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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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주암선생 문화탐방 38회... 애국을 몸소 실천한 남궁억(南宮檍) 선생.(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8회... 애국을 몸소 실천한 남궁억(南宮檍) 선생. [한국풍수신문] 한서 남궁억(南宮檍) 선생 유언." 내가 죽거든 무덤을 만들지 말고.과목(果木)밑에 묻어 거름이나 되게 하라."1934년 1월 26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정성껏 마련한 제물을 진설하고.남궁억(南宮檍) 선생에 禮를 표했습니다 예를 표한 후 기념. 남궁억[南宮檍.1863.12.27.1939.4.5]. 본관 함열 남궁씨 字 치만(致萬) 호 한서(翰西) 아버지 남궁영(南宮泳), 어머니 덕수 이씨. 배우자 양혜덕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자녀: 딸 남궁숙경, 남궁자경. 아들 남궁염 아버지 남궁영(南宮泳)과 어머니 덕수 이씨 사이에서 12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1894년 내부토목국장으로 파고다공원을 세웠다.1896년 2월 아관파천 후에 관직을 사임하고 1896년 7월 서재필, 이상재 등과 독립협회를 창립하였다. 1898년 9월 나수연, 유근 등과 황성신문을 창간하고 사장에 취임해 국민 계몽과 독립협회 활동을 지원하는데 힘을 쏟았다. 1905년 3월 고종의 간곡한 요구로 다시 관직을 맡아 성주군수로 부임했다. 그러나 1905년 11월 일본이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하자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왔다.1906년 2월 양양군수에 임명되자 애국계몽운동에 참가하였다. 1907년 일본이 헤이그 밀사사건을 이유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 7조약을 체결해 침략 정책을 강화하자 사임하고 애국계몽운동에 주력하였다. 1910년 8월 경술국치 이후 교육을 통한 구국 운동에 노력하여 1910년 10월 배화학당 교사가 되었다. 1933년 11월 개신교 계열 독립운동 비밀 결사인 '십자당'을 조직해 활동하다 홍천경찰서에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되어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노령이 참작되어 석방되었으나 1939년 4월 5일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 풍수적 고찰. 나라를 사랑하고.국민개봉활동에 전념하고 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 꽃을 누구보다 사랑한 한서 남궁억 선생 묘역은 장락산(629.5m)에서 북동으로 동진하여 회룡고조형국(回龍顧祖形局)을 취하였다. 우측에선 홍천강 모곡.수산 유원지 물이 주산을 감싸고 도는 형국이라 취기처가 분명하고 재혈이 합당하면 부귀가 기약되는 곳이다. 묘역은 3단으로 아름답게 조성되었지만 주산에서 낙맥하는 주(主) 기운은 청룡방으로 흐르고 묘소로 오는 기운은 작은 보백지지다. 주산은 암반으로 된 골산(骨山)의 문필봉인데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우측의 강물은 반배로 다가오니 비보(裨補)를 해야 한다. 조당과 안산은 유정하다. 좌향은 인좌신향(寅坐申向)과 곤신(坤申)사이의 공망이나 인좌신향(寅坐申向)에 경신(庚申) 분금으로 하면 좋다. 파구(破口)는 우수(右水)가 좌(左)로 흘러 정미(丁未)로 나가니 이는 양공(楊公. 834~900.唐나라 국사)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차고소수자생향(借庫消水自생向)이다. 차고소수자생향은 부귀하고 장수하며 인정(人丁)이 대왕한다. 차남이 먼저 발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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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7회... 강릉최씨(江陵崔氏) 중시조 최입지(崔立之) 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7회... 강릉최씨(江陵崔氏) 중시조 최입지(崔立之) 묘 최입지(崔立之)는 고려 후기의 문신.본관은 강릉. 자는 양필(良弼). 호는 성묵당(誠默堂). 시조 최흔봉(崔欣奉)의 12대손.으로 조부는 최군보(崔君甫), 父 최릉(崔陵)이다. 강릉최씨 평장공파(平章公派)의 시조이다. 원래 최입지(崔立之)는 최흔봉(崔欣奉)공을 시조로 하는 완산(完山)인이었으나 시조의 묘가 실전되었고, 시조로부터 12세손인 충숙공(忠淑公) 최입지가 강릉군에 봉해지면서, 그 후손들은 강릉을 관향으로 쓰게 되어 그를 중시조로 모시게 되었다. 말년에 혼란한 정국을 뒤로 하고 강릉 모산(母山)에 은거하여 후손이 여러 대에 걸쳐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하여 최입지가 살던 곳인 현재의 강릉시 장현동 모산의 지명을 평장동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개국 후 수태사태상(守太師太常)으로 증직. 세종 때에는 영의정(領議政)에 가증(加贈)되었다. 시호는 충숙(忠淑)이다. 최입지의 유허지는 강원도 강릉시 장현동 모산.에 최입지구지기적비(崔立之舊址紀蹟碑)가 있다, (참고문헌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강릉최씨 종친회) ● 풍수적 고찰 태백산맥의 오대산(2563m)에서 발조한 용은 동남향으로 기복굴곡(起伏屈曲)을 하고 다시 정동쪽으로 위이굴곡으로 행도하다 서진(西進)하여 소목고개를 지난 후 정좌하였는데 좌향(坐向)은 묘좌유향(卯坐酉向)을 하였다. 형국은 백호 작국으로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다. 혈형(穴形)은 유혈(乳穴)로 혈장(穴場)은 장유(長乳)다. 용호(龍虎)은 부모가 자식을 감싸 안듯 유정하다.. 안산(案山)은 부부가 밥상을 두고 사이좋게 앉듯이 아담하면서 다정다감한데 조산(朝山)은 약간 사비(斜飛)인 것이 아쉽다. 앞에 고속도로 개설로 인해 옛 모습인지 불분명하기도 하다. 조당(朝堂)은 작지만 알차다. 파구(破口)는 정미파(丁未破)다. 양공(楊公. 834~900.唐 국사)의)의 88향법에 의하면 이는 향상(向上)으로 관대방(冠帶方)을 충파하니어린 유년기의 총명한 자식이 상하고 또 규중의 부녀와 딸들이 상하면서 재산이 패하여 오래되면 패절하니 유의해야 할 향법중의 하나다. 고려 후대의 인물이라 그때는 파구의 개념이 보편화되지 않아서 크게 개의치 않았으리라 본다. 참고로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장안골 뒷산 고성산(古城山)에는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의 명혈로 알려져 왔으며, 금산리라는 지명도 거문고에서 따와 금산(琴山)이라 했다가, 나중에 강릉 김씨들이 많이 산다 하여 금산(金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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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6회... 원신(元愼) 장군 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6회... 원신(元愼) 장군 묘. 원신[元愼.1551년 (명종 6)) ~]장군은 자(字) 신재(愼哉). 본관 원주(原州). 거주지 한성([京]). 엄시하(嚴侍下)에서 선조(宣祖) 16년(1583) 계미(癸未) 알성시(謁聖試) 병과(丙科) 20위(46/101)에 합격하였다.통정대부 행 남원도호부사 겸 전라도방어사(通政大夫 行 南原都護府使 兼 全羅道防禦使) 부(父)는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동지의금부사 행 의교랑안기도찰방 (曾 嘉善大夫 戶曹參判 同知義禁府事 行 宜敎郞安奇道察訪) 원영세(元永世.)다. 형(兄) : 원척(元惕) 제(弟) : 원개(元愷) 제(弟) : 원제(元悌) ● 풍수적 고찰. 장구봉(300m)에서 임자(壬子)로 지현굴곡을 하여 다시 경유(庚酉)룡으로 행도하여 간인룡으로 입수하였다. 혈형(穴形)은 장유(長乳)다. 내룡맥과 당판(當坂)로 봐서는 취기(聚氣)가 된 것처럼 보이나 백호사(白虎沙)가 비주(飛走)를 하고 보호를 못 해주니 흘러내리는 과룡(過龍)에 모양새만 취기된 당판처럼 보이는 보백지지(保魄之地)’ 로 봐야 한다. 골과 도로가 반배를 하니 재물 또한 취적이 쉽지 않는 곳이다. 재실은 묘역 아래에 있는데 현대식이다. 좌향(坐向)은 인좌신향(寅坐申向)에 경유파(庚酉破)다. 만약 경파(庚破)라면 양공(楊公. 834~900.唐 국사)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문고소수(절처봉생향)다. 書에 말하는 녹존류진패금어(祿存流盡佩金魚ㅡ녹존방으로 물이 나가면 벼슬을 한다. )라는 말이 이것이다. 이는 부귀하여 복수쌍전하지만 약간이라도 차질이 있으면 패절하니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다만용진혈적. 천간자파구. 백보전란.을 해야만 사용 가능하니 신중을 기해야 하는 수법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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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35회 ... 최규하 전 대통령 부모 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35회 ... 최규하 전 대통령 부모 묘. ● 최규하(崔圭夏, 1919년 7월 16일~2006년 10월 22일)는 대한민국의 제10대 대통령이다. 제4공화국의 2번째 대통령이며, 대한민국 최초의 국무총리 출신 대통령이었다.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호는 현석(玄石)이다. 1945년부터 경성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미 군정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발탁된 이후, 정부수립 후 농림부에서 근무하다가 외무부로 발탁되면서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1967년에 외무부 장관에 발탁됐다. 1976년 3월 13일 국회의 동의를 거쳐 국무총리가 됐으며, 10.26 사건으로 대통령 박정희가 사망하자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1979년 10월 27일부터 1979년 12월 6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1979년 12월 6일부터 1980년 8월 16일까지 군부 실권하의 대통령으로 재임하였다.아버지 : 최양오 (崔養吾, 1897.4.21~ 1973.8.26)어머니 : 이응선 (李應善, 1899.10.11 ~ 1983.5.2) ● 풍수적 고찰. 봉산(232.4m)에서 출맥한 용은 기복굴곡으로 북동진하여 을진(乙辰) 정미(丁未)로 행도하여 갑묘(甲卯).간인룡(艮寅龍)으로 횡룡(橫龍)으로 입수하였다. 산진처에 자리를 잡은 당판은 크지 않지만 아담하면서도 취기가 제대로 된 옹골찬 멋진 명당국이다. 다만 백호(白虎)가 낮게 호위하여 백호방이 허약한 게 아쉽다. 청룡도 낮게 부복(俯伏)한 자세라 용호로 보아 겸손의 미덕을 추구하는 자손 들이겠는데 묘역 관리에도 좀 더 신경을 쓰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좌향(坐向)은 인좌신향(寅坐申向)에 경유파(庚酉破)로 양공(楊公. 834~900.唐나라 국사)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문고소수. 이는 서(書)에 말하는 녹존류진패금(祿存流盡佩金魚ㅡ녹존방으로 물이 나가면 벼슬을 한다)라는 말이 곧 이것이다. 부귀하여 복수쌍전하지만 약간이라도 차질이 있으면 패절하니 함부로 사용할 수 없으며 용진혈적.천간자파구.백보전란.을 해야만 사용 가능하니 신중을 기해야 하는 수법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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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4회... 이기(李墍.) 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4회... 이기(李墍.) 묘 이기[李墍.1522년(중종 17) ~ 1600년(선조 33)]는 대사헌, 지돈녕부사, 예조판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한산(韓山.지금의 충청남도 서천))이다. 자는 가의(可依). 호는 송와(松窩). 장윤(長潤)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질(秩)이다. 아버지는 지란(之蘭)이며, 어머니는 원선(元璿)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시서에 능했다. 1555년(명종 10)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7년 수찬(修撰)을 역임한 뒤 전한(典翰)이 되어 편수관으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화군 보(順和君0x9A45)를 보필하면서 강원도에 내려가 의병을 모집하였다. 지중추부사·대사헌·지돈녕부사·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죽은 뒤 1603년에 2품 이상 재신을 청백리로 뽑는데 녹선되었고, 그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그가 대사헌으로 있을 때 종로 네거리를 지나는데 말이 너무 말라 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는 개의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훗날 말이 피곤해 땅에 주저앉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대사헌의 말’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그는 이처럼 청빈하여 한사(寒士)나 다름없이 직책을 맡아보았다. 시호는 장정(莊貞)이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풍수적 고찰 월림산(200m)에서 발조하여 庚酉龍로 기복굴곡으로 서진하여 중조봉을 이룬 후 丙午로 방향을 틀어 乾亥龍으로 입수를 하였다 국세는 백호가 안아주지 못하고 약간 비주하는 모양새이기는 하나 대체적으로 편안하며 안정적이다. 당판 크고 옹골차다.묘역을 잡다한 돌들로 산민하게 쌓아 놓았는데 생각보다 높지는 않아 다행이고 짐승들의 침입을 막는 비보(裨補)로 보는 것이 타당할듯하다. 주산은 금성체로 후부(後富)한데 묘 좌측으로 근자에 들어선 고압선이 지나고 있어 찾아오는 후손들에 피해가 갈까 두렵다. 좌향(坐向)은 건좌손향(乾坐巽向)에 파구(破口)는 병오파(丙午破)로 문고소수(文庫消水)이다 문고소수(文庫消水)는 양공(楊公)의 진신수법으로 書에서 녹존유진패금어( 祿存有盡佩金魚)라는 말이 이것이다. 즉 부귀(富貴)하여 복수쌍전(福壽雙全)하지만 역간이라도 차질이 있으면 패절(敗絶)하니 가벼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으며 용진혈적(龍眞穴的)해야 무방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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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3회... 조엄(趙曮) 해사일기(海槎日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3회... 조엄(趙曮) 해사일기(海槎日記) 조엄[趙曮.1719년(숙종 45년) ~ 1777년(정조 1년)]은 조선후기 공조판서, 이조판서,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명서(明瑞), 호는 영호(永湖). 조중운(趙仲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도보(趙道輔)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조상경(趙商絅)이다. 어머니는 이정태(李廷泰)의 딸이다. 1738년(영조 14) 생원시에 합격, 음보로 내시교관(內侍敎官) · 세자익위사시직(世子翊衛司侍直)을 지내고, 1752년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1763년 통신정사(通信正使)로서 일본에 다녀온 뒤, 대사간 · 한성부우윤, 예조 · 공조의 참판 및 공조판서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770년 평안도관찰사로 파견되어 감영의 오래된 공채(公債) 30여 만냥을 일시에 징수하는 등 적폐(積弊)를 해소하는 수완을 보였다. 그러나 토호세력들의 반발로 탐학했다는 모함을 받아 평안도 위원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아들 조진관(趙鎭寬)의 호소로 죽음을 면하고 김해로 귀양이 옮겨졌으나 실의와 불만 끝에 이듬해 병사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경사(經史)에 밝았을 뿐만 아니라 경륜(經綸)도 뛰어났다. 민생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서 남긴 업적이 적지 않다.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가져오고 그 보장법(保藏法)과 재배법을 아울러 보급, 구황의 재료로 널리 이용되게 했던 점은 후세에 공덕으로 크게 기려지고 있다. 저서로 통신사로서 일본을 내왕하며 견문한 바를 적은 『해사일기(海槎日記)』가 전하고 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풍수적 고찰 고구마를 가져와 구황작물로 자리잡게 한 조엄선생의 묘역은 어떤가? 부길산(150m)에서 행도를 시작한 용(龍)은 정미(丁未)로 기복굴곡(起伏屈曲)을 하여 경유(庚酉)룡으로 힘차게 달려와 잠시 숨고르기를 한 후 낙맥을 하고 과협처를 거쳐 정미(丁未)로 입수를 하였다. 주산은 준수하고 백호는 주인에게 예로써 호위를 하고. 청룡은 주인에게 예를 갖추는 것처럼 보이다가 이내 기념관 쪽으로 달려간다. 안산은 단아한 자태로 주인을 향해 있다. 내룡에 비해 당판은 옹골차지 못한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좌향(坐向)은 축좌미향(丑坐未向). 파구(破口)는 곤파(坤破)다. 이는 양균송 선사의 88향법의 정묘향(正墓向)에 해당된다. 관대룡.우선룡에 좌선수(左水到右-水가 絶방으로 나감) 정미향에 곤신파는 書에 이르길 정곤종시만사상[丁坤終時萬斯箱(정향을 하고 곤방으로 물이 나간다면 큰 부자가 된다는 향이다).] 이는 발부발귀(發富發貴.인정대왕(人丁大旺). 복수쌍전(福壽雙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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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2회 원충갑(元沖甲) 장군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뮨화탐방 32회 원충갑(元沖甲) 장군 [한국풍수신문] 원충갑(1250~1321)은 고려의 무신으로 1250년 중원도(中原道) 원주(현 강원도 원주시)에서 아버지 원민성(元敏成)의 무녀독남, 4대 독자로 태어났다. 지방의 계수관시(界首官試)에 합격하여 향공(鄕貢)이 되었으며, 이어 국자감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고향인 원주의 별초(別抄)에 들어가 무관으로 근무했다.본관은 원주고, 시호는 충숙(忠肅)이다.향공진사(鄕貢進士)로 원주별초(原州別抄)에 있으면서 1291년(충렬왕17) 합단적(哈丹賊)이 치악성을 포위하자,전후 10차에 걸쳐 적을 크게 무찔렀다. 원충갑의 이러한 공로로 원주는 익흥도호부로, 다시 1308년 원주목(原州牧)으로 승격되었고,원주에 부과되던 각종 부역과 잡공이 3년 동안 면제되었다.원충갑 또한 여섯 번 전임하여 삼사(三司)우윤(右尹)에 올랐다. 충선왕 때 응양군 상호군이 되었고, 합단적을 물리친 공으로 1319년(충숙왕 6) 추성분용정란광국공신이 되었다.원충갑은 충숙왕 8년 나이 72세에 생을 마감하였다. 치악산 영원산성 안에 원충갑사가 세워져 제사를 모시다가 1669년(현종 10) 사당을 세워 원충갑을 주향하고 김제갑과 원호를 배향하였고, 1670(현종 11) 윤 2월 7일 충렬사로 사액되었다. (출처: 원주시청)강원도 문화재자료 제 138호 ● 풍수적 고찰. 원충갑(元沖甲) 장군 묘역은 한강기맥으로 백운산에서 발조하여 월림산(225m)의 소조봉을 성봉 한 후 경유(庚酉)ㅡ신술(辛戌) 용으로 지현굴곡(之玄屈曲)으로 달려와 과협을 이루고서 위이(逶迤)을 하여 취기처에 준수한 용신산을 앞에 두고 좌정하였다. 당판(當坂)은 크기에 비해 옹골차며 취기는 물론 재혈에도 제대로 된 곳이다 다만 좌우 용호사(龍虎沙)가 주인에게 예를 다 갖추지 못한 것이 흠이다. 안산은 반갑게 주인을 맞이하는 국세다. 좌향(坐向)은 8층 천반으로 진좌술향(辰坐戌向)에 건해파(乾亥破)로 左水가 右로 흐르니 이는 양공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화국(火局)의 정묘향(正墓向)이다. 정묘향은 인물인 귀(貴)보다는 재(財)로 주로 3남이 혜택을 많이 보는 방위로 발부발귀(發富發貴)와 인정대왕(人丁大旺). 복수쌍전(福壽雙全).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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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1회... 한승수 전 총리 생가.주암선생 문화탐방 31회... 한승수 전 총리 생가. [한국풍수신문] 한 인물을 배출하는 데에는 여러 요소가 있는데 그중의 제일은 지기(地氣)의 영향이다. 옛말에 인걸은 지령(人傑地靈)이라고 했다. 즉 사람은 땅의 기운(氣運=地氣)의 영향을 받고 산다. 먼저 음택(陰宅)의 영향이다. 조상의 음택이 지기(地氣).천기(天氣).조응기(照應氣). 형상기(形象氣)가 좋으면 조상과 자손의 동기감응(同氣感應) 으로 훌륭한 자손이 태어난다. 조상의 음택이 좋으면 ㄱ.좋은 컨디션 유지 ㄴ.매사에 자신감 ㄷ.종사하는 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ㄹ.적덕을 쌓게끔 하여 ㅁ.좋은 배우자 만나고 ㅂ.최상의 컨디션 상태에서 수태. ㅅ.최적의 태교가 되어 ㅇ.큰 인물이 될 사주팔자를 갖고 태어난다. 다음은 양택(陽宅 -거주 공간)의 영향이다. 양택이 지기(地氣).천기(天氣).인기(人氣).조응기(照應氣). 형상기(形象氣)가 좋으면 ㄱ.좋은 컨디션 유지 ㄴ.매사에 자신감 ㄷ.종사하는 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ㄹ.적덕을 쌓게끔 하여 ㅁ.좋은 배우자 만나고 ㅂ.최상의 컨디션 상태에서 수태. ㅅ.최적의 태교가 되어 ㅇ.큰 인물이 될 좋은 사주팔자를 갖고 태어난다. ㅈ.건강한 생활유지. ㅊ.사회생활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ㅌ.입신양명(立身揚名)한다. 양택(陽宅)의 생명은 취기처(聚氣處)보다는 ㄱ.사세(四勢)가 갖춰지고 ㄴ.지기(地氣).천기(天氣).인기(人氣).조응기(照應氣). 형상기(形象氣)가 좋아야 하고 .좌향(坐向)이 어긋나지 않고. ㄷ.택주(宅主)와 궁합이 맞아야 하고. ㄹ.인심(人心)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 ㅁ.물길.도로.길..등이 반배하지 않아야 한다. 양택삼요의 1.배산임수(背山臨水) -뒤는 적당한 높이의 산이 병풍처럼 있고. 앞은 물이 금성수로 흐르는 곳이면 좋다. 2.전저후고(前低後高) -집 앞은 집과 터보다 낮아야 하고 집 뒤는 적당한 높이가 되어야 좋다. 3.전착후관(前窄後寬)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넓지 않으면서 좁아야 하고 집 안쪽은 좁지 않은 넓은 곳이어야 좋다. 천연 재물이 모이는 조당을 물길이 금성수로 감싸고 돌면 금상첨화다. 한승수 전 총리의 생가는 위의 조건을 다 충족한다. 주산은 장군봉(188.1m)에서 출맥하여 간인룡(艮寅龍)으로 달려와 아담한 금성체의 소원봉을 성봉하여 생가로 입수하고 있으니 지기(地氣).천기(天氣).인기(人氣).조응기(照應氣). 형상기(形象氣)까지 좋아 후세의 권력까지 기약을 한다. 집 앞의 조당과 의암호는 후한 인심(人心) 말해주고 있다. 집의 좌향(坐向)은 신좌을향(辛坐乙向)에 손사파(巽巳破)로 정묘향이다. 이는 관대룡.우선룡에 좌선수(좌수도우-水가 絶방으로 나감)로 書에 이르길 을향손류청부귀[乙向巽流淸 富貴(을향을 하고 을방수가 손방으로 물이 나가면 부귀한다.)]라 하여 발부발귀(發富發貴)하고 인정(人丁)이 대왕하며복수쌍전(福壽雙全.)한다. PS 한승수(韓昇洙, 1936년 12월 28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39대 국무총리로 춘천군 출생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학 석사, 요크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대한민국 육군을 중위로 전역하였다. 2001년 제56차 유엔 총회에서 의장을 맡았다. 2008년 국무총리로 재임하였다. 2022년 10월 25일 유엔총회의장협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참고문헌 위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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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30회... 의병장 류인석(柳麟錫)주암선생 문화탐방 30회... 의병장 류인석(柳麟錫) [한국풍수신문] 류인석[柳麟錫. 1842년(헌종 8)~1915년]은 대한제국기 정미7조약 체결 후 연해주에서 13도창의군의 도총재로 활약한 의병장. 위정척사론자로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菴). 강원도 춘천 출신.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으로 14세 때 족숙인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 1865년 만동묘철폐(萬東廟撤廢)와 1868년 병인양요로 대내외적 위기의식이 고조되어 갈 무렵에 이미 사상의 기본적인 틀을 형성하였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때 홍재구(洪在龜)등 강원도·경기도 유생 46인과 함께 척양소(斥洋疏)를 올려개항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1895년 12월 24일(음력) 의병항전을 개시하였다. 유인석 의병진은 한때 3,000명을 넘었으며, 제천·충주·단양· 원주 등지를 중심으로 한 중부지역 일대를 석권하면서 친일적인 관찰사나 군수 등 ‘토왜(土倭)’들을 처단하여 기세를 크게 떨쳤다. 1910년 6월 연해주 의병세력의 통합체인 13도의군(十三道義軍)의 결성을 보게 되었으며, 이상설·이범윤·이남기(李南基)등에 의하여 도총재(都總裁)로 추대되었다. 유인석은 이때 「통고13도대소동포(通告十三道大小同胞)」라는 포고문을 반포, 전국민이 일치단결하여 최후의 항일구국전을 벌일 것을 주장하였다. 풍수적 고찰 주산이 반듯하지 못하고 한쪽이 잘려나가 반쪽이다. 백호는 그런대로 주인응 향해 읍하는데 청룡은 허하여 불어오는 곡풍을 막아내지를 못하고 있다. 주산에서 급하게 내려온 용맥은 취기처를 찾지 못하고 조당으로 퍼져 나가 사그러진다.안산은 높지만 나름대로 주인을 향해 읍하지만 성에 차지를 않지만 백호가 입구를 봉쇄하니 외부의 침입이 용이하지 않아 의병 훈련장으로는 최적지다. 좌향(坐向)은 술좌진향(戌坐辰向).경진분금(庚辰分金). 左水가 右로 흘러 손사방(巽巳方)으로 나가니 양공의 88향법상의 수국(水國)의 정묘향(正墓向)이다. 정묘향(正墓向)는 발부발귀(發富發貴)하고 인정대왕(人丁大旺)하며 복수쌍전(福壽雙全)까지도 한다. 또한 묘고 장지(墓庫藏地)라 주로 귀(貴)보다는 부(富)로 큰 부자가 된다는 향이니 자식으로 봐서는 주로 막내쪽.이고 재물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선호하는 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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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29회...김우명(金佑明) 묘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29회...김우명(金佑明) 묘 김우명[金佑明.1619년(광해군 11)~1675년(숙종 1)]은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정(以定). 군자감판관 김비(金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김흥우(金興宇)이고, 아버지는 김육(金堉)이며, 딸은 현종의 비이다. 1642년(인조 20) 진사시에 합격하여, 강릉참봉·세마(洗馬) 등을 역임하였다.1659년 현종이 즉위하자 국구(國舅)로서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에 봉하여졌다. 1616년 영돈녕부사가 되고 이어 오위도총관과 호위대장을 겸직하였다. 송시열(宋時烈)과 같은 서인이었으나 민신(閔愼)의 대부복상문제(代父服喪問題: 실성한 아버지 대신 손자가 상주가 된 것에 대한 대립문제)를 계기로 남인인 허적(許積)에 동조. 또한, 숙종 초에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복평군(福平君) 이남(李枏) 형제가 궁중에 드나들면서 궁녀들을 괴롭힌 사실을 들어 이들의 처벌을 상소하였다. 그 뒤 남인 윤휴(尹鑴)·허목(許穆) 등과 알력이 심하여짐으로써 벼슬을 그만두고 두문불출하였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풍수적 고찰 계관산(664.7m)에서 출맥한 용은 남서로 기복굴곡을 하여 수십리를 달려와 병오룡(丙午龍)으로 입수(入首)를 하였다. 좌우 용호는 주인을 편하게끔 순하게 호위를 하고 안산은 북한강 건너편에 있어 좀 멀다는 느낌이 든다. 급하게 내려오다 좌정(坐定)한 당판은 귀신이 잡아 줬다고 하는 전설(傳說)이 있는데 구첨이 뚜렷하지가 않아 아쉽다. 좌향(坐向)은 임좌병향(壬坐丙向ㅡ천반봉침)이다. 파구(破口)는 내파(內破)로 보면 左右水 합수(合水)하여 당문출수(當門出水)다. 외파(外破) 정미파(丁未破)로 이는 당(唐)의 국사인 양균송((楊筠松.-834~900)의 진신수법의 하나인 차고소수자왕향(借庫消水自旺向)이다. 차고소수자왕향(借庫消水自旺向)은 임관룡(壬官龍).우선룡(右旋龍)에 좌수도우(左水到右). 병오향(丙午向)에 정미파(丁未破)로詩의 유유쇠방가거래[惟有衰方可去來(쇠방으로 물이 나가도 되고 들어와도 좋다)]에 합당하여 발부발귀(發富發貴)하고. 인정대왕(人丁大旺)을 하며 장수(長壽)하는 좋은 향법이다. 간방수가 들어오면 삼길육수의 水가 되어 비상한인재와 문장이 나고 급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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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28회...한백록(韓百祿) 장군 묘주암선생 문화탐방 28회...한백록(韓百祿) 장군 묘 [한국풍수신문] 한백록(韓百祿, 1555년∼1592년)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수지(綬之)이다. 한경인(韓敬仁)의 손자이며, 한굉(韓硡)의 아들이다 진잠현감, 지세포만호, 부산진첨사를 역임했으며, 임진왜란 때 경상우수사 원균과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휘하에서 옥포, 합포 해전에 참전했으며, 미조항 싸움에서 전사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풍수적 고찰 북배산(869.6m)에서 出龍하여 기복굴곡을 하여 甲卯.ㅡ乙辰ㅡ巽巳龍으로 와 임좌로 좌정하였다. 좌향(坐向)은 임좌병향(壬坐丙向).신사분금(辛巳分金). 파구(破口)는 1파는 병오파(丙午破)로 당문출수(當門出水).다. 2차는 사파(巳破).로 임관(臨官)을 충파하는 살인대황천.이다. 국세는 안정적이나 교쇄는 주밀(周密)하지 못한것이 아쉽다. 당판은 보통으로 옹골찬 모습으로 보이나 취기는 당판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당문출수(當門出水).가 합법(合法)이 되려면 ㄱ. 용진혈적(龍眞穴的)해야 한다. ㄴ. 천간자 파구여야 한다 ㅡ右水가 左로 흘러 향상의 丙字로 나가며 午字를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ㄷ.백보전란(百步轉欄)해야 한다. 당문출수(當門出水).가 합법이면 대부대귀(大富大貴)하고 인정(人丁).이 흥왕(興旺)한다. 다만 장후(葬後)에 수(壽)를 다하지 못한 자가 생길 수도 있고 어린 과부가 가끔씩 나니 용진혈적(龍眞穴的)하지 않을시에는 사용하면 안된다. 백보전란으로 간주하기에는 조금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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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27회... 조선 8대 명당의 하나 신숭겸(申崇謙)장군 묘주암선생 문화탐방 27회 조선 8대 명당의 하나 신숭겸(申崇謙)장군 묘 [한국풍수신문] 신숭겸[申崇謙 .882년(헌강왕 6) ~ 927년(태조 10)]. 본관 평산.곡성군 출신. 초명 능산(能山). 사당 지묘사(智妙寺) 가족ㅡ형제 신능길(申能吉). 아들 신보장(申甫藏) 고려 초기의 장군이자 개국공신. 평산 신씨의 시조. 공신호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시호 개국장절공(開國莊節公) 초명은 능산이며 체격이 장대하고 용맹했으며 홍유, 배현경, 복지겸 등과 함께 기병대장으로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왕으로 추대해 고려를 개국하였다.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과 공산 동수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때 군사를 이끌고 참여했다가 형세가 위급해지자 원보 김락과 더불어 싸우다가 전사했다. 신숭겸은 곡성현 출신으로 왕건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며 고려를 건국한 개국 1등공신이다. 이후 왕건에게서 신(申)씨를 사성받고 숭겸(崇謙)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신숭겸의 활솜씨가 뛰어났는지 함께 황해도 평산으로 사냥을 나간 왕건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가리키며 "저 기러기 떼 중 앞에서 세 번째로 가는 기러기를 맞춰 보라."라고 명하자 화살을 쏴서 기러기를 떨어뜨렸다는 일화가 남아 있는데 이 이야기가 평산 신씨의 본관이 평산이 되는 유래이다. 왕건이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전했던 공산 전투에서 후백제의 견훤에게 참패하고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왕건의 투구와 갑옷을 빌려 입고 미끼가 되어 후백제군을 유인해, 왕건은 일반 군졸의 옷을 입고 탈출하는데 성공하여 신숭겸의 희생 덕분에 왕건은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 훗날 참수된 신숭겸의 시신은 왼쪽 발 밑에 북두칠성 모양의 사마귀가 있다는 것을 근거로 겨우 찾았지만 머리는 끝내 찾지 못해서 왕건은 황금으로 머리를 만들고, 미리 정해둔 자신의 신후지지(身後之地)에 매장해주었다. 신숭겸의 무덤은 봉분이 3개인데 머리를 대신한 황금 두상을 지키고자 이렇게 했다고 전한다. 신숭겸의 묘는 총 열 개인데, 도굴을 두려워하여 구월산과 신숭겸이 전사한 팔공산에 각 세 개의 가묘를 지었고, 두 개의 도굴방지용 가묘를 포함한 세 묘가 있는 춘천에는 신숭겸의 몸이 묻혀 있고, 전남 곡성군 태안사에는 신숭겸의 머리가 묻혀 있다. 중국 허창에는 목이, 당양에는 몸이 묻혀 있는 관우와 비슷한 셈이다. 여담으로 춘천에 있는 신숭겸 장군묘는 풍수지리학적으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당 중에 하나라고 한다. 태안사에 몇 가지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신숭겸의 애마가 신숭겸의 목을 들고 여기까지 와서 3일을 울다가 굶어 죽었다고 하며, 목과 말을 묻고 장군단이라 하여 매년 3월 16일에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호환이 일어나는 등 사찰에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참고문헌 : 나무위키) PS 조선 8대 명당중의 하나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묘는 북배산(869.6m)에서 발조한 용으로 신술(辛戌) 건해(乾亥) 룡으로 금성체의 주산을 성봉을 한 후 입수처에서 다시 甲과 丙으로 요동을 치며 술룡으로 입수하여 좌정하였다. 조당(朝堂)은 천군만마(千軍萬馬)를 능히 거느릴 수 있고 용.호(龍.虎)는 원근(遠近)에서 주인을 호위하니 편안하기 그지없다. 좌향(坐向)은 술좌진향(戌坐辰向)에 左水가 흘러 巽巳方으로 나가니 양공의 88향법상의 수국(水國)의 정묘향(正墓向)이다. 이는 발부발귀(發富發貴)하고 인정대왕(人丁大旺)하며 복수쌍전(福壽雙全)까지도 한다. 또한 묘고 장지(墓庫藏地)라 주로 귀(貴)보다는 부(富)로 큰 부자가 된다는 향이니 자식으로 봐서는 주로 막내쪽.이고 재물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선호하는 향이다. 또한 발부발귀(發富發貴)하고 인정대왕(人丁大旺)하며 복수쌍전(福壽雙全)까지도 한다. 국세는 대국으로 청룡(靑龍) 안산(案山)으로 청룡작국이다. 급하게 달려온 용은 취기처에 단정히 좌정하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안산과 조산(朝山)이 중중(重重)이라 많은 후손들이 각지에서 두각을 나타내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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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26회...해우소(解優所)와 상생(相生)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26회...해우소(解優所)와 상생(相生) [한국풍수신문] 해우소(解優所)는 뒷간. 측간. 화장실.등을 말하는데 이는 지기(地氣)와 천기(天氣)가 가득한 음식을 섭취하여 영양분을 흡수하고 배설하는 곳으로 마치 소우주의 마지막 여행 처이기에 ‘마음속의 근심을 풀어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남김없이 버리라는 뜻이지요. 영월 장릉 근처 보덕사(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110)의 경내 밖에 강뭔 문화재 제 132호 해우소가 있다. 근자에 보기 드물게 한 계단 두 계단의 돌계단을 올라 가야만 일을 보게끔 되어 있는데 이는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겨 있고 또한 연한(年限)이 무려 141년이 넘어서고 있어 아주 희귀한 건물이 아닐 수 없다. 보덕사 해우소는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은 양인 남자가 들어가 해우(解憂) 하게끔 해놨고. 왼쪽은 음인 여자가 들어가 해우(解憂) 하게끔 해 놨다. 실지 예전엔 배설물을 가장 좋은 거름으로 여겨 1.사고팔기도 하였고. 2.동물이나 뱀…….등 벌레나 해충 등을 피하고자. 3.기타 위생적인 부분. 등을 고려하였기에 평지보다 더 높게 한 것이었죠. 이는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죠. 옛말에 뒷간과 사돈집은 멀수록 좋고 '뒷간과 우물. 뒷간과 부엌은 떨어져 있어야 좋다'고 해서 한옥이나 초가집에서는 뒷간을 본채와 떨어지게 지었으며 지을 때에도 동토(動土=동티)가 없게 길일을 택해서 지었다. 실지 집안에서 가장 음기(陰氣)가 많이 발생하는 곳이 해우소다. 그래서 가능하면 주거공간에서 좀 떨어지는게 좋은데 요즘은 수세식으로 위생을 강화해서 실내에 설치해 편리함을 더 우선시한 세상이 됐죠. 만약 해우소에서 해우(解憂)하다가 넘어지거나 쓰러지면 음기(陰氣)가 강한 곳이라 대부분 사망에 이르렀기에 바닥은 미끄러지지 않게 마찰이 있는 것으로 해야 하고. 조명은 밝게 해야 하며.노인이 거주할 시는 문턱을 높여서는 안 되고 손잡이가 있게끔 하는 게 좋다. 사회가 다변화되다 보니 각계각층의 이해 충돌이 있고 개인간 에도 얽힌 감정이 있어 1.밝은 세상. 2.건전한 사회. 3.건강한 삶이 되는 데 있어 걸림돌이니 혹여 조금이라도 맘속에 담고 있거든 해우(解憂)와 해원(解寃)하시어서 상생(相生)하는 관계가 되기를 고대해봅니다 PS 1.뒷간 ㅡ뒷간은 뒤를 보는 곳을 가리키는 말. 2. 통시 ㅡ뒷간에서 돼지를 키우던 옛 풍속에서 비롯된 말이다. 3.측간(厠間)ㅡ측(厠)‘厂’은 ‘바위 아래의 사람이 기거하는 굴’로 사람의 분뇨를 배설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 4.해우소(解優所) ㅡ사찰에서 말로‘근심을 푸는 곳으로 번뇌 망상을 남김없이 버리라'는 뜻이다. 5.화장실(化粧室)ㅡ대소변을 배설하고 손을 씻거나 화장 따위를 고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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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25회...어음정(御飮井)과 생명수(生命水)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 25회...어음정(御飮井)과 생명수(生命水) 단종(1441~1457}은 12살 때인 1452에 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3년만인 1455년 숙부인 수양대군(세종의 2남이자 문종 동생)에게 왕위를 찬탈당해 결국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1457.6.22(陰)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길에 오르죠. 한여름 삼복더위의 불볕더위 속에 50여 명의 군졸들과 원주 치악산.황둔을 거쳐 솔치재를 넘는 심정은 말로 이루 표현하기가 어려웠을 터.... 솔치재를 넘던 중 조그마한 샘터를 발견하고서 목을 축이니 이보다 더 감미롭고 시원한 청량제가 어디 있을까? 실지 단종이 목을 축인 후 감로주(甘露酒) 같다고하였다. 하며 마신 샘이 있는 곳은 물미.라는 지명이 붙여졌고.샘터는 임금이 마셨다. 하여 어음정(御飮井) 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풍수적 고찰.어음정 주변은 국세가 잘 갖춰진 곳이다. 전형적인 와혈형이다. 와혈의 핵심은 우각사(牛角砂)이고 미돌(微突)이다. 와혈형에 미돌이 없다면 십중팔구 수렁에 빠지기 쉽다. 어음정주변은 미돌이 없어 수렁이다. 실지 습지에 능수버들 나무가 산재해 있다. 물은 깨끗하면서 시원할 건데 물맛을 못 보게 해놓아 아쉬움이 남는다. 좌향은 경유좌로 동향이다. 관광지나 역사 유적지로 할려면 두레박이라도 설치 해놓아 물맛도 볼 수 있게끔 하고.또 잠시 사색이나 쉬어 갈 수 있는 벤치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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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한국풍수신문, 주암선생 문화탐방24회...동원 이강릉(同原異岡陵)의 선산 김씨 묘역주암선생 문화탐방24회, 동원 이강릉(同原異岡陵)의 선산 김씨 묘역 [한국풍수신문] 동원이강'이란 본 줄기는 같은{同} 언덕{原}인데 마지막 취기처에 이르러 갈라져 다른{異} 두 줄기의 언덕{岡}에 취기가 형성되어 봉분(封墳)을 조성하는 형식을 말하는데 선산김씨 묘역이 딱 그런 경우다. 본줄기맥에는 통훈대부 창평현령 김윤옥(金潤屋)묘를 비롯하여 서천군수 김여석(舒川郡守金汝錫)과 김여석의 배위 원주이씨.매수공(梅叟公) 김이명의 묘가 상하의 종대로 조성되어 있고. 좌측 이강릉에는 충좌위사지 김세지.-절충장군 첨지중추 부사(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김계하(金繼賀). 김도장(金道長'登武科).김의근묘가 상하의 종대로 있다. 선산김씨 묘역은 춘천시 동면 구봉산(九峰山-441m)에서 을진(乙辰).손사(巽巳)룡으로 행도하여.정미(丁未). 병오(丙午)룡으로 횡룡하여 다시 한 번 더 변화를 주어 정미(丁未)로 입수하니 생룡중의 생룡이로다. 원맥에서 갈라져 나온 주맥(主脈)과 부맥(副脈)은 묶어주기를 두 번 또는 세 번 이상을 하니 법안(法眼)으로는 가늠하기가 여의치 않는 곳이다. 지리에 정통하고자 하는 분이나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필답코스가 아닌가 싶어 추천합니다. 와겸유돌(窩鉗乳突)의 사상혈 중 유혈(乳穴)에 속하는데 여기서 심혈(尋穴)과 점혈(點穴)까지 가능하다면 법안을 넘어 도안에 이르렀다고 봐야 되겠지요. 흠은 도로공사로 인해 백호백이 잘려나가 부녀자나 지손과 외손에 영향을 끼치겠다..점혈에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선삼김씨 묘역 통훈대부 창평현령 김윤옥(金潤屋)묘 선산 김씨(善山 金氏)는 서로 다른 3개의 계파가 있는데 첫째, 고려개국공신(開國功臣) 대광시중(大匡侍中) 김선궁(金宣弓)을 시조로 하는 계열 둘째, 원성왕 후손으로 좌복야(左僕射) 김한충(金漢忠)을 시조로 하는 계열이고 셋째, 경순왕의 아들 김추(金錘)를 시조로 하는 계열이다. 이들은 이조(異祖) 동본동성(同本同姓)이다. 시조 김선궁(金宣弓)은 고려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벼슬이 대광시중 정난보국공신(大匡侍中 靖難輔國功臣)에 책록되고, 선주백(善州伯)에 봉 받았으며 순충공(順忠公)의 시호를 받았다. 속칭 일선김씨(一善金氏)라고도 한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백제를 정벌할 때 숭선(嵩善. 경북 선산) 지방 전투에 병사를 모집함에 김선궁(金宣弓)이 고을 아전(衙前)으로써 응모하니, 태조는 자신이 쓰던 활 어궁(御弓)을 하사하고이름도 선궁(宣弓)이라 지어 주었다. 전쟁에서 공을 세워 시중(侍中)에 오르고 식읍을 지급받았다. 아들 김봉문(金奉文)은 선산(善山)에서 아버지 뒤를 이어 좌윤(左尹)으로 아전이 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선산(善山)의 옛 이름인 일선(一善)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다가, 조선 태종 때 지역명이 선산(善山)으로 개칭(改稱)됨에 따라 선산김씨(善山金氏)로 개관(改貫)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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