인(御婦人)이 이미 잉태(孕胎)를 받으면 부인은 다시 진어(進御)하지 않고 반드시 별거(別居)하며 휴식(休息)한다. 그리고 임신한 산실을 정한다. 그래서 아들을 태(胎)에 가진 부인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병(病)을 받지 않는다. 이것이 태전(胎前) 산후(産後)로 반드시 쉬면서 기르는(息養)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식(息)이다. 세상에서 소위 자식(子息)이라는 것은 태식(胎息)을 말 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음양(陰陽)이 화창(和暢)하고, 두 기(二氣)가 만나 합(合)하고, 혈정(血精)이 교구(交構)하면 남녀(男女)를 만든다. 정(精:男)이 혈(血:女)보다 먼저 다달아 양(陽)이 음(陰)을 이기면 남자(男子)가 되고, 혈(血:女)이 정(精:男)보다 먼저 다달아 음(陰)이 양(陽)을 이기면 여자(女子)가 된다.정(精)에서는 남자가 나오고, 혈(血)에서는 여자가 나온다. 바로 남자의 맥(男脈)이 먼저이면 즉 정(精)이 먼저 도달하여 혈(血)이 정(精)을 감싸니 남자가 된다. 여자의 맥(男脈)이 먼저이면 즉 혈(血)이 먼저 움직이니 정(精)이 혈(血)을 감싸 여자가 된다. 그러므로 건도성남(乾道成男), 곤도성녀(坤道成女)라 하였으니 천지 지리 역시 그러하다. 오성(五星)의 성(星)은 각기 음양(陰陽)으로 나눈다. 음양(陰陽)이 융회(融會)하고 화기(和氣)가 유창(流暢)하면 즉 변(變)하는 바는 반드시 길(吉)하고, 전(傳)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양(陰陽)이 이지러져 만나면 오성(五星)이 서로 상배(相配)하지 못하니 즉 이지러진 기(氣)의 변(變)하는 바가 반드시 흉(凶)이니 전(傳)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오성(五星)으로 용(龍)을 정(定)하면 즉 상생상극(相生相剋)과 화복(禍福)을 만에 하나도 잃지 않는다. 또 일반 술가(術家)의 용(龍)과 같지 않으니 억지로 구성(九星)으로 궁(宮)을 나누어 논할 필요가 없다. 천하에 어찌 두 가지 이치가 있겠는가? 이미 오행(五行)의 학문이 전하니 즉 잡스러운 다른 학문이 필요 없다. 만약 후인(後人)이 바야흐로 이러한 이름을 말한다면 즉 사지(史志)에 전(傳)하는 것을 살펴보아도 역시 이러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경(經)과 사료(史)에서 있는 것과 비교하여 칠성(七星)의 성(星)으로 선택한 것이다. 생기(生氣), 천의(天衣), 절체(絶體), 유혼(遊魂), 오귀(五鬼), 복덕(福德), 절명(絶命)등이니 구성(九星)은 세상을 기만하고 풍속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미(子微)는 취하지 않았다. 대개 길흉(吉凶)의 증험이 응(應)하는 것과, 오행(五行)이 합(合)하는 바는, 모두 섞이기 때문에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