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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47회 양택...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생가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본관은 영일(迎日, 지금의경상북도 포항시). 字 달가 호 포은(圃隱) 아버지 정운관(鄭云瓘) , 어머니 영천 이씨 부인.이다. 의종 때의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형양(滎陽)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으로 진현관제학을 지낸 정종흥(鄭宗興)의 5대손이며, 그의 고조부 정림(鄭林)은 판도판서에 이르렀고, 증조부 정인수는 검교군기감을 지냈고 증 개성부윤에 추증되었으며, 조부는 직장과 동정(同正) 등을 지냈다.
고려 충숙왕 때 뛰어난 외교가이자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평가받은 고려 말기의 충신.으로 초명은 몽란, 몽룡, 1367년 성균관이 중영되면서 성균박사에 임명돼 <주자집주>를 유창하게 강론, 당시 유종으로 추앙받던 이색으로부터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평가받았다.
얼마 후 왜구가 자주 내침해 피해가 심해지고 화친을 도모하기 위해 보내진 나흥유가 투옥됐다 돌아오자, 보빙사로 일본에 보내져 국교의 이해관계를 잘 설명해 일을 무사히 마치고 고려인 포로 수백 명을 구해 돌아왔다. 그러나 고려왕조를 부정하고 새로운 왕조를 개척하는 데에 반대해 뜻을 같이하던 이성계를 찾아가 정세를 엿보고 돌아오던 중 이방원의 문객 조영규 등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
그가 태어날 때 어머니 영천 이씨는 품에 안고 있던 난초 화분을 떨어뜨리는 태몽을 꾸고 낳았기 때문에 처음에 이름을 몽란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때 그의 부친 정운관이 꿈에서 중국의 주공( 주나라 문왕의 아들, 정치가)을 만나는 꿈을 꾸었는데 이 때문에, 후일 이름을 고칠 때 몽주라 하게 된다.
소년기 때 영일 청림동에서 외가가 있는 영천으로 이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정몽주는 1357년(공민왕 6년) 여름에 어사대부(御史大夫) 신군평(申君平)이 주관하는 감시(監試)에 합격하고 1360년(공민왕 9년) 10월 문과에서 세 번의 시험에서 장원 급제하였다.
● 포은 정몽주의 가족 관계 고조부 : 정림(鄭林) 증조부 : 정인수(鄭仁壽) 할아버지 : 정유(鄭裕) 아버지 : 정운관(鄭云瓘, 다른 이름은 운권 어머니 : 변한국대부인(卞韓國大夫人) 영천 이씨 부인 : 경순택주(敬順宅主) 경주 이씨(慶州李氏, 판사사(判事士) 이빈(李斌)의 딸) 증손녀 사위 이석형(李石亨, 1415년 - 1477년) 손녀 사위 선성군, 정종의 다섯째 서자, 이방원의 서조카 참고문헌:나무 위키
● 풍수적 고찰
포은 정몽주 생가는 도덕산(702m)에서 출맥한 용이 기복굴곡 (起伏屈曲)으로 서서진(西西進)하여 우항리에 이르러 빼어난 주산(主山)을 성봉한 후 위이굴곡(逶迤屈曲)을 하여 산진처에 이르러 임좌(壬子)로 횡룡(橫龍) 결작(結作)한 곳이다.
700여 년의 유구한 세월이 흘러 명확한 고증은 쉽지가 않지만 횡룡결작한 곳이라 생가의 뒤는 높지는 않다. 그래도 전체적인 국세는 평사낙안(平沙落雁)의 편안한 곳이다. 도덕산에서 발원한 물은 금성수로 생가를 감싸고 도니 인심(人心 또한 후덕(厚德)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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